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종잇장 같은 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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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가진 힘과 위력, 무엇보다 '돈의 소유'로 인해 누릴 수 있는 수 많은 것들에 대해서 모르는 아이들. 아이들이 어디서 용돈을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만 원짜리 한 장이나 두 장 정도. 받을 때는 좋아하고, 둘 중에 한 녀석이 받고 한 녀석이 못 받으면 울고 불고 하기도 하지만 사실 아이들에게 돈은 종잇장입니다. 그래서 우리집에는 저렇게 굴러다니는 배춧잎이 많습니다. 식탁 위에 책꽂이 위에, 심지어 저렇게 블럭을 쏟아내면 그 안에도요...
'아직' 이란 말이 맞겠지요. 조만간 알게 되겠지요. 돈이 가진 힘과 위력을요.

이번 설에 처음으로 채윤이가 자기 돈을 챙기대요. 돈을 받아서 엄마에게 맡기면 그만이었는데 집에 와서는 다 수거해가더라고요. 물론 또 그 돈이 책상 위에서 마구 굴러다니긴 했지요. 책상 위에 지 돈이 12만원이나 굴러다니고 있는데 '엄마! 천 원 짜리 하나만 줘. 나도 학교 끝나고 문방구에서 불량식품 사 먹고 싶단말야. 나 천 원 짜리 한 개만 줘' 이래요. 막상 천 원 짜리 갖고 문방구 가서는 50원 짜리 하나 사먹고나면 950원이 식탁에서 굴러다니지요. 언젠가 이만 원을 누구에게 받았는데 할머니가 천 원을 또 주셨어요. 그 때 채윤이가 만 원 짜리 두 장, 천 원 짜리 한 장을 들고 외친 한 마디!  "앗싸~아, 천이만원 됐다~"ㅎㅎㅎ
세배돈 잘 갖고 있다가 온가족 뮤지컬을 보여주겠답니다. 그래서 오늘 엄마랑 현승이랑 채윤이가 세배돈으로 쏘는 멋진 음악극 보러 간답니다. 티켓값이 토탈  32000원인데....예매했다고 하니까 12만원을 얼른 갖다 엄마 지갑에 '자!' 이러면서 넣어줬어요. 앗싸~아! 나머지는 다 내 꺼다~~ㅎㅎㅎ


#2  돈으로 바꾼 나의 가치

작년에 아주 멋진 특수교사 한 분을 만났습니다. 보통 선생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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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어진 조건 하에서 본인의 에너지를 가장 쓰지 않는 방식으로 방과후 교실을 운영하지요. 그런데 이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더 많은 치료를 제공하고 싶어서 두 개의 치료를 할 예산으로 세 개의 치료를 시도했습니다. 어떻게 하다가 이 학교와 닿게 되었는데 다른 곳보다 상대적으로 페이가 적은 관계로 살짝 고민을 했지요. 선생님의 생각을 듣고, 무엇보다 거기 아이들이 문화적 혜택을 많이 못 받고 있다고 해서 흔쾌히 가게 되었고 1년 동안 행복하게 일을 했습니다.
1년 계약을 마쳤습니다. 보통은 학교들이 같은 치료를 2년 연속 하지 않기 때문에 재계약 하는 일이 많지 않습니다. 설령 재계약을 하자 하더라도 여기는 1순위로 짤라야지 하고 있었습니다. 거리는 멀고, 페이는 적고, 기름값도 장난 아니게 올랐으니까요. 페이는 단지 돈이 아니라 나의 가치라 생각하면, 내가 이 정도 경력과 실력으로 이런 대우를 받을 군번이 아니다. 하는 생각도 있었지요. 이 학교에서 선생님과 어머니들이 매우 아쉬워하였습니다. 계속 해달라고 하는 게 쉽지 않은 요구라는 것을 잘 안다하시면서요.
'나는 왜 일을 하는가? 나는 왜 음악치료를 하는가?' 하는 고민을 했습니다. 일에 대해서 생각했습니다. 정직하게 말하면 요즘은 '돈 때문에' 일하는 게 큰 것 같습니다. 그렇죠. 돈 때문에도 일하고, 자아실현을 위해서도 일한다고 배웠죠. 언제부턴가 일하는 게 너무 힘들어졌었는데 가만 생각해보니 '돈 때문에' 일한다는 의식이 분명해진 시점과 비슷했습니다. 사실 저는 음악치료 하고 있을 때 행복합니다. 아이들과 노래하고 있을 때 분명 행복합니다. 생각해보면 '돈 때문에 일하는 것' 과 '소명으로 행복함으로 일하는 것' 의 차이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있는 것 같습니다. 내 생각을 바꾸면 되는 것이지요. 물론 생각이 그렇게 하루 아침에 바뀌지 않는다는 게 문제지만요.
그 학교에 가기로 결정했습니다. 그 결정은 이제 '돈 때문에' 일하지 않기로  마음을 바꾸겠다는 의지의 표명입니다. 나의 시간과 나의 가치를 온전히 돈으로만 따지지 않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물론 이 선택은 어느 새 빗나가서 기울어져 버린 생각의 축을 돌리기 위한 시도에 불과합니다.


