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P님은 한 때 시인이었다. 시를 지어 노래를 만드는 노래하는 시인이었다.그의 마지막 작곡은 내 기억으로 한영교회 청년회 주제곡이었다. 참 좋은 노래였다. 기타를 들고 눈을 지긋이 감고 허공을 향해 고개를 살짝 든 채 노래하는, 그리고 노래를 만들고, 북한 어린이들을 위해 한 끼 금식을 하여 점심값을 보내는....아무도 시키지 않는 일을 하는 그런 매력에 빠져들었을 것이다. 누가? 라고 하는 사람이.
나를 만난 이후로 남편이 노래를 만들지 않았다. 남편의 더 젊은 시절을 알고 보낸 친구들은 우리가 교제하고 결혼할 즈음에 '어떻게 종필이 오빠 얼굴이 저렇게 밝아질 수가 있냐?'고 놀라곤 했었다. 나 역시 남편을 본 첫인상이 '거참 사람 참 젊은 사람이 되게 칙칙하네' 이런 느낌이었으니까.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위 사진은 신혼 초에 찍은 사진이고 저 사진에선 정신실에 물든 밝아진 김종필이 느껴진다.






맞다. 시를 쓰던 김종필은 여깄다.
시를 쓰던 JP는 칙칙했고, 쓸쓸해보였고, 좀 무서웠고, 멀게만 느껴지는.....
좀처럼 그에게 가 닿을 수 있을 것 같지 않은 고독한 청년이었다.
어쩌면 시를 쓰는 김종필의 마음에 시를 길어올리는 우물이나 웅덩이 같은 것이 있었을지 모른다. 나는 본능적으로 그 우물의 깊이를 느꼈고 매력에 빠져들었고 연민을 가지게 되었다.






가끔씩 '당신 전처럼 시도 쓰고 노래도 만들고 그래봐. 애들 위해서 예쁜 노래도 좀 만들어주고... 당신이 만든 동요 가지고 채윤이 창작동요제 내보내면 좋겠다' 이런 말을 별 기대없이 하곤 했었다.
'이젠 시가 써지질 않아' 라는 대답을 해왔다.
남편도 나도 결혼생활을 통해서 정말 많이 변했다. 남편 얘기만 하자면 남편은 밝아졌고, 더 행동하게 되었고.... 또...... 또 있나?






요즘 문득 시를 쓰던 남편의 영혼의 우물을 내가 메워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곤한다. 고독과 외로움을 풀어내고자 애쓰던 흔적이기도 할테니까 외로움의 웅덩이가 어느 정도 메워졌을 때 더 이상 그 때 그 시가 나오니 않는 게 당연할 수도 있다.
나무꾼이 선녀옷을 감추듯 나는 남편의 시의 샘을 감춰버린 건 아닐까? 하는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를 해본다. 





남편이 다시 시를 쓰고 노래를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오늘 아침 문득 남편을 위해 기도하면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젊은 날 불렀던 노래와 다르겠지만 그 다른 노래를 부를 수있으면 좋겠다. 누구보다 예술적이고 독창적이고 독립적인 남편이 자신만의 노래를 찾아내서 다시 한 번 열정을 쏟아부을 수 있으면 좋겠다. 고독해서 부르는 노래가 아니라 고독한 누군가들을 위해서 불러주는 노래를 부를 수 있으면 어떨까?
그 노래는 그가 그렇게 좋아하는 설교가 될 수도 있고,  영혼을 돌보는 만남이 시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요즘은 사진을 찍으면 남편의 웃음에 어색함이 없다. 언젠가부터 남편의 웃음이 자연스럽고 해맑단 얘길 많이 듣는다. 그 해맑은 웃음에서 건져올리는 김종필의 새로운 시와 노래가 듣고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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