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어떤가 하며 다 된 빨래를 들고 옥상에 올라갔습니다.

햇살이 따사롭고 겨울 찬바람도 없습니다.

겨울이라지만 빨래 말리기 딱 좋은 날씨입니다.


가을의 끝자락에 시작한 토요일 촛불집회가 어느새 6주가 되었습니다.

10월, 11월, 12월. 날씨가 점점 추워질 텐데 저 거짓투성이 권력은 언제나 국민의 뜻에 굴복하려나.

저 어둠은 언제나 빛 앞에서 제 본색을 드러내고 쫓겨나려나.

토요일마다 날씨 걱정을 했습니다.

차디찬 아스팔트에 자리 깔고 앉은 사람들의 건강이 걱정이고,

날씨 탓에 촛불 수가 줄어들면 저 어둠과의 팽팽한 격전에서 한 발 밀릴까 걱정이고.


비가 온다 안 온다 하던 지난 토요일에 걱정이 제일 컸는데

다행히 비는 살짝 오다 말았고, 저녁에 나갔더니 아스팔트는 젖었지만, 깔개 깔고 앉을 만 했습니다.

누가 그럽디다. '하나님이 날씨로 도우셔'

'오늘도 날씨로 도우시네요. 감사합니다. 주님' 했습니다.

광장에 나가 촛불을 들기 딱 좋은 날씨입니다.


마음 가득 햇살 머금고 옥상에서 내려왔습니다.

설교준비로 골방에 들어간 남편에게 커피 한 잔 내려주고 제 자리에 앉습니다.

문득 나의 주님께 편지 한 장 올리고 싶습니다.


주님, 오늘 이 맑고 따사로운 날씨 정말 감사합니다. 감동이었어요.

빨리 널고 내려와야지, 하면서 외투도 걸치지 않고 올라갔거든요. 추울 각오를 하고요.

당신은 늘 그렇게 예상을 빗나가는 방식으로 감동을 주시죠.

다시 한번 오늘 날씨 감사 드려요. 포기하지 않고 오늘도 광장에 나가 촛불을 들겠습니다.

그렇다고 부담 갖지는 마세요. 주님.

신경 쓰실 날씨가 한두 군데가 아니실 텐데 다음 어느 토요일 날씨가 궂고 춥다하여 당신 사랑을 의심하지 않을게요.

실은 전에 많이 의심하고 분노하고 실망한 적이 많았지요. 죄송해요. 늘 버릇 없이 기도해서. 

아프고 힘든 사람들의 고통이 여전한 것을 바라보며, 악이 승승장구를 바라보며 견딜 수 없었어요.

도대체 하나님, 도대체 하나님 왜요? 뭐 하고 계세요? 어디 계세요? 몸부림했어요.


몇 주 광장에 나가서 생각하곤 해요. 이 많은 사람이 어디서 이렇게들 몰려들었을까?

문득 작년 어느 뜨거운 날 경복궁 근처에서 세월호 피케팅 했던 날이 생각났어요.

버스 안의 몇몇 할머니들이 경멸에 찬 눈으로 손가락질했지요.

그 눈빛과 손가락질이 내가 아니라 세월호 엄마 아빠들에게 향한다고 생각할 때 견딜 수 없었어요.

점점 한산해지는 광화문, 나조차도 잊어가는 세월호. 저들의 노골적이고 조직적인 은폐와 무시.

그럴수록 외롭게 피눈물 흘릴 세월호 가족들을 생각합니다.

아, 당신이 이 눈물을 보셨군요. 이 피맺힌 한을 보시고 정유라의 이대 입시로 시작하여

한 대의 태블릿피시가 세상 앞에 드러났습니다.

그것도 울음 삼키며 끝까지 세월호 보도를 포기하지 않았던 손석희 사장 앞에요.

젊을 때 고통의 극한마다 떠올리던 찬양이 맴돌았어요.


물가로 나오너라 내게 오라 너의 목마른 것 내가 채우리라

어둠에 헤맬 때 흘리던 네 눈물 그 눈물 위하여 내가 죽었노라


주님, 이제 저는 힘없는 이들의 눈물이 적신 땅에 당신의 손길이 머문다는 것을 가슴으로 믿게 되었습니다.

어제 낮에는 차를 길가에 세우고 기나긴 통화를 했습니다.

수화기 너머의 눈물이 전화기를 타고 제 귓불로 흘러드는 것 같았습니다. 

밤에는 오랜만에 공동체와 함께 하는 뜨거운 기도를 드렸어요.

그곳에도 눈물이 가득했습니다. 아니 그곳에 들어서자마자 제 이미 눈물로 가득찬 제 마음을 보셨지요?

당신 긍휼의 마음이 상실한 이들의 눈물에 얼마나 취약하신지 알아요. 이젠 정말 알아요.

우리에게 향하신 당신의 인자하심이 크고 크신데, 그 크기가 인간으로서는 가늠할 수 없는 크기라 하셨으니까요.

가끔 당신의 손길이 느껴지지 않아도 많이 흔들리지 않겠습니다.

흐리고 비 오는 추운 날이 오더라도 말이에요.

주님, 부디 제 마음에서 눈물 마르는 일 없도록 도와주세요.

언젠가 좋은 나라에서 당신을 뵙는 날, 이 눈물 모두 닦아주시겠지요.

햇볕에 바짝 마른 수건처럼 보송보송한 영혼으로 당신과 더불어 호흡하는 날이 있겠지요.


오늘도 광장에, 우리와 함께하실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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