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브♥갓♥메일-20    <QTzine> 9월호

8월 호를 쉬는 동안 은혜에게는 무슨 일이?
7월 호에 2년을 계획하고 어학연수를 떠났던 은혜가 돌아왔습니다. 조기귀국이냐고요? 아닙니다. 계획대로 2년의 일정을 마치고 돌아온 것입니다. 그러니까 한 호를 쉬는 동안 은혜와 선생님 사이에는 연속극같이 2년의 세월이 훌쩍 지나가 버렸다는 얘기네요.^^





와우, 반갑다 은혜야!
2년여 동안 멀리서 간간이 소식 듣다가 같은 서울 하늘 아래서 메일 받으니 기분이 새롭다. 지난번에 만났을 땐 너무 반가웠어. 몸도 마음도 훨씬 건강해진 것 같고 좋아 보이더라. 얼굴 보고 온 지 얼마 안됐는데 이런 뜻밖의 메일을 받게 될 줄은 생각도 못했네.^^ 4년 전 처음으로 받았던 은혜의 첫 메일이 생각나기도 했어. 무엇보다 이 서프라이즈한 재회의 소식은 잠깐 내가 잘못 읽었나 싶은 정도였다. 그간 은혜랑 연애 얘기를 주고받으면서 예전 젊은 시절로 돌아간 것처럼 덩달아 설렌 적이 많았지만 단연코 이번이 최고로구나. 이런 기적 같은 일이! 가끔 소설 같은 연애담을 주변에서 실제로 듣기도 한다만 우연히 J군을 서점에서 만난 일. 그리고 그 우연한 만남을 전후로 한 너희 둘의 행보는 지어낸 얘기처럼 흥미진진하구나.^^ 맞어. 지난주 우리가 만나고 헤어지는 길에 네가 서점에 들른다고 했었지. 그러니까 바로 그 서점에서 J를 만난 거야? 우리 둘이 J 얘기를 너무 많이 해서 귀가 간지러웠나?ㅎㅎㅎ 하고 많은 서점 중에 그 서점에서, 어쩜 그 시간에 거기 함께 있게 되었을까? 그 일이 꼭 우연이 아니라 필연 같다는 말이 진짜 소설 속 표현 같다야∼

잘 견뎌온 지난 시간들
그 날 은혜를 만나고 집에 돌아오는 지하철 안에서 '이젠 은혜에게 상담 메일 받을 일이 없겠다'하는 생각을 했었단다. 멀리 나가 있던 지난 2년 동안 은혜가 많이 깊어지고 내면도 단단해졌다고 느껴졌거든. 연애든 진로든 선생님의 도움 없이도 잘 선택하고 이제 예전보다 훨씬 덜 흔들리겠구나 싶었어. 무엇보다 대견스러운 건 J로 인해서 아팠던 상처들이 깊은 기도와 묵상을 통해서 잘 아물어가고 있다는 거였어.
어학연수 떠나기 전 J와 헤어지고 나서 했던 너의 울음 섞인 말들이 내 마음에 남아 있단다. '세상의 기준으로 사람을 선택한 것도 아니고, 저는 정말 오빠의 중심이 하나님을 향하고 있다는 그것만 본 것 같은데요, 기도하면서 이 사람을 선택했다고 생각했는데요, 이 사람을 선택하면서 감수할 현실적인 어려움들이 많지만 기꺼이 감수하겠노라고 한 선택인데, 왜 제게 이런 일이 있는 거죠? 저는 분명히 하나님이 예스라고 말씀하신 줄 알았어요. 그건 그저 제 확신일 뿐이었을까요?' 그렇게 J에 대해서, 하나님에 대해서 원망과 분노가 가시지 않은 채 떠난 거였지. 그 말을 생각하며 선생님도 내내 마음이 아팠어.

2년 만에 다시 만난 은혜는 '나는 경제력, 사회적 능력보다 사람 자체를 보는 눈으로 선택했다'는 자의식조차도 내려놓은 아름다운 모습이더구나. 확신하는 선택이지만 그 선택의 결과가 결국 해피엔딩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한결 성숙해진 모습이랄까? 하나님의 사랑이나 섭리가 의심이 되고 원망스럽기까지 하다는 너의 메일에 꾸짖지 않고 선생님 역시 하나님이 원망스럽다고 했던 것이 그렇게 힘이 되었다고? 용기 내어 해 본 '원망의 기도'가 가장 정직한 기도로 이끌어주었다니 내가 오히려 고맙다.
이런 모든 얘기를 들으면서 맨 처음 '뜬금없는 메일'이라며 연애에 관해서 물어왔던 때를 생각했어. 외로움과 사랑, 거절감 등 여러 일을 겪은 후 만난 J군이었지. 예쁜 사랑을 만들어가며 결혼과 진로 사이에서 고민하기도 하고 둘 사이의 여러 차이점들로 힘들어하기도 했었어. 그러다 돌연한 헤어짐과 그 모든 걸 뒤로하고 떠났던 2년의 (은혜의 표현대로) 광야와 같은 시간이 지났구나. 마음 가는 대로, 그저 외롭다고 쉽게 사람 만나 사귀면서 '아님 말고'하는 이 세대 로맨스의 길을 거스르려 했던 과정이었다고 평가해주고 싶어. 성경에서 속 시원히 말해주지 않는 연애의 구체적인 문제들에 대해서 굳이 하나님의 마음을 읽어내려 하던 은혜의 지난 시간들을 칭찬하고 싶다.


