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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을 살아가면서 '믿음'이라는 것은 어쩌면 그 분과 나의 맞지 않는 '타이밍'을 협의조정해가는 것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협의조정이 아니라 어쩌면 그 분의 때에 내 때를 맞추는 것일지도요. 그 분의 때를 이의 없이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성숙해 보입니다. 그 분의 때가 아닌데 그걸 억지로 맞춰보려고 안간힘을 쓰면 사는 사람들도 있지요.

대학원을 마치고 1년 학교에서 일을 하고 채윤이를 낳았어요. 채윤이를 낳고 2주 정도 되어 산후조리 하고 있는데 음악치료사 풀타임 제의가 왔죠. 그 때 당시는 음악치료사 풀타임 자리가 거의 찾아볼 수가 없었고 파트타임도 마찬가지였어요. 엄마와 남편의 반대를 무릅쓰고 삼칠일이 지난 산후 3주 만에 꽁꽁 싸매고 나가서 면접을 보고 5주만에 입사를 해서 풀타임 일을 시작했지요. 참으로 타이밍이 안 맞아요. 풀타임 자리를 주시려면 애를 갖기 전에 주시던지, 애 낳고 몸이나 좀 추스른 다음에 주시던지....아~놔, 그 분은 참 어떤 선택이든 갈등을 한 번 때리게 만드신다는 거죠.

시민단체에서 일하던 남편이 방황 끝에 대학원엘 들어가고 대학원을 마치고 어찌 됐는 월급은 적지만 원하는 일을 하게 되어 '이 때다' 하고는 4년여의 풀타임을 접고 파트타임 일을 시작했지요. 행복했지요. 아침 일찍부터 일어나 애들 얼굴도 못 보고 출근하고, 여덟 시나 되어야 퇴근해 돌아오는 그 생활을 접을 수 있었으니까요.
아~ 그런데 이건 또 뭐? 남편이 신학을 하신다고 다시 공부를 하시네요. '아~놔, 하나님 그럴려면 제가 계속 풀타임 했어야 하잖아요. 쫌 더 일찍 남편을 끌어가셨어야죠. 진짜 타이밍 절묘하게 꼬아 놓으시는데는 뭐 있으시다니깐!'

작년 한 해 남편은 천안에 있고 학교 들어 간 채윤이를 적응시키고 저도 거기 적응하느라 죽을 똥 살 똥 했지요. 작년 2학기부터 채윤이가 혼자 현관문 열고 아무도 없는 집에 들어와 있기고 하고, 점점 더 자라는 거예요. 급기야 올 해부터는 현승이를 채윤이 다니는 학교 병설 유치원에 입학시켰습니다.우리 큰 딸 채윤이. 아침에 동생 손 잡고 같이 데려가 유치원에 집어 넣고 지 교실로 올라가고, 학교 끝나고 집에 왔다간 현승이 하교 시간에 맞춰서 데려오고....이거 이거 거의 엄마 수준이 된 거예요. '야~ 진짜 한 고비 넘었다. 채윤이한테 미안하기는 하지만 한 구석 마음이 놓이네' 했죠. 이제 진짜 부모님 도움 안 받고 일하며 양육할 수 있는 시기가 되었구나.
그런데 또 이 타이밍 좀 보시라구요. 걸어다니는 이비인후과로서 총체적으로 고장이 나더니만 심지어 턱관절까지 들고 일어나서 '일을 하지 말라'는 거예요. 남편과 일을 쉬기로 다 합의가 끝났는데 어제 밤까지 '아냐, 턱만 나으면 다시 할 수 있을거야. 해야 해. 한 군데만 남길까?' 온갖 머리 터지는 고민을 하다가 깨끗이 손을 털었습니다. '그렇죠! 제게는 항상 이런 식이셨죠. 하나님과 제 타이밍은 이렇게 안 맞았어요' 하고 모든 걸 내려놓았답니다.

그런데 돌아보면 꼬였다고 생각하는 그 시점이 항상 더 좋은 날을 위한 시작이었다는 거예요.
결국 갈등 때리는 그 시간들은 내 욕심과 '나 혼자 할 수 있다. 내 인생은 내가 책임질 수 있다'는 교만을 드러내는 시간들이었죠. 다시 한 번 그 분의 타이밍과 내 타이밍이 다른 그 지점에 서 있습니다.
이번에 쉬면 영영 음악치료는 못 하게 되는 것 아닐까? 부터 살아갈 일에 대한 염려가 엄습하기도 하지만 그럴 때마다 지난 경험, 한 번도 내 타이밍과 계획이 그 분의 것보다 나아본 적이 없다는 경험을 꺼내보며 생각합니다.



처음으로 글과 함께 음악을 깔아봤습니다.
스웨덴의 팝 가수 카롤라가 부르는 스웨덴의 성가 '오직 하루(Blott en dag)'
우리에게는 '날마다 숨쉬는 순간마다' 로 더 익숙한 곡이죠.
원곡 가사가 또 마음을 울리네요.

오직 하루, 한 순간만
나의 아버지의 손안에서 쉬는 모든 것들이
그 속에서 위안을 얻게 하소서
.......

편하고 고요하게 쉬게 하소서.
사랑하는 아버지의 약속 안에서,
값진 과의 위안을 헛되게 하지 마시고,
내게 하셨던 약속대로
주여, 도와주소서,. 내게 일어나는 일들을.....
당신의 믿음직한 아버지의 손으로,
단지 하루,  단 한순간만이라도,
하늘 나라에 갈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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