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준비를 하려고 냉장고를 열었는데.

과일박스 귤 사이로 계란 한 알이 끼어 있는 것이다.

내가 이제 하다하다 별 짓을 다 하는구나.

냉장고에 휴대폰 넣기.

보온병에 뜨거운 커피 담아서 또 냉장고에 넣기.

노화하는 나의 뇌야, 냉장고를 부탁해.

어제 저녁에 손님 식사준비 하다 계란 몇 알 들고다녔던 기억.

그래, 한 알은 과일박스에 고이 넣어두었구나.

나중에 치매가 오더라도 MRI 찍을 필요도 없다.

냉장고에 뭐가 들었는지 보면 될 거야.

삶은 빨래가 냉장고에 들어가 있을 수도 있고,

초를 켜서 넣어둘 수도 있겠다.

냉장고야, 나의 뇌를 부탁해.


깜깜하도록 한강에서 놀고 들어온 현승에게 고해성사할 요량으로

현승아, 이거 봐. 엄마가 미쳤나봐.

엄마, 이 계란 내가 여기 놓은 거야.

왜~~~~~~~~~~애애?

그냥, 여기  귤만 있고, 계란 박스에 계란만 있는 게 싫어서.

좀 다르게 해보고 싶어서.

(헐) 냉장고야, 안심해. 내 뇌는 아직 괜찮아.


엄마, 그런데. 엄마한테 제안을 하나 해도 돼?

뭐? 제안해.

음.... 국이나 찌개를 할 때 말이야. 조미료를 좀 쓰면 어때?

특히 콩나물국 끓일 때는 조미료를 좀 넣어도 괜찮지 않을까?

아니, 싫다는 얘기는 아니고. 건강에 좋긴 하지만 너무 물 같애서.

(확!) 냉장고야, 살림을 부탁해, 나 가출할 거야.


엄마, '운영'이란 말 알아?

회사를 운영하다, 할 때 쓰는 말이잖아.

그런데 예전 교회에 있을 때는 '운영'이란 말이 전혀 생각나지 않았거든.

여기 교회는 '운영'이란 말이 딱 맞는 것 같애.

뭔가 착착 돌아가는 '운영'이란 말이 적절한 것 같애.

원래 교회에는 운영이란 말이 안 어울리잖아.

그런데 여기 교회는 딱 맞아.

(ㅎㄷㄷ대형교회의 생리를 한 단어로! 천잰데!) 냉장고야, 이 아들 부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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