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P 돈을 보면 갈팡 질팡

난 ‘돈’이 좋다. 아니 돈을 경계한다. 아니 돈이 두렵다. 아니 돈 좋아하는 거 맞다. 아니 돈은 현대판 우상이다. 아니 돈돈돈, 돈에 지배받고 싶지 않다. 그거 없다고 우울해 하지도 않고 그거 많다고 우쭐해 하고 싶지도 않다. 플러스니 마이너스니 통장의 잔고액수에 따라 울거나 웃고 싶지 않고, 가난할 때도 부할 때도 자족할 줄 아는 그런 신념과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렇지만 가급적 가난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기적으로 노동에 따른 최소의 생계비가 내 통장에 들어오는 것으로 만족했으면 좋겠다. 가능하면 명절 때 돈 때문에 걱정할 정도로 지갑이 가벼워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이들 사교육비 문제로 아내를 일터로 떠미는 상황이 발생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돈 아낀다고 책도 못 사보는 그런 불행한 일이 안 생겼으면 좋겠다. 그리고 또 ...
아니다. 최소한의 품위 있는 삶도 돈 없으면 안 되는 건데, 나는 돈에 지배받고 있음에 틀림없다. 난 돈이 필요하다. 돈이 있어서 좋은 삶이 있는 줄 알기에 돈을 손에 쥐면 기분이 좋아진다. 그러나 좋아서 좋은 게 아니라 돈이 필요해서 좋은 거다. 돈 부족한 생활, 솔직히 그런 날이 내 가정에 들이닥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돈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다 보니 참 한심하다. 아직 돈에 대한 내 태도가 정리가 안 된 모양이다. 신혼부부들이 ‘내 집 마련’에 올인하는 꼴을 경멸에 찬 눈으로 보면서도 정작 우후죽순 들어서는 아파트 촌락을 보면서는 ‘이렇게 아파트가 많은데 나한테 줄 아파트 한 채 없나?’ 하면서 내심 부러워하기도 하니, 내 꼴이야 말로 꼴불견이다. 비전을 내세우며 하나님 나라의 일꾼 되겠다고 다짐다짐 했건만, 가계에 혼자 다 책임지지 못하는 내 처지로 인해 우울해 하는 내 꼴이야 말로 정말 꼴불견이다. 평소 돈을 경계하는 듯 하면서도 정작 위기의 순간엔 하나님보다 돈을 더 신뢰하는 내 믿음이야 말로 웃기는 짬뽕이다.

마치 ‘성’을 대하듯 ‘돈’을 위선적으로 대해 온 이유는 뭘까? ‘돈은 일만 악의 뿌리’라는 성경말씀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 때문일까? 나는 아직도 이 말이 충분히 타당하고 백 번 천 번 강조해도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일까? 나는 돈을 쓸 때 늘 죄의식을 느낀다. 내가 번 돈으로 내가 밥 사먹는데도 마음 한 편이 켕긴다. 노동의 대가를 받아도 ‘돈’을 쥐는 내 마음은 위태위태하다. 조금 비싼 옷을 사 입거나, 조금 비싼 음식점에 들어가는 날에는 몇 날 며칠이고 마음이 불편하다. 악에 편승한 기분이다.

이런 내가 결혼을 했다. 당연히 검소한 결혼문화에 일조하기 위해 매사 ‘검소! 검소!’ 하며 티를 냈다. 혼수품을 준비하며 아내가 제시한 기준들은 모두 하향 조정되었다. 시계 생략, 다이아 생략, 장롱 한자 줄임, 텔레비전 생략, 생략... 줄임... 생략... 줄임... 신혼여행 역시 검소하게. 해외로 나가는 건 사치요, 1급 호텔은 향략이요, 4박5일은 범죄! 그러다가 결국 사고를 내고 말았다. 누나를 통해 예약된 숙소가 가보니 완전 3류 여관이었던 것. 부랴부랴 숙소를 옮기고 수습을 했지만 첫날밤을 눈물로 지새운 아내를 위로하고 설득할 논리가 내겐들 있었겠는가! 이렇게 시작된 우리의 신혼생활은 나의 ‘인색한, 빈핍한, 쩨쩨한’(물론 내 편에서는 ‘검소한, 절제하는, 규모 있는’ 이란 말이 맞지만) 재정철학과 아내의 ‘절제 없는, 충동적인, 개념 없는’(물론 아내 편에서는 ‘마음에 여유가 있는, 누릴 줄 아는, 윤택한, 멋을 아는’ 이란 말이 맞지만.) 돈 관념, 돈 사용, 돈 관리로 인해 갈등의 연속이었으리라는 것은 안 봐도 비디오다.

