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과 데이트 시절에 김밥 많이 먹었다.
하남시에 있는 '가야'라는 김밥 집에는 남들 1500원 할 때 1000원 하는 김밥이 있었다.
1000원 짜리 김밥을 먹고 팔당대교 아래 강변을 걸으면서 데이트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꽤 낭만적으로 보이지만,
당시에도 낭만적이지 않았던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약간 서글프기도 했다.
둘 다 학생.
그나마 나는 과외로 돈 좀 버는 대학원생.
그러나 학비까지 벌어야 해서 많이 벌어도 버는 게 아닌 과외선생.

결혼 하고 살림살이가 많이 폈다.
4000원 짜리 김밥을 먹고 있으니 말이다.
거기에 떡볶이와 오뎅까지!

월요일 저녁, 프리미엄 김밥을 사가지고 저~어 높은 옥상으로 소풍이다.

 


 

 

지난 주 월요일에는 서교동의 찰스 김밥.
오늘은 상암동의 김선생 김밥.
왠일인지 근처에 럭셔리한 김밥집들이 많다.
양복 아빠가 반바지 아빠가 되는 월요일 저녁에 2주 연속 옥상 소풍이다.

"내가 합정역에서 아빠 차에 탈 때까지만 해도 기분이 안 좋았거든. 큰 일은 아닌데.... 어떤 일로 내가 분노가 막 일어나고 있었어. 그런데 옥상에 와서 이러고 있으니까 기분이 좋아졌어"

북한군이 그렇게 무서워한다는 중2도 기분이 좋다.
덕분에 모처럼 화기애애 했다.

 

 

배부르게 먹고 아빠 배를 베고 벌러덩 누워 뒹굴거리는 녀석들을 꼬셔서
'커피 준비해 줄 사람?' 어르고 달래서 집으로 내려보냈다.
저녁 바람이 살랑거리는 탓인지,
기분 좋게 둘이 커피를 준비하기 위해 내려갔다.
나란히 누워 하늘을 보니 분위기 맞춰서 새도 날아다니고, 좋다.

 

 

커피 갈고 물 끓이고, 커피잔에 더운 물 부어 컵을 데우고,
드립 직전까지 완벽하게 준비해서 올라오는 준바리스타들.
얘들아, 오늘만 같아라.

 

 

 

뻥 뚫린 공간에서 커피를 내리고 마시는 맛은,
음......
커피를 불리면서 사이사이에 공기를 더 많이 집어 넣는 느낌이랄까?
옥상에서 내린 커피에서는 바람의 맛이 느껴진다.

 

 

빠질 수 없는 것이 음악이다.
클래식, 팝, 가요, CCM 쟝르를 넘나들며 감상.
디제이는 영 아티스트 채윤.

 

 

어둠이 내려 앉는다.
저~어기, 메세나 폴리스에 불이 켜졌다.
내려가야 할 시간.
신데렐라 아빠 양복으로 갈아입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알차게 잘 쉬고 잘 놀았다.
아빠, 채윤이, 현승이, 엄마.
빡빡하게 돌아가는 '화수목금토일'이라도 소풍처럼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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