1. 18세 이하 사람 복용 시, 성격 손상을 일으킬 수 있음. 

    어린이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 보관하시오.

 

인간 심리에 관해 '신동'까지는 아니어도 남다른 감각을 타고난 현승의 말이다.

 

"엄마, 내가 우리 가족의 MBTI에 대해서 다시 한 번 느꼈어. 감정형 엄마와 사고형인 아빠랑 누나가 너무 달라. 동인이(빌라 주민들이 돌보던 반려견)가 입양 갔잖아. 내가 엄마한테 동인이 입양 갔다고 하니까 엄마는 어머, 진짜? 얼굴 한 번 더 볼걸. 보고 싶다. 이러는 거야. 그런데 아빠랑 누나는 뭐라고 하는지 알아? 내가 입양 갔다고 하자마자 어디로 갔는데? 어느 집으로 갔어? 이러는 거야. 정말 다르지? 하하"

 

두 아이의 MBTI나 에니어그램 유형에 대해서 추정해보고, 사례로 확인하며 혼자 큭큭 거리며 글로 남기는 일이 즐겁고 무엇보다 강의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되었다. 응애응애 아기가 자기만의 성격을 또렷이 드러내며 발달해가는  걸 보는 자체가 강사로서 큰 공부였다. 그러나 아이들 앞에서는 절대로 아이들의 유형에 관한 얘기를 하지 않았다. '엄마, 나 MBTI로 유형이 뭐야?' 물어와도 '어린 아이들은 아직 잘 몰라. 나중에 대학생쯤 되면 너가 스스로 알게 될걸' 얼버무리며 피해간다. '무슨 강사가 자기 아이들 유형도 몰라. 췻' '그래, 모른다. 왜! 췻' 췻췻췻.

요즘 초등학교에서부터 MBTI 검사를 그렇게 해댄다. 현승이도 두어 번, 채윤이는 서너 번을 한 것 같다. 아직 어린아이들에게 유형검사를 하고 전체적인 내용 숙지도 시키지 않은 상태로 '너는 이런 아이, 너는 저런 아이' 이름 붙이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 검사결과를 가져오면 '이건 다 바뀌어. 그리고 사람에겐 모든 성향이 다 있어' 하면서 초를 치는 말이 먼저 튀어나온다.

 

엄마 아빠에게 주워듣는 말이 있고, 성향이 정반대인 엄마 아빠에 지들끼리도 성향이 정반대에 가까우니 몸으로 느끼는 '다름'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얼마 전에는 셋이 아침 먹다 MBTI 얘기가 나와서 밥상도 안 치우고 한 시간 넘게 우리 가족의 유형 이야기로 수다를 떨었다. 엄마와 현승, 엄마와 채윤, 아빠와 현승, 아빠와 채윤, 현승과 채윤의 비슷한 점과 다른 점 사례를 찾아 공감 빵빵 터지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그런 이야기를 나눌 만큼 아이들이 자랐다. 어쨌거나, 아이들에게 유형으로 이름 붙이는 것은 자제하고 또 자제해야 할 일이다. 유형은 자발적으로, 스스로 찾을 때 의미가 있지 남이(특히 부모나 권위자가) 붙여주는 이름은 감옥이 될 뿐이다. 18세 이하에게 MBTI로 규정짓는 것, 28세 이하에게 에니어그램의 번호 딱지 붙이는 것은 자제할 일이다. 성격유형 도구들은 아이 손이 닿지 않는 곳, 서늘한 곳에 보관요!

 

 

2. 복용 후 거부 반응이 일어날 시에는 즉각 복용 중지!하되

   MBTI 디스는 신중하게 하시오.

 

'나는 MBTI 싫어해. 사람을 어떻게 열여섯 가지 유형으로 분류해?' 이런 말을 들으면 바로 몰글몽글 부드럽던 마음에서 춰크덕, 춰크덕 손톱 발톱이 장착되는 소리가 들리곤 했다. '아니 싫어하면 싫어하지 강사 앞에서 굳이 대놓고 디스를 할 필요까지야?' 심지어 수년 전에 MBTI로 사람을 유형화하는 사람들, 악한 무리라는 글을 본 적도 있다. 이 말씀을 하신 분은 무려 자칭 평화운동가. (그럼 난 뭐야? 나는 전쟁 운동가!) 그렇게 말하는 이면에는 듣보잡 MBTI로 낙인 찍힌 경험, 그래서 더러웠던 기분 등이 있다는 것을 안다.  딱히 그런 경험이 아니라도 성향상 틀에 넣어지는 것을 불편해 하는 분들이 있다.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신묘막측하게 지음 받은 개개의 인간. 그런 어마무시한 존재를 열 여섯 개의 유형으로 범주화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물론이다. 그 독특한 개개인을 어찌 몇 개의 유형으로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러나 지구 위 단 하나의 도형이라 해도 삼각형, 또는 사각형이라 분류하고 정의하여 이름 붙여 보는 것. 삼각형 중에서도 정삼각형, 이등변 삼각형, 예각 삼각형으로 이해해 보는 것은 크게 도움이 된다. 세상의 유일한 존재로서의 나에 대한 인식도 필요하고 분류된 인간군 안의 하나로서의 나를 인식할 필요도 있다. 그 사이의 균형감각에서 건강한 자아상이 만들어진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MBTI나 성격 유형론에 백퍼 동의할 필요는 없지만 조금만 겸허하게 수용해보면 어떻겠냐는 말씀이다. (우리끼리 얘기지만 그딴 거 필요없다고 하는 사람들이 그딴 거 제일 필요한 사람이더라. 뒷담뒷담)

 

 

3. 너나 잘 하(고 나서 처방이든 조제든 하)시오.

