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에게 해물 부추전을 해줬는데 아주 그냥
애를 쓰면서 먹는다. 최대한 (좋아하는) 오징어가 많이 있는 쪽을 잘라내야 하고, 그러면서도 청양고추는 피해 가려는 것이다. 헤집고 고르며 두 녀석이 접시를 싹 비우고 났다. 설거지 하며 생각하니 이놈들 오징어 골라 먹고 고추 골라내느라 평소 싫어하던 호박과 양파를 막 먹어댄 것이다. (안 보여서 그렇지 호박이 엄청 들어갔음. 으흐흐)


나도 그렇게 살아야겠다. 단순하게 좋은 거 좋아하고 싫은 것 싫어하며... 살다 보면 나도 모르게 몸에 좋은 호박도 먹고 살게 되지 않겠나. 좋은 걸 좋아하는 것도, 싫은 사람 싫어하는 것도 괜한 죄책감에 제대로 해보질 못한다. 내가 좋은 걸 하면 이기적인 것 같고, 싫다는 감정이 올라오면 하나님 사랑에 위배되는 일이라 버리고 없애야만 하는 것 같아서. 싫은 것 안 싫어하려고 애를 쓰다 더 꼬여버린 일과 관계가 얼마나 많은지. 처음부터 '싫구나!' 인정하고 들어갔으면 오히려 쉬웠을 것을.


하늘 아버지의 마음이 설겆이 하던 내 마음 같진 않으실까. '요 녀석들, 마음껏 골라 먹어라. 니들이 골라봤자다! 이놈들아' 큭큭거리며 귀여워하시는. 예수님도 아니면서 세상 모든 사람을 사랑하려 애쓰지 말고, 그저 좋은 것을 좋아하고 싫은 것을 싫어하는 아이 같은 단순함이라도 누리며 살 일이다. 아이 같은 내게 하늘 아버지가 말씀하신다. '니가 나를 도우면 얼마나 돕는다고 그리 애를 쓴다냐. 내가 너를 지은 그 모습 그대로 행복하거라. 편식해도 좋다. 행복하게만 살거라.' 그러면서 내가 헤질러 놓은 아버지 나라의 식탁을 치우시며 큭큭거리신다. '짜식, 호박 먹은 줄도 모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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