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독이 별 건가?

이유를 묻지 않고 아무 때나 찾는다면 커피도 중독이지.

 

남편은 커피를 좋아하지만 중독이 되진 않았다.

커피 줄까?

(라고 내가 물으며 기대하는 자동반응은 당연히 '응'이다)

아니, 괜찮아.

(라고 답하면 난 이것조차도 섭하게 생각한다. 난 커피 중독에 관심 중독, 인정과 칭찬 중독)

남편은 커피를 좋아하지만 마시고 싶어할 때가 있고 그렇지 않을 때가 있다.

 

며칠 전, 금요 기도회 설교를 준비하던 남편이

나 커피 줘. 진하게.

라고 했다.

오랜만에 바리스타 본능이 살아나서 맛있게 한 번 내려줘야지 싶었다.

아이스로 진하게 마시고 싶은 몸과 마음의 상태를 알기에 원두량을 많이 잡았다.

갈아서 드리퍼에 담아놓고 보니 조금 더 넣어도 될 것 같다.

몇 알을 더 갈아서 꽉꽉 채웠다.

 

드립 시작.

부풀어 오른다, 오른다, 오른다.

넘치나?

어, 어, 어, 어..... 홍수! 실패다.

 

커피 하루 이틀 내리는 것도 아니고 드리퍼에 맞는 적정량을 너무 잘 알고 있다.

'진하게'에 꽂혀서 여기에 진정성을 꽉꽉 눌러 담고 싶은 열정이 과했다.

 

실은 이날 오전에 에니어그램 2단계 첫시간 강의가 있었다.

실은 2단계의 안내를 정말 잘하고 싶은 마음에, 열정과 진정성이 과하여 강의를 좀 망쳤다. 

처음 하는 강의도 아닌데 약간 어버버버 했다.

1,2단계 강의 중 가장 어려운 부분이었는데,

그간에는 나름 잘 설명하고 있다고 자부했는데 말이다.

 

담고 싶은 얘기가 너무 많았다.

그 몇 달 사이 공부하고 얻은 통찰을 추가해 꾹꾹 눌러담다 보니

어, 어, 어, 어..... 넘치고 말았다.

생각할수록 부끄럽고 며칠 마음이 무거웠는데 큰 배움의 기회로 삼기로 한다.

 

강의 한 번으로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키겠다는 환상,

그리고 과시욕, 욕심, 조급함 이런 것들을 다시 보게 되었다.

 

이 날, 그 어려웠던 강의의 내용은 

'성격이라는 중독과 성격으로 나를 온전히 지켜낼 수 있다는 환상'이었다.

 

나 이런 강사.

내 입으로 떠들떠들 가르치고,

강의를 망치는 것으로 내가 말한 것을 몸으로 다시 배우는,

상처 입은 강사. 이런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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