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맘에 한 노래 있어 9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짧고 굵은 사랑에의 항변이다. 영화 <봄날은 간다> 주인공 상우(유지태)의 대사지만 누구나 언젠가 한 번쯤 되뇌어본 말이기에 명대사의 목록에 남았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휴대폰 광고 속 대사도 떠오른다. 사랑이 변하지 않는다는 지고지순한 태도, 사랑은 움직이고 변하는 거야, 솔직 당당하게 인정하는 태도. 어쩐 일인지 둘 다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는가. 변하지 않는 것이라 간절하게 믿고 싶은 것은 결국 변하고 말 것임을 알기에 두려움으로 붙드는 썩은 동아줄인 지도 모른다. 바람기, 변심, 고무신 거꾸로 신기. 같은 연애 사담을 나누고자함은 아니다. 영원한 사랑은 없다, 온전한 사랑은 하나님 사랑뿐이다, 설교를 하려는 것도 아니다. 이 찬송의 이 가사가 자꾸 입에 맴도는 탓이다.

 

이전보다 더욱 사랑합니다.

이전보다 더욱 사랑합니다.

 

미국의 낭만파 시인 롱펠로우(Henry Wadsworth Longfellow)는 시를 쓰고 가르치는 일을 노년이 되기까지 열정적으로 했다고 한다. 그 비결을 묻는 말에 정원 한 구석의 고목을 가리키며 이렇게 답했다고. “죽은 듯 보이는 저 나무가 봄이 되면 다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네. 그 이유는 저 나무가 매일 조금씩이라도 성장하고 있기 때문이야. 나도 그렇다네.” 살아 있는 것은 (눈에 보이지 않아도) 매일 조금씩 자라고 있다는 뜻이다. 우리의 사랑이 살아 있다는 증거는 아주 조금씩이라도 성장해야 할 것 아닌가.

 

내 주 되신 주를 참 사랑하고 곧 그에게 죄를 다 고하리라

큰 은혜를 주신 내 예수시니 이전보다 더욱 사랑합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뜨겁게 고백해본 적이 언제였던가 싶다. 어느 뜨거운 수련회 마지막 밤이었던가? 오랜 기도가 응답되어 기쁨의 눈물과 함께 흘린 말이던가. 언젠가 신앙생활이 뜨거웠던 적이 있었는데, 공동체를 향한 마음을 주체할 수 없어서 시간을 내는 것도, 주머니 털어 밥을 사고 선물을 챙겨주며 내 배가 부르던 시절이 있었는데, 어쩌다 모든 것이 맹숭맹숭해진 것 같기도 하다. 사랑을 하긴 하는 건가? ‘주님 사랑해요, 아버지 사랑합니다.’ 영혼 없는 고백은 찬양시간의 립싱크로만 남은 것인가? 기도, 선교, 봉사, 예배에 뜨거운 주변 친구들이 생소하기만 하다. 사랑이 식었어. 사랑이 어떻게 변하지?

 

성장하는 사랑은 변한다. 성장이라고 하니까 마냥 커지는 느낌이지만 마음의 성장, 사랑의 성장은 위가 아니라 깊이이고 넓이이다. 통장의 잔고가 눈에 띄게 많아지는 것처럼 온갖 긍정이 보란 듯 확장되는 것이 아니다. 처음 연애할 때 설렘의 무한충전으로 부풀어 오르던 행복함, 영화관에서 팝콘 봉투에서 손끝만 닿아도 온몸을 압도하는 찌릿하던 전율이 무한대로 커지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안다. 조금 아쉽고, 시간이 지날수록 아련하긴 하겠으나 그것은 사랑의 시작이었을 뿐임을 안다. ‘, 내가 생각하던 그런 사람이 아니었네,’ 실망하고, 차이로 인해 아픈 시간을 함께 보내며 서로를 더 섬세하게 이해하게 되면서 사랑은 깊어진다.

 

그러니까 시인 롱펠로우의 나무처럼 죽은 듯 보이는 관계 속에서도 매일 조금씩 자라고 있다면 다시 꽃이 피고, 작년보다 더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음이다. 그러니까 눈물 콧물 흘리며 기도하던 뜨거움이 사라지고, 예배를 향한 열정은 잃은 지 오래, ‘교회 안 나가를 고민하다 가나안 교인이 되었다 할지라도 사랑 자체가 소멸하여 없어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더 단단한 사랑을 위해 메마른 겨울바람을 맞고 서있는 시간일지도 모른다. 무성한 잎을 내고 열매를 맺던 이전보다 더욱 사랑하게 되는 시간일지 모른다. ‘하나님, 당신께 실망했어요. 이런 기도 하나 빨리 안 들어주시고. 제가 큰 걸 바란 것도 아닌데......’ 하는 순간에도 이전보다 더욱 사랑하는 것을 멈출 수는 없다. 아니, 살아 있는 한 멈추어지지 않을 것이다.

 

수 년 전에 서른 셋 젊은 싱그러운 나무 같은 몸에서 암이 발견되어 긴 시간 투병하고, 나아지고, 희망하고, 절망하다 하나님 곁으로 간 청년이 있었다. 호스피스에서 보낸 마지막 며칠 동안 내내 가족들과 함께 불렀던 찬송이 이곡이었다. 건장한 청년으로 암 선고를 받는 충격의 순간, 고쳐주실 줄 알고 희망하던 순간, 희망이 절망이 되는 순간에도 그의 영혼은 이전보다 더욱 사랑합니다.’ 노래했었나보다. 어제와 다른 사랑, 어제보다 더 깊어진 사랑의 성장을 언제까지 해야 하는지 가르쳐 준 친구였다.

 

숨질 때에라도 내 할 말씀이 이전보다 더욱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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