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6일, 아버지 돌아가신지 38년 되는 날이다. 38년. 38년이라니! 3년도, 8년도 아니고 38년이라니. 하루 전날, 12월15일에 동생 집에서 추도예배를 드렸다. 추도예밴지, 생신예밴지, 명절인지. 아이들은 일 년 중 가장 신나는 날이다. 맛있는 것 먹고, 사촌들과 재밌게 노는 날. 축제 같은 날이다. 남편이 예배 인도를 하고, 내가 기도했다. 툭 나온 첫문장에 이끌려 여러 이야기가 나왔다. 그 이야기에 이끌려 고향 한산에 다녀왔다.

 

"하나님, 38 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신 그 날, 그 겨울에는 세 식구가 남아 너무도 추웠습니다." 연이어  마 3:16-17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본문으로 남편이 설교를 했다. 주제는 단연코 아버지와 아들 사이의 사랑, 엄밀하게 아들에게 보내는 아버지의 사랑의 메시지였다. 그리고 신으로 인간이 된 아들은 사람의 몸을 입고 견뎌야 할 고통을 견뎌냈다. 바로 그 한 마디 때문이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다.' 

 

38년 전에 아버지를 잃은 동생과 내게 아버지 사랑에 관한 기억을 나눠 달라고 하였다. 사춘기 아들이 둘, 우리 현승이 귀염둥이 막내까지 아들 넷이 조르르 앉아 있었다. 나는 원래가 수도꼭지라 기도할 때부터 '고장'이 났지만. 장군인 동생도 말을 시작하자마자 눈물이 터졌다. "아까 누나가 기도할 때 첫 문장이... 아버지 돌아가신 그 겨울이 참 추웠다. 아니, 아버지 돌아가신 이후는 늘 추웠다. 그 전을 생각하면 네 식구가 함께 있고, 한 마디로 따뜻함의 기억이다.'라고 말했다.

 

예배 마치고 밥을 먹으며 동생은 네 식구가 함께 '십계' 영화를 보고 가족탕에 갔던 기억을 끄집어냈다. 내게는 없는 기억이다. 나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이후 그 이전의 기억까지도 다 검은 칠을 해버린 건 아닐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동생은 자꾸 '전과 후'라는 말을 했다. 같은 아버지에 관한 기억이지만, 같은 죽음이지만 동생과 내가 기억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구나 싶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지만. 내게는 'before' 조차 남아 있지 않은 것인가, 조금 혼란스러웠다.

 

추도예배 마친 다음 날, 12월 16일. 남편과 속초 하루 여행이 계획되어 있었다. 아침에 눈을 떴는데, 밤새 꾼 꿈의 연장으로 고향의 그 길에 가고 싶어졌다. 아버지 돌아시고, 엄마랑 동생 바로 서울로 이사하고, 혼자 집사님 댁에 남겨져 있던 몇 개월. 슬퍼도 울지도 못하고, 그리워도 맘껏 그리워하지 못하고 멍한 표정으로 지냈던 시간. 학교 가던 그 논길이 생각 났다. 12월 16일, 그곳은 얼마나 추운 걸까? 맨몸으로 느껴보고 싶었다.

 

말 없이 남편이 동행해주었고, 오가는 근 여섯 시간 운전해주었고, 추웠던 날 나의 이야기를 끝없이 들어주었다. 조용히 내 뒤를 따라 걸어주었고, 사진을 찍어주었다. 혼자인 듯, 그러나 뒤를 따르는 남편 덕에 외롭지 않게 38년 전의 길을 다른 마음으로 걸어보았다. 문제는 오직 '추위'로 기억되는 그 겨울을 느껴고자 세 시간을 달려갔는데... 날이 너무 푹해서, 심지어 올라오는 길에 살짝 차 에어컨을 돌려야 할 정도였다. '추웠던 기억'은 떠나보내라고 더운 입김 불어 넣으시는 그분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한산 다녀온 다음 날 남편의 윗입술이 불룩불룩 하더니 툭 터져버렸다.  뭐 힘든 일이 있다고 입술이 터졌어? 월요일 운전이 힘에 부쳤던 것이다. 장거리 운전, 힘들다 힘들다 했었는데. 말없이 김기사 노릇 했지만 몸이 됐구나! 상처의 치유는 누군가 상처로부터 흐르는 피고름을 빨아 먹어주는 심정으로 견뎌줘야만 치유된다고 한다. 나도 모르게 누군가를 찌른다면 다뤄지지 않은 상처들 때문일 텐데. 내 인생 치명적 상처로 가장 많이 찔리고 아팠을 사람이 남편이다. 한산에 다녀온 하루처럼, 함께 하는 세월 내내 내 상처로부터 흐르는 쓴 물을 묵묵히 마셔주었다.

 

 

아버지와 함께 산 13년의 행복이 그대로 상실감과 결핍이 되어 38년 째 실락원의 방황이다. 내적 여정을 통해 그 기억을 새롭게 써가며 상처 입은 치유자가 되어 가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어쨌거나 38년 된 병자가 예수님 만나 제가 누웠던 들것을 들고 제 발로 걸어 나가듯 이제 제대로 털고 일어나려 한다. 더는 그 추위에 갇혀 있지 않겠다는 뜻이고, 자기연민의 늪에서 나오겠다는 뜻이다. 

 

올라오는 길, 겨울도 봄도 아닌 푸근한 날에 갈대밭을 거닐었다. 남편은 신성리 갈대밭이 참 좋았다고 자꾸 얘기한다. 다행이다. 남편에게도 좋았던 곳이 있어서. 아내의 짐을 함께 지고 슬픔에 동참하는 착한 남편에게 그분이 주신 선물인지 모른다. 배우자 선택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자기 이성 부모와의 관계에 영향을 받는다고 하는데, 13년 딱 함께 살아주고 떠나 그리움만 남긴 아버지이지만 좋은 사람이었던 게 분명하다. 가만한 사람, 가만한 사랑으로 함께 하는 저 사람을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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