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가 구속한 여성]

그리스도가 구속한 인간, 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구속한 여성이라니. 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제목에 이끌려, 아니 김세윤 박사님 자체에 이끌려 북토크에 갔다. 저자로서 북토크를 당해본 적은 있지만 내 발로 찾아가 본 능동태 북토크는 처음이다. 책의 내용이 궁금해서는 아니다. 사실 청년 때  다니던 교회에서 매주 김세윤 박사님의 성경 강해를 들을 수 있었다. 당시 청년부 모임을 빠지고 오후 성경공부 가 있곤 했다. 그때 이미 여성과 남성의 관계를 어떻게 보시는지는 충분히 들어 알고 있다. 책 역시 2004년에 나온 <하나님이 만드신 여성>의 개정판이다. 그러니 나도 모르게 그 자리에 이끌려 간 것은 제목이 아름다워서, 그리고 김세윤 박사님의 사투리 억양이 듣고 싶어서라 할 밖에.


남편이 신대원 다니던 시절. 여성 목사 안수에 관한 논쟁이 있었다. 지켜보던 나는 여러 번 뒷목을 잡았다. 2000년 대에 그런 주제로 목에 핏대를 세우고 있다는 것 자체에 이미 가슴이 답답했고, 싸이 클럽에 올라오는 글과 댓글을 읽다보면 정말 털썩!이었다. 남편에게 미안하기도 했다. 다니던 교회가 속한 교단이었고 결국 본인의 선택이긴 했지만 내 바램을 배려해 선택한 신대원이었기에. 10년을 훌쩍 뛰어 넘어 지금 남편이 섬기는 교회에서는 선임 목사님이 여자 분이시다. 물론 교단이 달라졌다. 똑같이 설교하시고 똑같이 교회업무를 보실 뿐 아니라 선임, 보통의 교회로 말하자면 수석 목사님이시다. 아무 문제가 없다. 아마도 남편과 논쟁했던, 지금은 목사님이 되신 그때 그 신대원 동기분들은 '심방 전도사님'이라 불리는 여성 동역자들과 함께 사역하고 계실 것이다. 여성 안수에 대한 입장은 여전하실까. '여자들은 교회에서 잠잠하라!!!' 


여성 안수가 논쟁 꺼리가 되는 신학교와 교회, 부끄러웠고 부끄럽다. 당시 늦게 신대원에 가 혼신의 힘을 다해 공부하며 진심 행복해 하던 남편이었다. 1대 17로 싸우는 느낌으로 그 즈음 많이 괴로워했고, 외로워했던 기억이 새롭다. 논쟁은 그렇다 치고 클럽에 올라온 글과 댓글 중엔 믿어지지 않는 내용도 있었다. 목사가 되겠다고 하시는 예비 목회자들의 여성관이 이럴 수가 있을까. 정확한 워딩은 기억나지 않지만 '여자와 북어는 삼일에 한 번은 패야 한다'는 식의 말이 스스럼 없이 나왔다. 이런 분들은 '남자는 여자의 머리이다!' 성경의 이름으로 아내를 때릴 수도 있겠구나 싶었었다. 무엇보다 진보적인 사회의식을 가진 분들이 신학적 담론으로만 가면 급 근엄하게 제사장 제의를 꺼내 입고 전통과 보수를 지키려 하는 것에 더욱 답답했다. 벌써 10여 년 전의 일이다.


