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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fe Nouwen

커피로 시작하는 한 해

larinari 2011. 2. 4. 19:02




일과 관계에 치인 '설날'의 느낌보다 그저 '새해'의 느낌이 강한 설연휴 마지막날에 네팔에 다녀오다.
컨디션 핑계를 대고 썰매 타러가는 나들이에 쏙 빠져서 침대에 뒹굴며 하루만에 일독을 해버린 것이다.
히말라야의 선물.
히말라야의 '말레'마을 열 한 가정의 커피재배 이야기.


커피로드 촬영을 위해 세 달 동안 그 곳에 머물렀던 EBS 촬영팀을 따라 갔다오니 커피 한 잔을 바라보는 시각이
또 달라졌다. 대한민국 서울에서 패션커피로 워킹커피로 우리의 손에 들려진 커피는 어떤 사람들에 의해서 어떻게
재배되고 전달되어 왔을까?
커피로드의 길을 따라 하루여행 다녀오니 내가 마시는 맛있는 커피 한 잔의 여유와 고상함은,
사랑하는 남편을 아빠를 이주 노동자로 보내놓고 손이 갈라지도록 커피농사를 짓는 어느 젊은 엄마의 고된 노동과
슬픔이 베인 것임을 알게 된 것이다.


이제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그 커피가 원산지가 어디든 나는 히말라야 고지의 말레를 떠올릴 것이고 그 여러 장의
살아있는 사진으로 수십 번 눈을 맞춘 그들의 얼굴을 떠올릴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의 꿈과 그들을 슬픔과 커피에 담긴
희망 또한 떠올리며 그들의 행복을 위해 잠시나마 기도할 수 있게 되었다.








사실 <고종, 스타벅스에 가다>를 오늘 아침 마지막 장을 덮었다.
한 달 정도 커피와 함께하는 시간여행을 마친 셈이다.
1896년 고종이 아관파천 때 러시아 공관에서 처음 커피를 마신 이후로 2005년 까지 우리나라 다방의 역사를 따라걷는
여행이었다. 자료의 달인 강준만과 그의 제자가 엮어낸 책인 만큼 2011년 서울 명일동 우리집에서 내가 핸드드립을 하여
커피 한 잔 마시기까지 이 땅의 커피는 어떤 길을 걸어왔는가를 그냥 요약해서 얘기해준다.


노란색 맥심 모카골드로 대변되는 '인스턴트 커피 대국'인 우리나라에 확실히 커피취향이 달라지고 있다.
아, 일단 내가 달라졌으니깐.
우리 동네에도 며칠 지나면 카페가 생기고, 또 생기고, 인테리어 공사했다하면 거의 카페고...
이런 걸 보면 괜히 불안해지고 조급해지기도 하는 게 솔직한 심정.ㅠㅠㅠㅠ


책의 맺는 말에서 강준만이 말한다. '커피는 이제껏 한국인에게 안정된 미학을 보여주는 음료가 아니었다.
차분한 성찰의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고 뭔가 우아하고 고상한 척 하는 효용을 있었을지 몰라도 말이다'


아, 맞다. 내가 핸드드립 커피에 빠져든, 그리고 혹시 내 인생의 진로를 변경하여 뭔가 다른 일을 하게 된다면
카페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이유가 여기 있다.  커피가 가진 차분한 성찰의 분위기.
이제껏 나에게든 우리 문화에서든 커피, 카페가 관계맺음과 소통의 도구였다면,
'성찰의 도구와 공간으로서의 커피와 카페는 어떻겠냐는 것이다.
'우리 커피 한 잔 하자' 라는 말도 참 그럴듯 하지만 혼자 커피 한 잔 마시면서 책을 읽거나 일기를 쓰는 그림을 어떻겠냐는 것.
그래서 언젠가 트위터에서 영애가 '나 혼자 카페에 있다' 내지는 '나 아메리카노 마시는 여자!'라는 멘션을 날렸을 때
알 수 없는 뿌듯함이 날 스치고 지나갔던 것이다.







지난 12월 커피여행을 위해 원주를 다녀온 적이 있고,
요즘도 기회가 되는대로 남편과 함께 여기 저기 카페를 기웃거리고 있다.
그러면서 계속 카페순례 포스팅을 하지 못하는 이유는 도대체가 맘에 드는 카페가 없어서였다.
커피가 맛있으면 주인이 철학이 없고, 주인이 철학이 있으면 너무 고자세에다 커피를 숭배하시는 것 같고...
원주에 가서도 같이 간 커피동지에게 '철학이 있어야 돼. 카페를 하더라도 철학이 있어야 된다'며 목에 핏대를
세웠으니...