SS 돈과 시간을 바꾸다

난 요즘 가계부를 정말 잘 써봐야겠다는 생각에 충천해있다. 결혼 5년 만이다. 그간 써 보려고 노력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신혼 초 한동안 남편은 매일 컴퓨터 앞에 앉아서 가계부를 만드는 것이 일이었다. 지출의 항목을 이렇게 묶었다 저렇게 묶었다, 이름을 이렇게 붙였다 저렇게 붙였다 하면서 새로운 형식의 가계부를 만들고 며칠 안 가 그걸 다시 수정 보완하여 또 다른 형식의 가계부를 만들어 내면서 말이다. 그런 자신의 노력에 부응하여 열심히 꼼꼼히 가계부를 쓰지 않는 나를 ‘헐랭이 주부’라며 원망하고 타박하면서.
나로서는 가계부를 쓸 이유가 별로 없다고 느껴졌다. ‘어차피 최소한의 수입을 가지고 사는데 가계부를 쓴다고 뭔 뾰족한 수가 나나? 낭비할래야 낭비할 돈도 없는데 뭐 힘들게 가계부를 쓴단 말야? 수입 안에서 펑크만 안 내고 써도 검소한 살림의 표본이 될텐데 뭐! 가계부 쓸 시간이 있으면 카드 사용법, 은행업무나 좀 배우시지. 은행가서 엉뚱한 일이나 저지르지 말고 말야.’
도대체 신용카드 얘기만 나오면 무슨 불경한 물건이라도 되는 것처럼 거부 반응을 보이는 남편이었다. 나로서는 열 번을 읽어도 뜻을 모르겠는 철학책을 재밌다고 읽어대는 머리로 그 단순한 은행업무, 신용카드 이쪽으로만 가면 완전히 일자무식이 따로 없다. 은행 가기 전 그렇게 여러 번의 설명과 연습문제를 내서 풀었음에도 불구하고 실전에 가서는 통장에 버젓이 잔액을 두고도 현금서비스 받아오는 위인이라니!
결혼 5년 만에 나는 남편에게 카드 사용의 필요성과 사용법을 가르치고 설득하는데 성공했고, 남편은 내게 가계부 쓰기에 대해 스스로 의미를 부여하며 자발적으로 쓰도록 하는데 성공한 것 같다.

내가 요즘에 가계부를 충실히 써야겠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우리 가족에게 필요한 최소 생활비를 알아야겠기 때문이다. 최근 남편은 공부를 마치고 새로운 직장에서 일을 하게 되었고,이에 맞춰 나는 풀타임으로 일하던 직장을 그만두고 파트타이머로 일하게 되었다. 남편이 하게 된 일이 출판, 그것도 기독교 출판이기 때문에 남편의 수입으로는 우리 가족의 생활비를 충당할 수 없다. 그 부족분을 내 수입으로 채워야 한다. 물론 나 역시 계속 풀타임으로 일을 한다면 경제적으로 보다 여유가 있어지겠지만 약간의 고민 끝에 우리는 ‘돈’과 ‘시간’-아이들과 가족과 함께하고 이웃을 돌 볼 수 있는 시간-을 바꾸기로 합의하였다. 내가 파트타임으로 일을 하되 우리 가족의 최소 생활비의 부족분을 벌 만큼만 일하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돈과 바꾼 시간으로 아이들과 좀더 질적인 시간을 갖고 사람들(특히 가정교회의 지체들)을 만나거나 도울 수 있는 여유를 가지는 것이다. 이렇게 된 요즘 나는 남편의 닦달이 없어도 자발적으로 몇 백 원, 몇 십 원 쓴 것까지 꼼꼼히 적는다(앞으로도 계속 이럴 수 있을까? 나 스스로 의심하면서..^^).

