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자. 뭐래도 좀 먹자 - 차 세워줘요. - 밥 먹을래, 나랑 뽀뽀할래. - 차 세워 빨리. - 밥 먹을래. 나랑 잘래 - 창문 열고 뛰어내린다. - 밥 먹을래. 나랑 살래. 밥 먹을래. 나랑 같이...... 죽을래.


한참 된 드라마
<미안하다 사랑한다> 속 소지섭의 명대사는 쉬 잊히지 않습니다. 밥을 챙겨 먹이려는 집요함은 딱 우리 엄만데, 말하는 폼새는 어쩜! 쓰러지고 말겠습니다. 이 분위기에서 알겠어. 먹을게. 먹으면 되잖아결국 밥을 먹는다면 여자는 골룸. 이런 남자가 옆에 있다면, ‘안 먹어도 배부르다가 정답이죠. 더 오래된 드라마 <파리의 연인>에서 박신양은 가자 애기야로 여성 시청자들의 퇴행본능을 자극했었습니다.


남자들이
엄마 같(긴 하지만 자기 엄마의 억척스러움을 비롯한 모든 단점은 컨트롤키 누르고 쭉 긁어서 깨끗하게 삭제한)은 여자를 꿈꾸는 것처럼 여자들도 무의식중에 아빠 같은 남자를 찾는다고 합니다. 여친을 부르는 애칭 중에 애기가 많은 것만 봐도 연인 사이에 아빠-어린 딸의 심리적 관계는 흔히 일어나는 역동 같아요. 명품 가방을 비롯해서 기념일마다 선물 사주죠, 맛있는 밥 사주고, 위험한 밤길 안전하게 집까지 바래다주죠, 혼자 사는 여친 이사라도 할라치면 짐 옮겨주죠, 컴퓨터 연결해주죠, 용돈만 주면 딱 아빠네요. ‘밥을 먹여야겠다는 부성애, 로맨틱 러브의 탈을 쓴 부성애, 여자로 태어나 한 번 쯤 받아보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그런 남자는 현실에서는 만나기가 어렵다는 것이 함정. 엄마들이 밖에서 거하게 점심 드시고 들어온 날에는 소파에 널브러져 그러십니다. ‘내 배 부르니까 밥하기 싫얘엄마조차도 내 배가 부르면자식이든 남편이든 남의 허기 헤아리기 어려운가 봅니다. 하물며 남자, 대한민국 남자는요? 남자들이 타인의 욕구에 민감하게 반응하도록 양육되기가 어렵습니다. 가부장제라는 토양이 그렇습니다. 여자 친구의 배고픔, 정서적 친밀감에 대한 목마름은 둘째 치고 자신의 욕구조차 감지하지 못하는 게 보통 남자입니다. 현실적으로 더 어려운 것은 이겁니다. 여친이 원하면 언제든, 무엇이든 사줄 수 있는 경제력을 가진 젊은 남자가 얼마나 될까요? 데이트 때마다 비싼 레스토랑에 데려가고, 커플티와 운동화를 기꺼이 장만할 만한 돈을 가진 남자는 흔치 않습니다. 애인 사이에는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처럼 데이트비용을 혼자 다 감당하고 가끔 커플티도 사주지만 왜 남자가 다 내야하나? 데이트 비용을 나눠서 내면 안 되나?’ 할 때가 있을 겁니다.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돈이 없으니까요. ‘이걸 한 번 짚고 넘어가, 말어?’ 하다가도 찌질한 남자 될까봐 꿀꺽 삼킬 겁니다. 결혼자금도 모아야 하는데 월급이 데이트비용에 다 들어가고··· 이걸 어쩌나딜레마에 빠져 조용히 피 흘리고 있는 남친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흔히 말하는 남성적인 면모 즉, 적극적이고 주도적인 모습을 지닌 남자 청년를 잘 못 봤습니다. 연애 중이거나, 소개팅을 열심히 하고 있거나, 주변의 남자 중에서 찾아보겠다며 둘러보는 제자들이 하는 얘기도 비슷합니다. ‘오빠가 주도적으로 데이트를 이끌어갔으면 좋겠어요. 만나서 어디 갈 거냐고 물어볼 때 정말 짜증나요.’ ‘그 오빠 그닥 제 스타일은 아닌데요. 딱 부러지게 고백을 해오면 한 번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 같아요. 행동을 보면 좋아하는 것 같은데 제대로 고백은 안 하고··· 우유부단함 때문에 더 싫어요이들이 교회 오빠라서 세상 남자들과 달리 더 소심한 걸까요?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정작 자신 안의 남성성을 신뢰하고 주도적인 태도로 (그 맥락 안에서 연애와 결혼도 선택하며) 삶을 살아가는 건강한 남자 찾기는 원래 쉽지가 않습니다. 이것은 건강하지 않은 남자 개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가부장 문화가 남자들에게 준 특권의 어두운 그림자일 것입니다. 남자다운 강인함에 대한 기대는 높은데 현실의 나는 거기에 못 미치고 늘 왜소할 뿐입니다. 그런 자신을 인정하는 것은 더욱 두렵기에 과도하게 주도적이 되거나 더욱 움츠러들 수밖에요.

 

단언컨대, 여자 친구를 아빠 같은 마음으로 돌보고, 품어주고, 이끌어 줄 수 있는 남자는 없습니다. 여자들 들으라는 얘기이구요, 누구보다 남자 들으라고 하는 얘기예요. 한 여자를, 한 여자의 인생을 책임지고 행복을 지켜주겠다는 만용은 필요 없습니다. 자신의 삶을 진실하게 대하고 지키는 만큼 여자 친구의 행복을 지켜줄 수 있습니다. 자기 힘의 한계를 정직하게 바라보고 수용하는 만큼 타인을 관용할 수 있습니다. ‘남자의 짐을 내려놓는 남자, 그런 남자가 나도 남도 자유롭게 하는 남자 사람입니다. 세상에 없는 남자가 되려하지 말고, 세상에 없는 남자 찾으려 하지 말고요. ‘나 자신이 되어 우리 만나요.

 

<QTzine 8월호>_나 자신이 되어 연애하기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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