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에서도 그랬다. 우리 엄마의 사위에 대한 평은 늘 이렇다. '사람이 점잖고, 찬찬하고....차~암, 저 사람은 어찌 저렇게 찬찬한지...' 우리 시어머니의 아들에 대한 평은 이렇다. '걔가 어릴적 부터 점잖았었다'

그렇다. 우리 남편은 겉보기 점잖은 사람이다. 입에 발린 말, 조금이라도 정서상 오버가 된다 싶은 말, 결정적으로 어떤 말이 자신의 장점을 드러내는 말이라고 생각되는 말은 거의 하지 못하는 것 같다.


어쩌면 남달리 내가 김종필에게 빠진 이유는 그것인지도 모르겠다. 그 자신은 드러내지 않는(어쩌면 때로 인정하지도 않는) 가능성들을 보았다는 것.

때문에 나는 남편을 만나 연애하고 결혼해서 사는 동안 남편의 low self-esteem 성향을 그리 싫어하지 않았다. 가끔 '좀 나서지, 좀 드러내지'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지만 그 정도로 좋았다. 오히려 내가 할 일이 있는 것 같아서 좋기도 했다. '이렇게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인데 내가 살면서 자신감을 불어 넣어주고 인정해 줄 때 정말 좋은 하나님 나라의 일꾼이 될거야' 하는 막연한 생각을 하면서 말이다.


정혜신의 말처럼  남편의 low self-esteem 적인 성향은,

제3자에게 '안전하다'는 느낌을 준다. 스스로 잘 통제하고 있는 사람을 볼 때의 안정감, 자신이 서 있을 지점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는 사람에 대한 신뢰감이다.


이렇게 나는 오히려 남편의 장점이라고 생각하며 이 부분을 존경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이런 확신에 가까운 생각에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남편이 신학을 결심했던 때부터다. 아니, 정확히 신학을 결심했다는 것은 주변에 알리기 시작한 때부터다.

'김종필이 신학을?' '과연 김종필이 목회에 적합한가?' '김종필은 카리스마가 없는데...리더쉽이 약한데....' 하는 반응들을 보면서 부터이다. 반응들이 이렇게 나오는데 정작 김종필씨 자신은 별로 시원한 답을 하질 못한다. 결국 다시 김종필에게 돌아오는 반응은 '김종필은 지금 정말 신학이 절실해서가 아니라 썩 만족스럽지 못한 현실의 도피로서 신학을 선택한 것이 아닌가?'하는 의구심 같은 것들이었다.


신학을 하는 문제로 처음으로 우리 부부가 나름대로 신뢰하는 어떤 분을 만나러 같이 갔다. 돌아오는 길에 가슴이 터질듯 답답함으로 우리는 대화를 잘 풀어갈 수 없었다. 그 자리에서도 여전히 남편은 늘 하던 방식대로 미온적이고 수동적으로 자신의 진로에 대해서 얘기했다. 적극적인 지지를 받고 싶어서 찾아갔던 그 분은 '당신은 성공해본 경험이 있냐?' 하는 질문으로 내 자격지심 충만한 상상력을 건드렸다. 즉, '목회자는 어떤 일에든 성공을 해 본 경험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내가 볼 때, 너는 그다지 성공을 경험해보지 않은 것 같다. 그래도 니가 하겠다니 해야지 어떡하겠나? 하는 메세지로 들리는 것이다.


남편의 직장은 헤드가 되시는 분은 우리나라 청년사역에서 내로라 하는 권위자이시다. 신학을 하겠다는 남편에게 그 분께서 조심스레 물으셨단다. '당신의 은사는 무엇인가? '라고 물으셨단다. 그리고 후문으로 들었다. 그 분이 말씀하시길 '김종필 간사 보다 그 와이프가 목회를 하면 잘 하겠다고...'

역시 나의 자격지심과 상상력은 다시 한 번 의기투합 하였다. '내가 보기에 당신은 별 은사라고는 없다. 목회를 하려면 은사(다른 말로 '다재다능')가 있어야지...차라리 당신의 아내가 MBTI도 잘 하고, 글도 잘 쓰고 다재다능 한 것 같다. 목회는 그렇게 다재다능한 사람이 해야한다' 라고 튀들어서 들어버렸다.


이런 저런 일들로 나는 현기증이 나도록 가슴이 무너졌다. 그렇게도 자기 안에 숨어서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남편이 답답하기도 했지만 나 자신에게 화가 나서 돌아버릴 것 같았다. 어떤 유능한 여자들은 결혼을 끝으로 자신의 능력을 다 사장시켜 버리고 마는데 나는 결혼을 통해서 더 당당해지고, 사람들 앞에 더 드러나게 되었다. 그 유일한 이유는 남편 김종필의 관용과 협조과 인정과 격려였다. 유치부 지도교사를 하라면서 스스로 고등부 총무 교사를 포기하고, 찬양대 지휘를 하라면서 청년부 교사로 봉사하기로 작정한 것을 포기하고.....그 때마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한다' 하면서 칠렐레 팔렐레 하고 설쳐댔으니.....


한 동안 내 자신이 미워 견딜 수가 없었다. 남편이 내가 표현하는 방식으로 적극적으로 주장하지 않는다고 이 일, 저 일을 선수쳐 버린 내 어리석음에 대한 후회로 잠이 오지 않았다. 결국 그렇게 칠렐레 팔렐레 '나는 남편 잘 만나서 결혼하고도 내 일, 교회 봉사 포기하지 않고 이렇게 잘 나간다' 하며 살고 있는 한심한 내 자신. 그런 일들의 반복으로 결국 남편은 점점 더 자신을 드러낼 기회를 잃어 갔던 건 아닌지....어쩌면 지난 한 두 달 그렇게도 몸이 아팠던 이유는 몸이라도 아파서 그 죄책감을 면해 보려는 또 다른 몸부림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 부분에서 여전히 나는 내 자신을 온전히 용서할 수가 없다.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으로 손색이 없었던 청년 김종필. 그 청년 김종필을 알았던 많은 사람들은 김종필이 목사가 되어 있을 거라고, 아니면 언젠가는 목사를 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정신실과 결혼한 지 6년 차가 된 김종필을 향해서는 '신학을 하겠다'는 그 결심 하나에 애정의 발로든 무엇이든 간에 왜 이리 걸려오는 딴지가 많은지....것두 가장으로서의 책임 같은 현실적인 상황을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김종필씨 자신이 목회에 적절한 자질이나 은사가 구비가 안됐다는 식으로 말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김종필씨의 low self-esteem은 더 이상 미덕으로 다가오질 않았다. 좀 자신에 대한 피알좀 하고 살지. 누가 없는 것 가지고 피알을 하라하나? 자신이 남편으로, 아빠로 어떻게 인정받고 살아가는지, 얼마나 독서량이 많은지, 목장에서 얼마나 자주 성공적인 경험을 하는지, 아이디어가 얼마나 많은지..........좀 드러낼 때 드러내고 살지. '이 세상 그 무엇보다 귀하게 나의 손으로 창조하였'다고 찬양하면서 자신이 얼마가 귀하고 대단한 존재인지 일상에서 구체적으로 인식하며 당당해지지. 나 자신에 대한 '용서되지 않음'을 투사하여 필요 이상으로 남편을 원망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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