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제목 : 면회

사진설명 : 신종플루 의심환자로 안방에 격리된 엄마를 그리워하던 현승. 엄마를 한 번 안아보고 잘 수 없다는 것이 눈물을 펑펑 쏟던 하루 이틀이 지나고... 아예 방에 들어오지도 못하게 하던 어느 날  침대 위 베란다쪽 창문이 드르륵 열리면서 '헤헤헤헤.. 엄마' 하고 나타나 면회하고 가다.


두 남자의 스킨십
에 난 귀찮아 죽겠다고 늘 불평을 입에 달고 살았지요. 작은 남자의 독점적인 애정행각에  큰 남자분 '야이 자식아. 엄마는 내꺼야. 아~ 저 자식 진짜!' 이러면서 열이나 받는 날이 대부분이기 합니다. 그럼에도 보이지 않는 경쟁과 갈등 사이에 귀찮아 죽어나는 사람은 나다. 이러고 살고 있었습니다.
가끔은 귀찮은 정도를 넘어 짜증을 내기도 하진 않았나 싶습니다. 그래서 일명 대체로 밖에서 보는 이미지와는 달리 '진짜 뻣뻣한 여자'라는 영예로운 평가를 받고 살고 있었습니다.


드 넓은 침대
혼자서 차지하고 살았으면 하는 바램도 솔직하게 있었지요. 형식상 자기 침대에서 잠들기는 하지만 결국 밤에 한 번, 내지는 두 번 엄마 침대로 와서 어느 새 꼽사리 껴 있는 작은 남자 때문에 아 편히 자는 날이 없었지요. 두 남자 사이에 껴서(^^;;) 비좁게 자고 나면 어깨가 결리는 날도 있다지요. 편히 혼자 자는 침대였음 좋겠다며 밤마다 투덜거린 날이 오래였습니다.


신종플루
덕에 소원성취 한 것이지요. 두 남자가 다 스킨십은 커녕 근처에 오지도 못하게 되었고 일주일 동안 밤낮으로 그 넓은 침대를 혼자 차지하고 뒹굴었으니 말이예요. 몸이 괴로운 탓에 편하다 어떻다 할 겨를도 없었지만요. '아, 이거 내가 원하던 거다' 하면서 침대 위에 책 여러 권 쌓아놓고 좋아라 하면서 하루 이틀 보내고 있었지요.


뭔가 모를 슬픔, 그리움
이 시간이 지날수록 드넓은 침대를 점령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아픈 아내를 살뜰하게 챙길줄 모르는 남편의 무심함에 화가 나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엄마가 아픈데도 개념없이 떠들어대는 철없는 아이들에 대해서 섭섭한 감정이 올라오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헨리나우웬의 책을 읽다가 갑자기 깨닫게 되었습니다.
단지 밖에 나가지 못해서 힘든 것이 아니라, 아픈 나를 살뜰히 챙겨주지 않아 화가난 것이 아니라  식구들과 아주 가까이 친밀하게 몸을 접촉할 수 없다는 것이 힘들구나. 그래서 점점 마음이 메말라가는구나. 거실에서 왔다갔다 하고 있는 세 식구에 대한 그리움이었습니다. 세 식구가 식탁에 앉아 식사를 하면서 아이들이 깔깔거리는 소리가 귀에 꽂히면서 눈물이 주르르 흘렀습니다. 막연한 그리움이 아니라 현승이의 보들보들한 몸을 한 번 안아주고 싶고, 엄말 닯아 스킨십에 인색한 채윤이의 앵두같은 입술과 뽀뽀하고 싶고, 남편의 딱딱하지만 따스한 가슴에 한 번 안기고픈 그런 그리움이었다지요.


니들이 나한테 줄 게 뭐있어!
라고 항상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남편이 나를 좋아하는 이유는 내가 남편에게 필요한 사람이니까, 애들이 엄마 엄마 하는 이유는 엄마 없이 자신들의 삶이 유지가 안되니까! 한 마디로 나는 우리 식구들에게 필요한 사람이다. 이런 마음만 충천해서 살았던 것 같습니다.
이 세 식구는 내게 필요하기는 커녕 날 귀찮게 하고, 내 시간을 빼앗고, 나를 가운데 끼워놓고 꼼짝 못하게 하는 존재들이다 이렇게요.

내가 줄 거는 있지만 받을 거는 없다는 교만함이 머리 끝까지 차 있었어요. 스킨십이 귀찮은 것처럼 존재 자체가 귀찮다고 생각했던 거지요. ㅠㅠㅠㅠㅠㅠㅠ 교만함의 극치!
실은 나 역시 세 사람의 사랑이 필요하고, 사랑받아 왔고, 그 사랑에 기대 나를 지탱하고 있었단 생각이 이제야 크게 밀려옵니다. 귀찮다고 뻐팅기며 내 존재감을 확인하는 유아적인 내 모습을 보게 되기도 했구요.


나는 사랑받아야 하는 존재
임을 처음 배우는 것처럼 다시 배웁니다. 마치 나는 뭔가 줄 것만 있는 것처럼 살고 있었어요.  당신들의 사랑 따위는 필요없어. 됐어. 내가 사랑해주기는 할께. 헌데 나한테는 당신들의 사랑은 성에 안 차. 난 하나님과 깊은 영적 교제를 하고 있으니까 그것으로 족해. 가족에게뿐 아닌 것 같습니다. 이 사랑에 교만한 병이 깊어요. 
신종플루가 합병증 때문에 무섭다는데 이렇게 발견된 신종플루 마음의 합병증은 치료가능하고 치료하면 더 건강해질 일이니 이제라도 부끄럽지만 소심한 감사의 기도를 올려드려야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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