갑작스런 재회와 고백
이제 은혜는 최고의 배우자를 선물로 받을 일만 남았구나 하고 있었다. J 역시 지난 2년의 시간을 그냥 보내지 않은 것 같구나. 은혜가 귀국했다는 소식을 듣고 온통 은혜 생각이 J의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고? 이제나 저제나 연락을 하려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던 차였다는 거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잠깐 바람 쐬러 나간 서점에서 은혜를 만났다니, '너무 은혜 생각에 사로잡혀 있어서 헛것을 봤나' 했다는 J의 말 완전 공감됨!ㅎㅎㅎ 그 짧은 순간 '이 여자 절대 놓치면 안되겠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그 순간 '이 몸과 세상 간 곳 없고 몇 미터 앞에 서 있는 은혜만 보였다'는 표현, 진짜 영화 같고 재밌고 부럽고 설렌다. 에고, 우리 은혜는 이 상황이 받아들이기 어렵고 혼란스럽다는데 선생님이 너무 주책없이 들떠 있나? J에 대해서 이미 마음의 정리가 끝났을 뿐 아니라 그 과정이 어떻게 은혜를 자라게 했는지에 대해서 열띠게 나눈 직후의 만남이었으니 좀 당혹스러웠겠니. 하나님이 No라고 하신 것을 No로 받아들였더니 다시 전에 없던 적극적인 태도로 다가오는 J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냐고? 그 답은 이미 은혜에게 있지 않냐? 다시 시작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물었지만 메일의 구석구석에 이미 다시 시작한 심증들이 엿보이는데….^^

참 희한하구나. 어쩜 두 사람 다 지난 2년을 서로에 대한 어정쩡한 미련이나 분노에 에너지를 뺏기지 않고 오롯이 상황을 받아들이고 각자 자기를 돌아보았는지…. 이거야말로 은혜구나. 그렇게 각자가 아무 의도 없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동안 너희 둘 사이에 가장 어려웠던 문제가 자연스레 사라져버린 듯 보이는 거 알겠니? 은혜가 J에게 가장 힘들어 했던 부분이 그거였잖아. 둘의 관계나 결혼에 대해서 소극적이고 미온적이라는 것 말이다. 그런 태도들이 표면적으로는 문자를 씹는다든지 하는 행동으로 나오고 그게 반복되면서 은혜는 힘들어지고 말이다. 반대로 J는 그런 것들을 다그치는 은혜의 말과 행동에 '집착'이라는 느낌으로 버거워 하기도 했었잖아. J가 자신을 돌아보며 소심함 뒤에 숨은 낮은 자존감을 발견했다니 귀하고 대견하다. 깊이 있게 자기를 돌아보고 얻은 확신이기에 지금 하는 말과 행동은 은혜의 우려와는 달리 쉽게 달라지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구나.


지금 그리는 작은 그림
생각해 보니, 2년 전에 두 개의 아름다운 'No'가 있었구나. 여전히 사랑하는 마음이 있지만 버거운 그 상태를 해결할 자신이 없어서 헤어짐을 결정하며 J가 선택한 'No'카드. 그러한 선택으로 자신이 비겁하고 소심하게 비쳐질 것을 감수하고 선택한 카드였을 거다. 또 믿었던 J에게 충분한 해명도 듣지 못한 채 헤어짐을 통고 받아야 했던 은혜. 역시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고 더 매달려 보거나 설득을 위한 잔머리를 굴릴 수도 있었지만 그대로 'No'를 받아들인 은혜. 은혜가 더 힘들었던 건 그 'No'를 하나님의 'No'로 받아들이는 것이었지? 가끔 이성교제 문제에 있어서 끈질긴 기도로 응답을 받겠다는 미명하에 자신의 욕심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친구들을 보면서 안타까움을 느끼곤 해. 그런 의미로 바라보니 2년 전 너희들의 모습이 새삼 아름답게 느껴지는구나.
지금 은혜에게 있어서 'Yes'를 'Yes'로 받는 것도 마찬가지 맥락인 듯싶어. J와의 인연은 거기까지였고, 결국 'No'라고 말씀하신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이 고통스러웠지만 얻은 열매가 있었지. 허나 예전에 'No'였기 때문에 지금 상황이 아무리 달라져도 내게는 'Yes'일 수 없다고 우기는 것은 또 다른 '믿음 없는 행동'일지도 몰라. 하나님의 뜻은 순간순간 기대하며 지금 여기서 확인해갈 뿐이지 마지막 큰 그림은 다 알 수 없을 거야. 소설처럼 우연히 다시 만났다고 해서 하나님이 초자연적으로 역사하셨다는 해석을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네가 느끼고 말하는 것처럼 헤어질 당시에 문제가 되었던 것들이 지금은 하나도 문제가 아니라는 것과 여전히 너희 둘이 사랑하고 있다는 것은 'Yes'의 사인이 아니겠냐는 거야. J가 고백한 내용들 - 2년 전의 문제는 스스로의 낮은 자존감과 자기 존재에 대한 불안함이었다는 것 - 과 결코 은혜를 놓쳐서는 안 되겠다고 하며 보여주는 확신의 말들에 깊은 평안을 느낀다면서? 네가 보내온 메일에서도 시종일관 잘 모르겠다고 했지만 두려움이나 불안함 같은 것들은 느껴지지가 않더구나.


선생님의 생각은 그러하다만 결국 다시 만남을 이어갈지 말지는 은혜가 선택해야겠지. 지금 선생님이 하나도 염려가 되지 않고 오히려 살짝 구름 위에 뜬 것 같은 설렘이 있는 것은 은혜에게로부터 오는 깊은 평안의 기운 때문인 것 같아. 기대를 가지고 지켜보마. 조바심도 두려움도 없는 지금의 은혜라면 어떤 선택을 해도 최선의 선택이 될 거다. 'No'와 'Yes' 카드 중에 우리 은혜가 이번에는 어떤 카드로 답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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