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으로 쇠는 남편 생일과 결혼기념일이 또 겹쳤다. 결혼 15주년, 그리고 남편의 생일. 그간 한 푼 두 푼 모은 원고료를 털어서 기타를 선물했다. 무슨 날, 무슨 날 챙기지 못한다고 타박만 했지 정작 무심하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큰 맘 먹고 한참 전부터 준비를 하고 있었다. 실은 남편이 기윤실을 그만두고 퇴직금의 반을 털어(기타가 얼마나 비쌌길래? 퇴직금이 얼마나 적었길래?) 기타를 장만했었다. 내가 음악치료를 프리로 전환하면서 어쩔 수 없이 남편의 기타를 들고 다니게 됐었는데...... 그런데...... 치료상황이 상황이니 만큼 기타가 갈수록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에잇, 기타소리가 왜 이래?' 할 때마다 미안해서 오그라들고 했다. 그래! 결혼 15 주년, 내가 좋은 기타 쏜다.



눈 감고 전방 위 25도 정도로 고개를 들고, '내 주의 은혜 강가로' 기타 반주를 하는 모습. 아, 미간에 힘이 들어가 약간 찌푸린 표정은 필수 옵션이다. 이것이 김종필이란 사람이 내 인생에 들어온 첫 장면이다. 청년 시절 김종필을 생각하면 기타를 빼놓고 떠올려지는 장면이 별로 없다. 그리고 물론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마법의 보자기를 뒤집어 쓰게 된 것이다. 기타 메고 다니던 김종필은 매우 내향적이고, 시니컬하고, 우수에 젖어 있는 듯 하고, 칙칙하고, 생의 의미와 신앙의 깊은 고뇌로 미간에 힘이 들어가 있는 범접하기 어려운 청년이었다. 시를 쓰고 노래를 짓고, 기타 반주를 하고.



악처(또는 구원자)를 만난 탓(덕)에 이전의 고뇌하던 인생에서 일상을 몸으로 살아내는 생활인이 되어야 했다. 책과 기타 대신 손에는 아이 우유병 닦는 솔을 들었어야 했다. 돌이켜보면, 짧다할 수 없는 결혼 15년. 불을 켜서 비로소 등경 위에 두는 자리로 옮겨온 남편의 여정이 아니었나싶다. 등불을 밝혀 자꾸만 그릇으로 덮어두려 했던 남편, 아니 기름도 심지도 다 준비되었는데 불을 켜지 않으려 애썼는지도 모른다. 결혼 6년 차에 신대원에 들어간 이후로 남편은 정말 자기의 빛을 밝히고 태우고 등경 위에 두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 같다. 감사하다.



그러다보니 남편도 어느덧 중년이다. 이 교회로 옮겨온 지 3년 째인데, 정말 열심히 배우고 쉴 틈 없이 일하고 있다. 그런 남편에게 문득 그의 20대를 떠올리게 하고 싶어졌다. 아직 어떤 역할의 옷도 입지 않았던 그때, 그때의 자신을 가끔씩 돌이켜보면 어떨까 싶어서인 것 같다. 나와 정식으로 교제한 이후로 그는 단 한 곡의 노래도 짓지 못했다. 시평론 하시는 김동원 선생님은 시가 나오기 어려울 거라고 평하신다. 시인은 배가 고프고 사랑이 고파야하는데 JP는 배가 불렀단 말씀. ㅎㅎㅎㅎ 100% 공감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편이 그 시절 감성을 가끔씩 꺼내보며 할 수 있다면 다시 노래도 지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목사, 팀장, 이런 역할에 충실하되 언제든 그 역할로부터 자신을 분리해낼 수 있는 힘이 있었으면 하는 바램인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거금을 투자해서 뽀대나는 기타를 선물로 안긴 것에 대한 변이다. 서프라이즈로 선사하고 싶었고, 또 도움을 받을 분이 딱 옆에 계셨었는데..... 전문가께서 기타는 칠 사람이 직접 잡아봐야한다 하셨다. 친절한 전문가께서 좋은 기타샵 소개 해주시고 미리 가 몇 개를 봐두시고,  내가 남편을 뫼시고 샵에 갔다. 네 대의 기타를 놓고 신중하게 고르는데.... 제일 마음에 든다며 고른 기타 소리를 듣고 웃음이 빵 터졌다. 기타 소리가 어쩌면 그렇게도 김종필스러운지..... 무겁고, 담백하고, 징징거리지 않는 진중함. ㅎㅎㅎ 잠시 고민하더니 결국 다른 기타를 선택했다. 화려하고 찰랑거리는 소리의 기타였다. 처음엔 그래서 싫다고 했었는데, 그래서 선택하겠단다. 이제껏 좋아하던 소리 대신 새로운 소리에 마음을 열겠다는 뜻이었다. 이 말이 참 반갑게 느껴진다. 저녁에 남편이 기타치는 일이 많아졌다. 가끔 남편 옆에 나도 기타를 들고 앉아 배우기도 하고 어설픈 실력으로 함께 연주하고 노래도 한다. 우리의 나머지 나날들이 따로 또 같이 착한 발걸음이 되었으면 좋겠다. 역할, 명성, 힘, 지위, 사람들의 인정과 칭찬 등에 마음을 빼앗겨 '진정한 나'를 잃어버리지 않고 우리 자신의 노래를 부르며 갈 수 있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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