JP 절제와 누림의 아슬아슬한 경계선 에서

아내와 논의 끝에 재정에 관한 몇 가지 원칙을 세운 적이 있다. ‘3만원 이상 구매 시 반드시 상호 동의 하에 구입한다.’, ‘카드는 가급적 만들지 않는다.’, ‘선교, 구제비를 쉬지 않도록 한다.’, ‘부모님 살아계시는 동안엔 내 집 마련하지 않는다.’ ‘십일조를 내기 전엔 꼭 함께 기도하고 낸다.’ 등등. 사실 이런 원칙들은 내겐 별로 필요가 없는 것들이다. 이런 걸 굳이 원칙이라고 정하지 않아도 무리 없이 잘 되는 것들이니까. 문제는 내 입장에서 보기에 충동적이거나 불필요하다고 느껴지는 아내의 씀씀이를 어떻게 막을 것인가 하는 건데, 어렵사리 이런 원칙들을 도출해 낸 것으로 얼마나 자랑스러웠는지 모르겠다. 게다가 가계부도 창작해서 새로 만들었으니 모든 수입 지출은 내 손 안에 들어와 있는 셈이다.

그러나 아내의 씀씀이를 남편 자신의 기대치로 끌어내리겠다는 허황된 꿈을 성취한 남편들 있으면 곧장 연락해 주길 바란다.(왜 그리 여자들은 필요한 옷, 필요한 그릇들이 많은 것일까? 언제 어디서든 하는 ‘나 이거 필요했었는데,.. 사려구 했었는데’ 이러면서 충동구매를 해대니 말이다) 나의 원칙은 처음엔 성공하는 듯 했다. 백화점이나 할인점에서 간혹 아내가 전화를 걸어 ‘35,000원인데 사도 돼?’ 하고 전화를 걸어오는 것 아닌가! 그러면 애써 우쭐해지는 속마음을 감추면서 아무렇지 않은 듯 ‘그러지’ 하고 대답한다. ‘성공이다! 이 여자의 소비를 내가 통제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런 성공 느낌도 잠시. 어느 날부터 아내가 사 오는 29,900원 짜리 옷과 생활용품들. 대체 이걸 가지구 안티를 걸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뿐이 아니다. 경품만 받고 쓰지 않을 거라고 맹세한 아내는 신용카드 수집을 취미로 하는 것인가? 나는 이제 결혼 5년 만에 조심스럽게 신용카드 하나 만들었는데, 아내는 이미 서랍에 하나, 오디오 위에 하나, 지갑에 두 개, 사물함에 두 개... 집안에 굴러다니는 카드가 몇 개인지 모르겠다(물론 거의 다 아내 공약대로 경품만 받고 쓰지 않긴 하지만). 언젠가는 빨래를 널던 아내가 ‘어머 선글라스가 주머니에 있던 것 모르고 그냥 돌렸네. 이제 진짜 못 쓰겠다’ 하면서 호들갑을 떨었다. 그 선글라스는 여러 번 다리가 부러지거나 밟아서 수리를 받았던 것이고 그 때마다 새로 사고 싶은 눈치가 역력했던지라 ‘혹시 새로 사고 싶어서 일부러 세탁기에 돌린 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다. 새로 선글라스를 사면서 짓던 아내의 미소가 아무리 생각해도 찜찜하다.

그렇게 그렇게 원칙이 훼손되는 듯 보이나 실상은 그렇지 않음을 서둘러 밝혀 두어야 하겠다. 부부가 닮아간다고들 하지 않는가! 서서히 아내의 씀씀이와 나의 씀씀이 방식이 뒤섞여가는 사이, 딱딱한 원칙은 부드러운 충고로 작용하기 시작했고 서로서로가 누리는 돈에 대한 유익은 공유되기 시작한 것이다. 사랑하는 데 안 닮을 수가 없는 것 아닌가!. 결국, 아내는 충동구매를 억누르고 뒤돌아선 후의 기쁨을 누리기 시작했고, 나는 나와 가족을 위해, 관계의 풍성함과 부부간의 우정을 위해, 아내의 자존감을 높여주기 위해 돈을 안 쓰는 것보다 ‘쓰는 재미’를 알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SS 돈 걱정 없는 가정