 

성격 유형론에 거부반응을 가진 사람을 만들어 낸 것은 성격유형 광신자일 것이다. MBTI든 에니어그램이든 처음 배우고 나면 눈이 뒤집힌다. '아, 걔가 그래서 나랑 그렇게 안 맞았구나. 우리 남편이 그래서 내 속을 그리도 뒤집어 놓은 것이로구나!' 세상 모든 사람을 이해할 것만 같은 느낌적인 느낌에 사로잡히게 된다. 왜 아닐까? 열 길 물속보다 알기 어렵다는 사람 속을 알 것 같으니 말이다. 때문에 열정에 사로잡힌 강사나  그의 강의를 들은 사람들이 자기가 뭔 짓을 하는지도 모르면서 주변 사람들을 번호로 유형으로 낙인 찍었을 것이다. (내가 MB는 아니지만 해봐서 안다) 강의하며 만나는 MBTI 혐오증 사람들에게 더는 손톱 발톱 세우며 공격적이 될 수 없는 것은 자업자득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나를 비롯한 강사라는 자들이 '인간에 대한 예의' 없이 얼마나 유형을 찍어댔으면 이렇듯 상처받은 사람, 화가 난 사람이 많을까. 지난 날의 내 지나친 열정이 부끄럽지만 그 열정 때문에 열심히 배웠고, 지금에 와 반성하며 겸허해진 것이니 자책만 하고 있을 수는 없다. 지금 할 수 있는 것은 누가 어떻게 디스하든 묵묵히 듣고, 들을 때마다 사죄하는 마음으로 겸손하게 강의하는 것 뿐이다. 그렇게 마음먹은 이후로 어떤 말을 들어도 별로 고깝지가 않다. 사람의 성격이니 내면에 관한 것을 가르치거나 상담하는 사람들은 백 번 천 번 조심하고, 천 번 만 번 겸손해져야 한다. 나 자신을 아는 만큼만 타인을 볼 수 있다는 생각으로 누구보다 성찰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 무엇보다 내 앞의 이 사람은 '사람이며 결코 유형이 아님'을 기억하고 또 기억해야 한다.

 

 

4. 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 커피는 바리스타에게, 응?

 

사는 것이 왜 이리 힘든지, 인간관계에서는 왜 자꾸 폭탄이 터지는지, 내가 진짜로 원하는 것을 왜 내가 모르는지..... 정답이 없는 질문은 끝이 없다. '나'라는 존재에 관한 질문은 평생을 끌어 안아야 할, 여전히 남겨진 숙제이다. 해답란에 쓰인 정답이 없다고 해서 찾아갈 길도 없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인간을 이해하는 신통한 방법은 없지만 '나'에 대해 설명할 언어를 조금씩 늘려나갈 방법은 많다. 물론 눈을 조금 크게 뜨고 마음을 살짝 낮춰야만 보일 것이다. 하도 많이 들어서 딱 들으면 피로감부터 밀려오는 MBTI. 이름부터 고리타분한 에니어그램도 일단 한 번 잡솨봐!  잡숫되 제대로 잡솨봐! 인터넷에 떠도는 불법 검사도구로 유형만 찾아내는 것은 아이고 정말 의미 없는데 어떻게 설명할 방쁩이 없다. 어느 유명인과 내가 같은 유형이면 뭐? (뭐 없어~)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약이 되기도 독이 되기도, 아무것도 아니기도 한 것들이 있다. 아니 세상에서 좋다고 하는 것들은 더욱 그런 것 같다. 참 좋은 도구 MBTI, 잘 배워서 잘 사용하면 참 좋겠다.

 

 

 

 (에니어그램에 빠져든 이후 MBTI가 시답지 않게 느껴졌던 적이 있다. 인간 내면의 깊은 곳을 파헤치고 드러내는 독한 약을 써보니 MBTI는 너무 인간을 살살 다룬다는 느낌이 들었다. 드러나는 행동만을 다루고, 부정적인 표현은 절대 하지 않는 것이 너무 우쭈쭈쭈식의 인간 이해 방식이 아닌가 싶었다. 그렇게 슬슬 권태기가 왔었는데 말이다. 언제부턴가 다시 사랑에 불이 붙어 MBTI가 더욱 예뻐 보이더니 요즘은 거의 첫사랑의 회복이다. 사랑하면 보이나니 요즘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아니하다. 유형설명 하나하나가 내 마음을 먼저 울린다. (에니어그램 뒤로 물러나시고, 연애강의 비키시고, MBTI 다시 중전마마 등극이요~) 내 마음이 변한 탓인지 MBTI도 나한테 상당히 잘해준다. 보통은 MBTI 단발 강의로 부모교육 하곤 했었는데 집단상담 방식으로 여러 회기 진행한 MBTI 부모교육을 시도했는데 참 좋았다. 보통의 대한민국 엄마들인데 여느 신앙인 못지않게 깊은 갈망을 인식하고 내비치는 것이 내겐 상당히 고무적으로 다가왔다.  특히 강의 후에 이런 피드백을 받으면 행복해서 죽을 지경이다. '이렇게 좋은 것인지 몰랐다, 실은 MBTI 싫어했는데 선입관이 깨졌다, 나 자신에 대해서 새롭게 이해하게 되었다. etc.' 기분 좋~아서 소고기 사먹는 마음으로 제작해 본 사용설명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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