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일찌기 다른 엄마들이 방학했다며 클났다하고 개학했다며 신난다 하는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었다.
아뉘, 애들 아침부터 깨우지 않아도 되고, 숙제 걱정 안해도 되고, 무엇보다 스트레스 없이 쉴 수 있는 방학이 어찌 싫단 말인가? 라며 자질부족의 엄마라는 식으로 속으로 비웃었으나....

지난 화요일 두 녀석 개학하고 혼자 오전에 집에 있어보니 이게 딴 세상이다. 개학은 곧 엄마의 방학이라는 것을 온몸으로 실감했으니 말이다.
방학 한 두 번도 아닌데 왜 이리 느낌이 다르지? 생각해보니, 지난 방학은 모두 아빠의 방학에 무게가 더 기울어져있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월요일마다 내려가던 아빠가 늘 집에 있다는 것만으로 매 번 방학은 이벤트 그 자체였었는데 이번 방학부터는 학생이 아니라 말하자면 직장인의 신분으로 출퇴근 하시며 새벽기도 하시니.....그저 한 달 내내 셋이서 집 안에 꽁꽁 묶여있던 터였다.


아침 멕여놓고 설겆이하고 청소하고 좀 쉴라치면 '엄마, 뭐 먹을 거 없어? 배고파' 이러면서 들이대고,
하루종일 지 에미 엉덩이 붙이고 앉아 있는 꼴을 못 봐주시니 말이다.


날씨도 추운데다 자동차도  맘대로 쓸 수가 없는 뚜벅이 신세가 되어 어디 데리고 나가기도 힘들고...
방학내내 집에만 있다가 잠실 교보문고에 한 번 나가게 됐는데 우와, 비록 만화책이긴 하지만 책을 사자마자 읽고 싶어서 난리를 치더니 지하철에서 꼼짝없이 독서 삼매경에 빠지시기도 하였다.


어릴 적 생각하면 그래도 혼자서 만들고, 부시고, 읽고, 그리고, 음악 듣고, 춤추고 참 잘 노는 편인데...

애들이 있으면 책을 읽어도 읽는 것 같지 않고, 조용한 묵상도 안 되고, 아무 때나 내 시간 치고 들어오는 통에 짜증만 나고....

방학 말기에는 언젠가 현승이의 그림 속에 있던 이 표정으로 하루죙일 보냈다.
노래도 하나도 안 하는데 목이 꺼끌꺼끌할 정도로 소리를 질러대고....
 
아, 정말 개학이 자유다.

'아이가 키우는 엄마'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모님? 엄마?  (26) 2009.09.08
시험공부는 애들을 어떻게 만드나?  (18) 2009.06.25
스타워즈 폐인  (17) 2008.09.20
우리 아이들의 아빠  (13) 2008.07.30
패스트푸드점  (10) 2008.03.11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