결론은 JP님이 내려주셨다.
'그래서 당신이 카페를 못하는거야'
ㅠㅠㅠㅠㅠㅠㅠ
맞아. 운명철학 카페도 아니고 철학은 무슨 놈의 철학!
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라떼아트나 로스팅 기술 배우는 것은 돈만 있으면 누구라도 언제든 할 수 있는 거라고 믿고,
그저 난 좀 커피에 관한 망할 놈의 철학을 위해서 더 많이 읽고 공부하겠다는 비효율적이고, 비현실적인 다짐을
해본다. 말하자면 커피 한 잔에 깊은 성찰과 사람에 대한 깊은 사랑을 담는 내공을 쌓는달까?
이런 정신실답지 않은 비장한 각오를 다지며, 그런 의미로 좀 늦었지만 커피 한 잔 마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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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Comments
  • 프로필사진 Duddo 2011.02.05 02:32 진지하게 읽고 있다가 영애가 나와서 깜짝 놀랐어요 ㅋㅋㅋㅋ
    순간 선생님이 영애 잘 읽고 있나 시험 하는거 같기도 하고...ㅋㅋ
    선생님을 만나고 많이 배워요
    커피맛도 몰랐던 꼬맹이 저를
    성장시켜 주셔서 감사해요...
    혼자있어도 혼자 있다는 느낌이 없이 제곁에 하나님과 커피가 함께 하네요^^ㅎㅎㅎ
    요즘 좀 빠져가지고 혼자만의 시간이 없었는데 이 글 읽으니 당장 콩나무로 달려가고 싶어 지네요^^
  • 프로필사진 BlogIcon larinari 2011.02.05 08:52 신고 '힐링커피'라는 책이 있는데 원주에 사는 작가가 쓴 책이야. 이 사람은 주변의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커피를 전파하면서 사람들의 치유를 경험한다더라. 일정 부분 공감이 돼. 꼭 치유가 아니어도 때로 같이 마시고 어떤 때 혼자 마시는 커피는 확실히 커피 너머에 있는 것들로 문을 열어주는 것 같애.
    혼자만의 커피타임 많이 가져. 아메리카노 적응했으면 슬슬 에스프레소 배워야지.ㅎㅎㅎ
  • 프로필사진 hs 2011.02.05 10:48 불안해지고 조급해지고....????
    꼭 한번 하긴 하셔야겠네요. ^^
    어제 TV에서 보니 하늘 아래 첫 동네라는 아주 높은 산에 다섯 가구가 사는 곳에
    할머니 두분이 장에를 가셔서 꼭 있어야 하는 것을 사시는데 그 첫번째가
    맥심 모카골드 100개짜리 한 봉지였다네요.
    맥심 모카골드가 우리 나라에 아주 뿌리를 깊이 내렸나 봅니다.
    저도 커피 맛을 좀 바꿔 보려고 해도 그게 잘 안 돼요.
    처음부터 맛을 드린 커피가 달콤,구수한 다방 커피라서....^^
  • 프로필사진 BlogIcon larinari 2011.02.05 23:15 신고 저도 봉지커피의 구수한 맛은 포기 못해요.ㅎㅎㅎ
    가끔 한 잔씩 타먹곤 하죠.

    그래도 해송님 조금씩 취향을 바꿔보시면 건강에도 좋으실 뿐 아니라 삶의 또 다른 차원의 기쁨을 누리시게 될거예요. 아주 신선한 원두로 조금씩 조금씩이요....^^
  • 프로필사진 mary 2011.02.06 16:19 고종 스타벅스에 가다, 작년엔가 읽었는데 기억나는 내용이 없네 ㅠ.ㅜ
    오늘 핸드드립 커피 한잔 대접받았다우.
    그 분의 핸드 드립을 지켜보니 모님과 좀 차이가 있던데.
    역시 핸드드립은 맛이 다르구나 하면서 향과 맛에 살짝 취하면서 나도 드리퍼를 사? 하고 잠시 생각했다는..
    그나 저나 나 카페에서 일하는 꿈 계속 품고 있어야 하나 어쩌나?
  • 프로필사진 larinari 2011.02.06 20:36 일단 그렇다면 만사 제치고 당장 핸드드립의 세계로 오셔야죠.
    두분 다 커피를 특별히 애정하시니까 핸드드립으로 갈아타기는 거 시급합니다.ㅎㅎㅎ