북토크도 이런 말로 시작되었다. '이 책이 나온지가 10년이 넘었는데 그로부터 한 발자국도 나가지 못하고 여전히 이 논쟁이라니요' 당연한 일인지 모르겠다. 여성 안수에 관한 신학적 근거나 논리가 부족해서 그런 것 같지는 않으니 말이다. 그러니 깨알같이 필기해 온 주옥같은 내용을 다시 옮겨 적진 않겠다. (도 있고 기사로 정리된 것도 있으니 관심자들은 참고하시기 바람) 


가르침과 삶, 글과 삶이 일치하는가가 관건이다. 설교, 강의, 글에 부합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신학자, 또는 목사에게는 더욱 관관건건이 아니겠나. '그리스도가 구속한 여성'을 바울신학의 관점에서 논증해내는 것과 남성으로서 여성을 동등하게 대하는 것은 다른 문제일 수 있다는 것이다. 북토크를 통해 저자가 그렇게 살고 있는지를 가늠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것을 가늠하는 자리도 아니다. 하지만 텍스트보다 더 중요한 것, 느낄 수 있는 것이 '그리스도가 구속한 여성'들에게는 있다. 질문에 대한 답 또는 강연 중에 내게 느낌적인 느낌으로 와닿는 말이 있었다. 구약과 신약을 오가며 논리로 풀어내시던 중, '여자들이 교회에서 잠잠하라' 이 한 문장이 아니라 복음의 정신에 비추어보라!시며 하신 툭 나온 말씀. "생각해보세요. 신학교에서 똑같이 공부하고 똑같이 학위받고 남성은 담임목사가 되어 교황(가톨릭에서는 교황을 두고 우상화 한다고 비판하는데 개신교 안에는 교회마다 교황이 있다는 농담이 있단 얘길 하시며)의 삶을 살아요. 똑같이 노력하고 공부했던 자매는 심방 전도사라는 이름으로 말도 안 되는 처우를 받으며 사역해요. 이게 그리스도의 정신입니까? 이게 복음의 정신이에요?" 순간적으로 신학, 논리를 제치고 저자 안의 뜨거운 가슴이 표출된 것으로 보였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진행자는 남성 목사님, 패널로 여성 편집장 한 분이 함께 했다. 진행하시는 남자 목사님은 유능하게 느껴졌다. 이슈를 끌어내기 좋은 질문에 적절한 유머는 물론 타임 키퍼로서의 역할도 잘했다. 그분이 던진 어떤 질문 자체에 남성우월적 가치가 전제되어 있다며 여성 참석자가 질의응답 시간에 지적했다.(여성들에게 리더를 시키면 일을 잘못하는게 현실이다, 이런 내용이었다.) 김세윤 박사님은 '그렇다! 맞다'고 인정하시며 '미국에서 흑인들이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은 400여 년 노예생활의 결과라는 말이 있다. 때문에 방법은 더 기회를 많이 주는 것 외에 없다. 하물며 여성들은 수천 년 불평등 구조 속에서 살아왔다. 교회 역시 여성을 격려하고 기회를 더 많이 줘야 한다. 현재 우리 상황은 100m 달리기에서 남성은 50m 앞에서 출발하기 시작한 불평등한 게임이다'라고 하셨다.


재미있는 것은 이 질문과 답변 이후로 진행자 남자분이 '질문은 한 분만 더 받겠다. 교수님이 다음 일정 때문에 바쁘시다. 질문하시는 분들은 짧게 간결하게 하라'며 신속한 진행에 박차를 가하셨다. 김세윤 박사님의 반응. "괜찮아요. 질문 더 받아요. 여기까지들 오셨는데 궁금한 거 질문해야지. 자매님들이 좀 더 질문해주세요." 꽤 많은 사람이 모였는데 여성, 특히 여성 목회자분들이 많은 것 같았다. 그리스도가 구속한 여성들이다. 그리스도가 구속한 여성 목회자들이다. 이분들은 어떻게 느꼈을지 모르겠다. 적어도 나는 책이나 강연 때문이 아니라 말과 말 사이, 강연과 강연 사이 박사님이 '자매들'을 대하는 태도에서 감동을 받았다. 북토크 마치고 따사롭다는 말이 딱 어울리는 봄볕을 맞으며 걸었다. 그리스도가 구속한 여성인 나, 여성인 내가 좋다며 약간 춤추듯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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