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 전, 주일 아침이었다. 이른 아침에 구역모임을 위해 커피 도구와 기타를 챙겨 일찍 집을 나섰다. 같은 자리를 오래 지키다 보면 '감'이 생긴다. 오늘은 결석과 지각이 많을 예정이야, 라고 감이 말했다. 구역모임 장소가 제대로 지하실, 컴컴한 지하 1층이다. 모임 공간이 부족하여 교회 주변의 여러 공간을 주일마다 대여하는데, 우리들의 둥지는 가톨릭 관련 건물이다. 깜깜한 지하 1층의 벙커 같은, 성모님(상)이 계신 곳이다. 약간 으스스하고 습한​ 기운을 커피 향으로 맞서보려 한다. 동남풍아 불어라, 서북풍아 불어라, 가시밭의 백합화 예수 향기 날리네, 할렐루야 아~아멘. 노래를 불러서 계단 위쪽까지 커피 향을 날리고 싶은 마음이다. 요새 예수 향기는 커피 향기 아니던가? 커피를 내리고 사람들을 기다리는 시간, 참 좋았다. 성모님상 때문인지, 성화 때문인지 혼자 있는 것 같지 않았다. 공간의 을씨년스러움이 내 안의 충만함을 이기지 못했다고 하자. 구역원 단톡에 저 사진을 띄우며 '당신을 기다리는 시간'이라고 썼다. 오는 발걸음을 재촉하거나, 오지 않는 사람들의 죄책감을 자극하려는 뜻은 없었다. 진심을 담아 커피 한 잔 내려놓고 '당신을 기다리는' 누군가가 있다는 걸 전하고 싶었을 뿐이다. 내 마음으로 이미 충분한 시간이었다.


지난 주일, 남편은 교회에 사임 인사를 했다. 벌써 5년이다. 먹고 살 일이 아니라, 믿고 살 일이 캄캄했던 5년 전의 나날이 떠오른다. 먹고 살 걱정보다 믿고 살 걱정에 영혼이 바싹 말라서 슬쩍 밟아도 부서져버릴 것 같은 시간이었다. 목회 하지 마라, 당신도 죽고 나도 죽는다. 이런 말을 했었다. 아무 대책없이 하남시에 집만 떡허니 구해놓은 상태로 20여 년 다닌 교회를 떠나기로 했다. 농담처럼 '*** 목사님 교회에 부교역자로 간다면 나는 동의함!' 했던 얘기가 씨가 되었는지 *** 목사님의 교회에 극적으로 오게 되었다. 부임하여 들은 충격적인 몇 마디는 아직도 내 마음에 살아있다. '우리 교회에서는 결혼식, 장례식을 집도하고 목사님이 따로 감사 사례를 받지 않습니다. 받을 경우 바로 사임입니다'라고 신임 교역자 오리엔테이션에서 들었다는 얘기. 또 하나는 목회자 부부 송년회에서 담임 목사님의 말씀. '부인들 수요예배 나오려고 애쓰지 마세요. 아이들 저녁 챙겨주고 가정을 잘 돌보는 것이 당신들의 역할입니다.' 설교 중 고난주간 특새에 대해 하신 말씀. '교회로부터 20분 이상 걸리는 곳에서 특새 나오려 하지 마십시오. 새벽에 먼 길 운전하며 새벽기도 나오는 것이 믿음을 보여주는 척도가 아닙니다. 있는 곳에서 기도하면 됩니다.'  그 전 한두 해, 죽네 사네 하면서 바싹바싹 말라갔던 내 마음의 숙제를 다 해결해주는 말씀이었다.  