결혼하고 얼마 되지 않아서 만 원짜리 청바지 하나를 사가지고 집에 들어가서 남편에게 얻어먹은 구박이라니! 그 때 산 청바지를 평생 간직하면서 그 날의 모욕을 두고두고 되새실까 생각 중이다. 계획에 없는 것을 싸고 예쁘다는 이유로 사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남편,‘정직, 검소, 절제’에 목숨을 걸고 사는 남편 덕에 눈치 아닌 눈치를 보면서 시집살이 아닌 시집살이를 했다. 남편 앞에서는 섭섭한 척, 서러운 척 했지만 그러는 남편이 싫지 않았다. ‘정직, 검소, 절제’가 어디 기윤실만의 구호이고 남편만의 구호이겠는가? 나 역시 날이 갈수록 더 잘 절제하고 더 검소해져야 하는데 남편의 간섭은 내게 좋은 약이 되어준다.

한창 남편이 가계부 만들기에 열을 올릴 때 우리의 지출에 대해 정리한 것이 하나 있다. 지출의 항목을 크게 서 너 가지로 묶는 과정에서 ‘하늘에 쌓는 돈’ 이라는 항목이 있었다. 여기에는 흔히 교회에 내는 헌금 외에 선교비, 구제비 등을 포함시켰고 부모님을 비롯한 사람들에게 나누는 것도 포함시켰다. 부모님께 드리는 용돈과 선물비, 여러 경조사비, 사람들을 초대하거나 밖에서 식사하면서 쓰는 돈, 책을 사 주거나 생일을 비롯한 선물을 위해서 쓴 돈 등을 모두 포함시켰다. 이것을 통해서 적어도 내게는 돈을 쓰는 것에 있어서 큰 생각의 전환이 있었다. ‘하늘에 쌓는 돈’ 이라고 생각하니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쓰는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고 오히려 쓸수록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다.
우리 아이들의 옷은 얻어 입히고 시장에서 사 입히며 시중에 나오는 가장 싼 분유로 먹일지언정 다른 아기에게 선물을 할 때는 백화점에 가서 살 수 있는 그야말로 마음의 여유. 내가 쓰는 화장품이나 내가 입는 옷은 언제든 가장 싼 걸로만 고르지만 다른 사람에게 선물할 때는 ‘저건 너무 비싸서 우리가 쓸 수 있는 것이 아니야’ 라고 생각했던 것을 기꺼이 살 때 말이다. 자주 있는 일은 아니지만 그 때의 기쁨은 뭐랄까? 이 세상에서의 기쁨이 아닌 것 같다. 봄,가을에 결혼식 부조금이 많이 나가서 힘겨울 때도 ‘기쁨으로 하고, 하나하나의 부조금을 축복함으로 하자. 하늘에 쌓는 것이다’ 생각하면 쪼들리는 생활비도 기꺼이 감수하고 많은 염려를 내려놓게 된다. 그 때, ‘나는 부자다’라고 느낀다. 아이 유치원 교육비를 몰아서 내는 달이 오거나 집안에 큰 일이 있어서 목돈이 필요할 때, 내년에 분가를 할 때 전세금을 어찌 마련하나? 하는 생각을 하다보면 여전히 마음이 무겁지만 염려가 되지는 않는다. 아무리 생각해도 언제든 기꺼이 나눠줄 마음이 있는 우리는 부자이기 때문이다.

JP&SS의 가계 재정 원칙
1. 십일조를 드릴 때마다 돈을 주시고 받으시는 분이 하나님임을 확인하고 기도한다.
2. 삼만원 이상 지출 시에는 서로에게 사전 보고한다.
3. 집 장만에 목숨 걸지 않는다.
4. 대접하고, 돕고, 위로하고, 축하하는 모든 돈은 ‘하늘에 쌓는 재물’이다.
5. 다른 사람을 대접하거나 선물을 할 때는 우리가 먹고 쓰는 것보다 더 좋은 것으로 한다.
6. 구매 광고에 귀가 번쩍 뜨일 때는 의식적으로 ‘칫! 뻥치고 있네’ 하고 무시한다.
7. 부부의 우정과 성장을 위한 비용을 따로 비축한다. (돼지저금통 동전 모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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