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주 월요일, 전주 한옥마을에 가기로 되어 있는 아침이었다.

아침 식탁에 앉으며 차려놓은 식사를 보고 남편이 말했다.

'아, 행복하다. 현승아, 아빠는 정말 행복해.'

마음에 없는 괜한 말을 내놓는 사람이 아니다.

그리 말했다면 이 아침 남편은 정말 행복한 것이다.

남편이 그러한 것처럼 나 또한 그러하다.

남편이 쉬는 날이라 좋고, 하루 남편과 데이트할 일이 기대되고, 

그저 오늘이 행복하다.

그러나 '행복하다' 말하는 남편의 말 뒤에

찬바람이 휭 하고 불어 낙엽이 우르르 쓸려가는 느낌을 받았다.  

그 행복이 온전한 행복이 아님을 알기에 내 마음이 쓸쓸하다.

순도 100%의 행복이 아니면 행복하다 말할 수 없다는, 그런 뜻은 아니다.

 

 

그런 생각을 하며 채윤이 먹은 그릇을 닦고 있는데 마주앉은

남편과 현승이의 대화가 무르익다 전도서에 멈췄다.

아빠가 아이폰으로 성경 앱을 열어 보여주면 전도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래서 현승아, 전도서를 쓴 사람이 다 누려보고 고민도 해보니까 헛되다고 느껴진대.

결론은 사랑하는 아내와 즐겁게 사는 게 최고라는 거야. 아빠는 엄마랑 더욱 행복하게 살 거야."

'네 헛된 평생의 모든 곧 하나님이 아래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사랑하는 내와 함께 즐겁게 살찌어다 이는 네가 일평생에 아래서 수고하고 얻은 분복이니라'

조금 전 행복하다는 남편의 말끝에 뒹굴던 낙엽은 바로 이 허무감이었다.

전도서 전반에 깔린 허무주의.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

다시 말하면 '아이고 의미 없다.'

의미 없음을 못 견디는 남편, 공허감을 몹시 싫어하는 남편이 '행복'과 타협하고 있다.

아니, 어쩌면 자신이 가장 못 견디는 것을 넘어서 견디고 오히려 즐거워하고 있다.

그 선상에서 나온 전도서의 말씀을 빌려서 나온 남편의 속내.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사랑하는 아내와 즐겁게 살찌어다'

이 모든 헛된 날에 그의 아내와 나의 남편은 월요일마다 희희낙락하며 지내고 있다. 

화수목금토일, 대체로 희희낙락 버티고 있다.

 

 

전주에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남편에게 물었다.

"당신은 지금 죽는다면 가장 아쉬운 것이 뭐야? 꼭 해보고 싶거나 이뤄보고 싶은 일?"

시원한 대답을 듣지는 못했다.

그 질문을 나 스스로 해보고 남편에게 답을 했다.

"나는 아이들에 대한 책임감만 아니라면 그다지 아쉬운 게 없는 듯해.

대체로 만족한다는 뜻이기도 해."

남편이 아마도 세월호 여파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생각해보진 않았지만 그런 것도 같다.

나는(우리는) 4월 16일 이전처럼 살거나 신앙할 수 없다.

그리고, 그러나, 그런데, 그래서 우리는 행복하게 살기로 했다.

멈춰 서서 조금만 생각에 잠겨도

금세 '아이고 의미 없다' 소리가 튀어나오는 요즘이지만 즐겁게 살려고 한다.

행복하게 살되,

이웃과 나,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 엄마나 아내로서의 나와 그냥 나,

이 모든 것을 분리시키지 않고 살려고 한다.

에고머니, 분리시키지 않으려 하니 다시 '헛되고 헛되어, 아이고 의미없다'로 환원하네.

그래, 이 헛된 날을 헛된 줄 알고 즐겁게 살자.

그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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