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설에 이어 이번에도 (어머님이 안 해도 된다고, 한 접시 사면 된다고 하시는) 전을 메뉴에 넣었다. 나이가 든 탓일까? 나이가 들어 자연이 좋아지고, 밥과 김치와 된장찌개가 땡기는 것과 같은 매커니즘인가? 몸살 끝에 막 지져낸 생선전이 먹고 싶기도 했고, 기름 달구는 냄새를 막 피우고 싶기도 했다. 엄마가 일하는 걸 보면 나는 뭐할까? 나는 뭐할까? 하고 달려든 두 녀석들이 밀가루도 묻히고 계란도 입히고 쟁반에 한지도 깔고 시끌벅적하게 조수 노릇을 하더니 막 나온 생선전을 맛있게도 먹는다. 느끼할 땐 이게 딱이라며 블루레모네이드 한 잔 타서는 맛있다 맛있다 하면서 먹는다.


결혼하고 몇 년 동안 종가집 명절체험 제대로 했었다. 송편 한 말을 빚고나면 전을 부쳐야 하는데 끝도 없는 지글지글이었다. 열 종류가 넘는 전을 부치는 동안 어머님과 작은 어머님 한 분은 탕국이며 나물과 기타 음식을 하셨고, 전의 마지막은 잡채에 들어갈 야채볶기로 끝이 났다. 아침 9시부터 시작한 명절 음식 준비는 작은 어머니들, 며느리들, 시집 안 간 시누이들까지 손이 여러 개인데도 오후 4시나 지나야 끝나곤 했다. 일에 익숙하지 않은 신혼 때는 그러고나면 팔 다리 허리 아파 죽는다고 남편 안마기를 당당하게 돌리기도 했었다.


아버님 돌아가시고 이래저래 각자 명절을 보내는 분위기가 되고 이제 모이는 인원도 많이 줄었다. 무엇보다 전이나 부치고 간이나 보던 막내 위치에서 명절 음식의 반을 책임져야 하는, 어떤 때는 거의 다를 책임져야 하는 중견 며느리가 되었다. 몸살 끝 부실한 몸으로 막중한 책임감으로 음식 준비를 하다보니 '그때가 좋았지' 소리가 저절로 나왔다. 시키는대로 하면 되던 그때. 이젠 음식 해놓고 생색을 내기도 민망한 중견 며느리 아닌감. '그때가 좋았지'는 잠깐의 감상이긴 하다. 명절에 전을 왜 하는지 모르던 그때보다 전의 맛을 알게 된 지금이 좋다. 청년들을 만나면 그들의 탱탱한 피부와 무한 가능성의 미래와 자유가 부럽지만 '돌아가고 싶어?'하면 고개가 저어지는 것과 비슷하다. 어떻게 먹은 나인데, 어떻게 헤쳐온 인생인데.(흡) 다시 젊어지고 싶진 않다. 


남편에게 '여보, 나 장래희망이 뭐냐고 물어봐' 하고 자답했다. '초로(初老)의 여인!' (케케) 눈가의 주름, 쳐진 피부에 많이 적응이 됐지 싶다가도 어느 새 주름이 부끄럽다 느껴지기도 한다. 약간 애매한 이 나이가 지나서 흰머리나 주름과 더욱 한몸 이루는, 조금 더 늙은 나이가 되면 좋겠다. 그렇다고 조바심을 내지는 않을 것이다. 오지 않은 초로의 나날을 그리다 전이 좋아진 낯선 애매한 중년을 즐기지도 못하고 보내버릴라.  몸살 끝 내 손으로 부친 동태전을 맛있게 먹고 입맛이 돌아왔다. 전을 좋아하게 된 내 입맛이 은근 자랑스럽다. 암튼 이제부터 내 장래희망은 초로의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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