그리고 한 해 두 해가 흘러 다섯 해가 되었다. 그사이 내 주님과 나 사이 오간 수많은 밀어를 공개할 수는 없다. 그분이 얼마나 디테일하게 나를 위로하셨고, 선하고 아름다우며 아픈 길로 이끄셨는지 차마 말할 수 없다. 그 디테일함은 여러분들의 귀에는 유치함일 테니 말이다. 위로도 감동도 배움도, 반면 배움도 '많이 무웃따 아이가' 하는 순간이 왔다. 그 시점, 잠시의 혈기를 이기지 못하고 자원하고 나서서 구역장을 맡게 되었다. 땅을 치며 후회했지만 돌이킬 수 없는 잔이어서 아버지의 뜻인지는 모르겠으나 마실 수밖에 없었다. 그 잔을 마시던 올해는 지난 5년, 아니 남편이 사역자가 되면서 패키지로 묶여 살아야했던 지난 10년을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나는 상처 받았고 고난 당했다며 괜스레 당당했었다. 그 '근당감(근거 없는 당당한 자신감?)'이 어느 새 근월감(근거 없는 우월감)이 되었다는 것을 직면해야 했다. 아팠고, 부끄러웠지만 1년의 시간을 지내며 알 수 없는 훈기가 마음을 채우고 있다. 상대에게 알아달라고 우기는 진정성이란 이미 진정성이 아님을, 진정한 진정성은 이미 상대에게 가 닿아있는 것임을 배웠다.





소중한 것을 배우는 교실은 주방이었다. 자발적인 시작이 아니었으나 이미 주어진 일, 타발이고 자발이고 할 수 없다. 일단 열심히 하자는 마음으로 한 주 한 주 미션 클리어 하면서 새로운 기쁨을 발견하게 되었다. 분열되었던 마음, 지친 사람들의 마음에 생기가 도는 것이 느껴졌다. 적어도 내 마음은 그랬다. 먹는 일이기 때문이다. 먹을 것을 만드는 일이기에 말이다. 현학적 사변 같은 것들이 아니라 눈물 흘리며 양파를 썰고, 팔이 떨어져 나가도록 고기를 볶고, 내 몸집보다 큰 국솥을 씻으면서 서로의 몸이 연결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들어진 저 풍성하고 아름다운 음식들! 맛있게 먹고 진심으로 서로 감사하고. 사진을 찍고 동영상을 찍고 단톡에 올려 낄낄거리고, 많은 짐 진 자에게 특별히 감사하고, 간을 본다는 명목으로 음식을 마구 줏어 먹고, 농담하고 놀리고 낄낄거리고. 이런 시간들.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을 꿈꾼다 한들, 운명 같은 남자를 사랑해서 결혼한다 한들, 어떤 경우에도 나와 같은 너를 가질 수는 없다. 내 맘 같은 당신은 없다. 나는 당신이 될 수 없고, 당신도 내가 될 수 없어서 서로에게 고통이다. 바로 그것이 인간 실존인 것 같으나, 그러나 그것은 끝이 아니다. 얼굴을 마주하고 한 도마 위에서 같은 칼질로 만날 때, 우리 사이 많은 차이가 지워지고 잠시 하나가 된다. 놀라운 발견이고 경험이었다. 주방에서 배웠다. 구역 주방봉사에서 나이가 나보다 많고 적은 사모님들에게 배웠다.  





오늘 마지막 주방봉사를 했다. 지난 주일 남편이 이미 사임인사를 했기 때문에 봉사하러 나가는 게 조금 민망스럽기도했다. 하지만 어쩐지 나가고 싶었다. 5년의 마무리를 주방에서 하고 싶었다. 남모르는 먹먹함으로 양파를 까기 시작했다. 정말 맛있는 오징어볶음과 감자조림 간을 보다 기분이 좋아졌고 맛있게 만들어내고 맛있게 먹고 으쌰으쌰 설거지를 하고 잘 마쳤다. 다시 마음이 먹먹해졌지만.....

5년 전 가을. 스물 여섯 때부터 다녔던, 남편을 만났고 두 아이를 낳았던, 평신도에서 목회자가 되었던, 고향이라는 말도 가벼운 교회를 사임하고 무턱대고 하남 서해 아파트 계약을 했던 날이 있었다. 그날 집을 보러 다니는 동안 뺨을 스쳤던 가을 바람이 기억날 듯 하다. 그때로서는 상상도 못했던 시간, 나를 기다리던 5년은 이러하였다. 당신을 기다리는 시간, 나를 기다리는 시간은 늘 상상을 넘어선다. 상상보다 아름답고, 상상치 못한 아픔이 있기에 나를 기다리는 시간은 늘 나보다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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