#3 불안함과 믿음

프리랜서로 일을 하면 일 년에 한 번 정도 씩 돈에 대한 '불안 병'을 앓아야 하지요. 것이 생겼어요. 몇 년 사이에 초등학교 특수학급에 방과후 교실 이라는정부 지원으로 특수학급 아이들이 그룹치료를 받게 되는 것이죠. 주로 이 일을 하다보니 1년의 계약이 끝나면 다시 일을 찾고 짜야 합니다. 이게 쉽운 일이 아니예요. 구인 사이트를 들락거리고 대개 고자세인 학교 선생님들과 통화해서 이력서를 보내고....가장 어려운 건 불안함이죠. 이러다 결국 아무 곳도 컨텍이 안 되면 어떡하나? 당장 다음 달부터는 수입이 없어져 버리는건데...애들 교육비는 어떡하지? 뭐 이런 불안함들이죠. 설마 설마 하다가 어떤 학기에는 바닥을 친 적도 있고 대부분의 경우에는 일할 수 있을 만큼 일을 하게 되었어요. 이것이 매 년 반복되면서 실은 불안지수가 상당히 낮아졌죠. 염려해서 구해진 일자리가 없었고, 오히려 의외의 상황에서 의뢰가 왔고 매 학기 주어진 일은 그 때 그 때 나와 우리 가정에 가장 적절했다고 감히 고백할 수 있답니다.
오히려 이 불안함은 잊었던 '일용할 양식'에 대한 기도를 새롭게 하게 만들고 '공중 나는 새를 보라. 들의 백합화를 보라' 하시는 주님의 음성이 가까이 들려서 좋은 기회가 되는 것 같기도 하답니다. 불안함이 오히려 은혜가 되는 순간이지요.



#4 소유의 욕망에서 탈주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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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왜 일을 하는가? 하는 질문을 다시금 해봅니다. <호모 루덴스, 놀이의 달인>을 읽으면서 내가 더 많이 일해야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는 이유 중 하나는 '더 많은 소유'에 있다는것을 알았습니다. 더 많은 소유(더 넉넉히 쓰고 싶은)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으면 일에 대한 필요 이상의 집착도 없어지고 그러다보면 일도 행복해지겠지요. 물론 이것 역시 말처럼 쉽고 단순한 일이 아닙니다. 특히 아이들이 자랄수록 그렇습니다. 음악을 잘 하는 채윤이를 보면 벌써 심란한 마음이 없지 않습니다. 언제든 우리의 식탁과 삶과 가진 것들을 기꺼이 나눌 수 있을 만큼은 마음이 넉넉해야 하는데 현실이 발목을 잡을 때 오는 갈등과 고뇌 또한 쉽지 않습니다.
날이 갈수록 삶이 더 단순해져야 한다는 것은 분명한 것 같습니다. 어쩔 수 없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하고, 소비하고, 아이들을 양육하며 산다 할지라도 이 안에서 어떻게 더 소유에 대한 욕망을 내려놓으며 살 것인가?  이 역시 매일 매일 풀면서 가야하는 숙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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