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같은 말을 하고 있는 거야!

의견의 차이 또는 갈등이라 해도 좋을 상황을 인내로 헤쳐 나가는 시간, 숨을 고르며 남편이 자주 하던 말이었다. 다르다고 생각했고, 다름의 간극이 멀어 다시 손을 맞잡을 수 있을까 싶은 시점에서 "그러니까 우리가 지금 같은 말을 하고 있는 거야"라는 말은 달래고 어르는 말처럼 들렸었다. 달래지고 얼러지는 효과가 분명히 있었다. '같은 말'의 내용이 아니라, 차분하게 '같은 말을 다르게 하고 있다'고 설득하는 태도 때문에 달래졌던 것 같다. 

요즘 자주 속으로 생각한다. "같은 말을 다르게 하고 있구나!" 남편과는 물론이고 아이들과도 그렇고. 많은 경우 그렇다. 3인칭 시점으로 지켜보는 '말'들은 대부분 같은 마음을 다른 언어로 표하고 있다고 느낀다. 같은 마음이란 '평화와 자유' 같은 것들이다. 화해와 연결, 이해하기 이해받음 같은 것들이다. 문제는 언어가 담은 마음이 아니라 그저 언표만을 듣고 볼 수 밖에 없는 우리의 귀와 눈이다. 서로 다른 뜻(마음) 이 아니라 같은 마음 다른 표현이기에 더 어렵구나, 이런 생각도 한다.   

적어도 남편과는 '같은 말을 다르게 하고 있음'에 대해 빨리 감지할 수 있다. 그러자 우리의 차이가 보인다. 그러자 내가 보인다. 더욱 또렷이 보인다. 알고도 모르고 모르지만 알았던 내가 잘 보인다. 같은 말을 다르게 하는 지점은 에너지와 속도의 차이이다. 나는 빠르게 앞으로 나아가고 남편은 부러 천천히 뒤처져 숙고한다. 알고보면 같은 결론, 같은 뜻이다. 나는 '계획 세우기'로 뜻을 향해 나아가고, 남편은 명확한 마침표를 위해 뜻을 갈무리 한다.  말을 하다보면 간극이 엄청나지만 뜻이 같고, 바라보고 있는 곳이 일치한다.

안성의 있는 미리내 성지를 걸었다. 같은 뜻으로 걸었다. 뜻을 담은 소리가 달라도 크게 흔들리지 않게 되었다. 결국 같은 말을 하고 있다는 알아듣는 귀가 생겼다니! 





'JP&SS 영혼의 친구' 카테고리의 다른 글

Sabath diary 28 : 거룩한 낭비  (0) 2019.12.30
Sabbath diary 27 : 38년 된 병자  (1) 2019.12.23
없는 연좌제 극복하기  (0) 2019.09.07
지금은 맞고 그때는 맞다  (4) 2019.05.02
칫솔  (0) 2019.04.04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