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네 식구 마주앉아 초를 켜고 마음을 나누고 기도를 했다. 세상을 향한 채윤이 눈빛이 씨니컬해지기 시작하면서부터 거의 가지지 못한 시간이었다. 진정한 대화, (하나님과의 진정한 대화로서의) 기도, 사귐, (하나님과의 진정한 사귐으로서의) 예배 등은 강요하지 말자는 소신 때문이었을 것이다.  어느 새 채윤이 눈빛이 조금씩 부드러워지면서 어른스러워지고 있다. 가끔 대화하면서 '이 정도였어? 이렇게 큰 거야?' 하면서 깜짝 놀랄 때가 있는데 어제 패밀리 데이는 다시 한 번 김채윤의 놀람 교향곡이었다.  요즘 자신이 겪는 어려움을 기도제목으로 내놓는데 정직하고 진실하여 감동이 되었다. 아빠에 대해 묻어두었던 감정을 표현하면서 눈물까지 보여서 엄마까지 따라 울게 만들었다. '우리 채윤이 다 컸구나'라고 응할 수 밖에 없었다. 엄마랑 단둘이선 별 얘기를 다 하면서도 네 식구 모인 자리에서 진지해지면 (강풀 작가처럼) 갑자기 똥이 마려워지고 엉덩이가 간지러워지는 현승이조차도 누나의 눈물에 말려 어른같이 마음을 나누었다.

 

 

 

 

월요일이었고 전 주에는 노회가 있어 데이트 시간을 갖지 못했다. 그래서 오늘은 전 주에 놀지 못한 것까지 놀아야 해서 멀리 전주 한옥마을에 다녀왔다. 가서 밥 먹고, 슬슬 걸어다니면서 주전부리나 하고 온 것이 전부이다. 젊은 커플들이 대부분이더만. 걔네들처럼 살랑거리는 설렘이 있는 것도 아닌 아줌마 아저씨는 줄서서 만두 사고, 문꼬치 사서 길에 선 채로 가방에 소스 묻혀가면서 추접스럽게 먹어대다 왔다.  전주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비오는 고속도로를 7 시간 정도 달리던 자동차 안이었다. 음악 들으면서 이 얘기, 저 얘기, 요 얘기, 조 얘기까지 하다가 지난 주일 설교 본문에서 나온 '분향단' 얘기를 하게 되었다. 그 얘기 끝에 '오늘은 오랜만에 아이들과 기도의 불을 밝혀야겠다'고 했다. 그래서 가진 시간이었다. 

 

채윤이가 보여준 모습은 아마도 한 2주 전에 있었던 '짜증나 사건' 때문이었을 것이다. 여러 번 아빠가 신사적으로 경고에도 했음에도 아빠 면전에서 '짜증나'를 외친 것이다. 이 일로 현승이의 기네스북, '엄마 나는 태어나서 아빠가 화내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어'의 기록이 깨진고 말았다. 방에 들어가 둘이 한참을 얘기하고 나왔다. 평소 채윤이가 아무리 까칠하게 굴어도 잘 받아주던 아빠가 속내를 드러냈던 모양인데 이 일로 충격도 받고 자기를 돌아보기도 한 것 같다. 채윤이가 3학년 때 했던 표현대로 '작은 일을 크게 몰고 가고, 작은 일에 깊게 화를 내는' 엄마와 달리 연료통이 커서 몇 년치 화를 장전했다가 한 번에 쏴준 아빠 덕이다. 물론 그간 쌓은 착하고 친절하고 넉넉하게 받아주기 공덕이 아니었음 몇 년 쌓은 화를 폭발한 것이 무슨 의미가 있었으랴. 그야말로 모두 다치기 딱 좋은 폭발이 몇 년 묵힌 분노의 활화산이겄제. 엄마인 나는 아빠의 역할이 진심으로 고마웠다. (김채윤, 긴장 좀 타겠지)

 

 

 

 

남편은 요즘 서태지의 신보 '크리스말로우'에 꽂혀서 '긴장해 다들, 긴장해 다들' 입에 붙이고 다닌다. 아이들과 내가 지겹다고 그만 좀 하라고 놀려도 헤헤거리면서 '긴장해 다들.... 이게 중독성이 있어서 자꾸 부르게 돼' 한다. 궁서체로 물었다. '서태지 컴백이 좋아? 당신 서태지 좋아했었어?' 자기가 서태지와 동갑이란다. 조용필이 가왕이라면 서태지는 문화대통령인데 바로 그 서태지가 자기 동갑이란다. 평소 자신의 성품대로 요란하지 않지만 깊이 있게 중년맞이 성장통을 앓는 남편에게 의미있게 다가가나 보다. 느낌을 알겠고 또 모르겠다. 어쨌든 남편의 이 요란스럽지 않은, 절제된 삶의 태도를 사랑한다. 남편이 좋아하니 나도 좋다. 서태지 컴백, 긴장해 다들...... 나도 좋다. 전주 갔다 오는 길에는 서태지 노래를 들었다. 가사를 곱씹으며서 들었다. 남편이 신대원에 가던 때 긴 글을 써서 당시 운영하던 싸이 클럽에 올렸었다. 정혜신 박사가 박찬욱 감독에게 썼던 표현 'low self-estee의 미덕'이란 표현을 빌어다 썼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남편이 가진 미덕 중 하나는 '으스대지 않음'이다. 그때나 지금이나 그점, 존경하고 신뢰한다.

 

 

 

 

기도제목을 나누면서 내 순서가 되었을 때 이런 말을 하고 싶었다. 내 자아상이랄까, 이런 게 있다. 난 체구가 작고 체구처럼 마음도 좁기 때문에 누군가를 품을 넉넉한 품이 없다. 말하자면 아직도 어른이 되지 못하고 재롱 부리고고 익살이나 떨어 주목 받고픈 어린 아이인 것이다. 엄마이긴 하지만 흔히 말하는 거룩한 모성을 가진, 진 자리 마른 자리 갈아 누이는 희생적인 어머니, 쓴 것 먹고 단 것 토해 먹이는 엄마로 인식해 본 적이 없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아이들 따까리 하는 것에 자주 뿔따구가 나는 어른이 되지 못한 엄마이다. 엄마로서 이러하니 아내로서는 더 말 할 것이 없다. 최근에야 남편에게, 아이들에게 기댈 언덕과 안길 품이 되고 싶다는 진정한 마음이 든다. '나 좀 봐 줘, 나 좀 돌봐 줘'가 아니라 진심 돌보는 존재가 되어 주고 싶다. 이제껏 피나게 열심히 해왔던 돌보는 사람 코스프레 말고. 이것 역시 다  남편이 쌓은 공덕의 효능이다. 으르렁 모녀, 투닥투닥 남매, 애증의 모자 포함한 네 식구가 한껏 마음 열어 대화할 수 있는 것도, 한 데 손을 포갤 수 있는 것도 으스대지 않는 조용한 리더십의 가장 덕분이다. 그러니 이 가장이 요즘 '긴장해 다들, 긴장해 대들' 노래하는 소리를 예사로 들을 일이 아니다. 서태지를 응원하고 서태지 동갑내기 우리 가장을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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