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대'라는 생선이다.
어렸을 적에 거의 유일하게 먹었던 생선이다.
아버지가 비린내를 싫어해서 도통 밥상에 생선이 올라오질 않았는데
박대는 비린내 없는 생선이라(고 엄마 아버지가 그랬다) 선택받은 거였다.
꾸들꾸뜰 말린 걸 연탄불에 굽기도 하고, 조림도 했다.
아버지가 참 맛있게 드셨고 동생과 나도 덩달아 싸우면서 맛있게 먹었었다.

박대를 잊고 지냈다.
어릴 적 먹던 박대는 도대체 왜 싹 사라졌을까? 한 두 번 생각했던 것도 같다.

어느 해 시부님과 안면도 여행을 갔다가 좌판에 놓인 박대를 보았다.
'꺅, 이거!!!!!!! 저 어릴 적 먹던 생선이예요!!!'
이게 싹 사라진 것이 아니라 내가 살던 서해, 서천 인근에서 많이 잡히던 것이고,
서울 사람들은 잘 모르는 생선이었더 것이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며느리 추억 돋아서 완전 흥분하니까 어머님이 박대를 사셨었다.
그때 이후로 가끔 서해 쪽에 놀러 갈 일이 있으면 사다 먹기도 했었다.

어제 어머님이 전화를 하셔서,
에미가 좋아하는 그거 뭐냐. 그거 생선.....
박대가 들어왔다며 갖다 먹으라고 하셨다.
어머님은 몇 년 전 안면도의 어시장에서 박대하고 처음 안면을 트셨고,
나의 '꺅' 이후로 '박대=채윤이 에미'라는 공식을 가지게 되셨다.
그 전까지 어머니는 박대라는 존재를 모르셨다고 한다.
어머니가 박대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박대는 어머니께 와서 생선이 되었다.

그렇게 오늘 박대가 내 손에 왔고,
현승이는 '납작한 생선'이라며 좋아하고 맛있게 먹는다. 

사실 저 납작한 생선 박대는 교회 아래 꽃밭이 있는 목사관,
거기서 익살꾼 남매가 늙은 엄마 아버지를 웃기면서 살던,
네 식구가 함께 하던 그리운 밥상의 메타포이다.
루시드폴의 고등어처럼.
박대는 내게 그냥 박대가 아니다.

그런 박대가 우리 어머니에겐 듣보잡 생선이었으나
어느 날 나의 '꺆'에 어머니 또한 박대와 연루되신 것이다.
인생이란, 만남이란 그런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연루된 관계란 쉽게 왈가왈부할 수 없는 것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60평생 알지도 못해던 생선이 어머니 삶에 의미가 되었다는 것은 말이다.

내게 연루된 모든 관계를 좀 더 겸허하게 바라봐야지 싶다.
저 이름조차 우스운 박대가 내게 이렇듯 엄청난 의미인 것처럼
사람 사람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엄청한 이야기를 뒤로 하고 살아왔을 것이다.
그리고 어느 순간 우리는 서로에게 연루되었다.
그래서 그 사람의 의미가 내게 와 또 다른 의미로 존재한다.
'에미가 좋아하는 그 생선' 정도가 된다해도, 이것은 정말 엄청난 삶의 신비 아닌가.


(심지어 생면부지의 박대기 기자도 내게 와 눈사람이 되지 않았는가! 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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