    저 근데요...
    거실에서 목자모임 하는데 방에서 아이패드로 댓글 달고 있어요. 헤헤.... 아, 그냥 궁금하실 것 같아서요.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 프로필사진 yoom 2011.02.08 02:15 대치동 사무실에 에스프레소 기계 있어서 ,,그것도 자동 ㅋ
    컵만 갔다대면 뽑아 먹을 수 있는 지라..
    싱가폴로 귀환 미루어 놓구, 오늘 약간 신나서 커피 과다복용 해서 지금 이러구 있습니다.
    헤헤 내일 죽었습니다 ㅠㅠ
    내일은 가배두림 커피 마셔야징~
  • 프로필사진 larianri 2011.02.08 09:38 새벽에 윰 이러구 있던 시간에 난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었다구.ㅎㅎㅎ
    오늘 일해야 하는데 완전 눈꺼풀이 위로 올라가지질 않아서 오랫만에 너의 그 에스프레소 기계로 한 잔 진하게 내렸어. 와, 진짜 에스프레소의 위력이라니!!!!

    나 내일 오후에 대치동 갈 일 있다. 내일도 사무실에 있니? 살짝 나와서 가배두림에서 탄자니아 한 잔 할 수 있을까?ㅎㅎㅎ
  • 프로필사진 forest 2011.02.08 13:25 원주에 그 유명하다는 커피집에도 내려가셨군요.
    산티에고든가...
    언젠가 저희도 한 번 간적 있어요.

    커피 한 잔 찐하게 마시면서 휠링 토크어바웃을 해야 하는데요...ㅋㅋㅋ
  • 프로필사진 BlogIcon larinari 2011.02.08 20:33 신고 잘 다녀오셨소? 어멋! 두 분이 소 된 댓글 대화를 보고 났더니...ㅋㅋㅋㅋ 좋은 여행이셨던 기운이 팍팍 느껴져서 잘 다녀오신줄 알고 있어요.
    산티에고는 아니고 저희가 점수를 많이 준 저 곳은 '소소정'이라는 곳이었는데요.

    오랜만에 오늘 에스프레소 내리면서 '언니 에스프레소 내려드린 기억이 가물가물... 나 너무 했다'라고 반성했어요. 조만간 한 잔 짜올리겠습니다.
  • 프로필사진 2011.02.08 14:14 비밀댓글입니다
  • 프로필사진 BlogIcon larinari 2011.02.08 20:35 신고 어제를 지내면서 그리고 다녀오면서 만감이 교차했단다.
    우리 언니도 늙을 수 있구나. ㅠㅠㅠㅠㅠㅠ
    기도하는 거 게을리 하지 말아야겠다는 결심도,
    예전보다 더 많이 사랑을 표현해야겠다는 결심도 했어.

    사랑으로 잘해드리쟈.
  • 프로필사진 복분자 받는 여자 2011.02.10 13:39 모처럼 여유로운 하루입니다.
    멸치 팔팔 끓여 육수내고, 김치 찌끄래기 잔뜩 넣고 끓이다가, 명절에 남은 쌀떡넣고 김치떡국을 끓여 그릇에 담고 쟁반에 올려가지고 와서 컴터 앞에 앉았습니다.
    기대하는 마음으로 요기 들어 왔는데 글이 없으니 왕 허전합니다.
    떡국먹으면서 요기서 놀다 가려고 했는데..
  • 프로필사진 larianri 2011.02.11 09:42 정줄 잡고 컴 앞에 앉은 거 이번 주 들어 처음인 것 같어.
    오늘에야 나도 모처럼 여유로운 아침.

    복분자액 사건 깜빡 잊고 있었네.ㅋㅋㅋㅋㅋㅋ
    이저 지희한테 빨리 나눠야 하는데....ㅋㅋㅋㅋ
  • 프로필사진 myjay 2011.03.23 07:30 그래도 저는 사모님의 철학을 지지합니다!!! ^^
    (근데 왜 저는 매번 답글을 달았다고 생각하는 포스팅에 제 댓글이 없는 걸까요...ㅡㅡa)
  • 프로필사진 larinari 2011.03.23 11:12 그 지지에 힘입어 느리고 대책없는 철학을 고수하겠습니다. 그러다 언젠가는 완전 철학카페를 하고야 말겠습니다. 주먹 불끈! 캄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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