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zine> 2009년 5월호 _ 유브갓메일17

아니, 은혜야!
갑작스레 이게 무슨 일이냐? 지난 번 메일에선 네 친구 얘기뿐이었잖아. 갑자기 너와 J가 헤어졌다니. 그저 너의 진로에 대해서 J와 함께 고민하고 더불어 결혼계획까지 의논하고 있는 줄 알았었다.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니. 그저 가까이 있다면 이렇게 아픈 은혜를 꼭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다. 멀리 있지만 마음으로 은혜의 시리고 아픈 마음을 어루만지고, 외로운 등을 따스하게 안아주는 기도를 올려드린다.
J가 결국 어학연수와 결혼을 놓고 갈등하는 은혜를 포기하겠다고 선언했다고? 전혀 생각지도 못한 일방적인 이별의 통고가 얼마나 당혹스러울까. 2년의 어학연수든, 직장이든 다 포기하고 함께할 수 있다고 J에게 매달려 보고 싶은 마음 이해가 된다. 그러면서도 어떤 일이든 쉽게 결정하지 않는 J의 마음을 되돌리기 어렵다는 것을 알기에 좌절감이 생기고 오히려 화가 나는 것도 알겠어. 처음부터 사랑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고, 그간 J가 했던 모든 말은 다 위선에 불과했다고, 그래서 차오르는 배신감에 견딜 수 없다는 말이 참 많이 아프게 다가오는구나. 스쳐가는 봄 햇살조차도 쓰리고 아프다니…. 네 메일을 읽고 나서 쬐는 봄 햇살은 선생님에게도 더 이상 따스함이 아니구나.
 
J의 생각
실은 은혜의 메일을 받고 바로 J와 전화통화를 했다. 내가 은혜하고는 미주알고주알 많이 나누지만 너희들을 소개하고 나서 J와는 처음으로 얘기를 나눠봤어. 은혜가 진로로 고민하기 시작하면서 J가 생각보다 많이 힘들었던 것 같아. 특히 지금처럼 어려운 때 은혜에게 온 어학연수의 행운을 그냥 흘려보내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았어. 혹시 자신 때문에 은혜가 인생의 좋은 기회를 놓치는 것이 아닐까, 나중에 후회하지는 않을까 싶었대. 선생님으로서는 예전에 은혜가 2년의 어학연수와 J와의 결혼을 꼭 양자택일의 문제로 놓고 고민하는 것이 의아했었는데 J와 통화를 하고 보니 이해가 되더구나. J는 나이도 있고, 건강하지 않으신 어머님도 계시기에 결혼을 빨리 할 수 있느냐가 현실적인 문제더구나. 그러면서 만날 때마다 답이 안 나오는 그 문제를 얘기하기도 그렇고, 그렇다고 그대로 두고 무작정 데이트 하는 것도 무책임한 것 같아서 좌불안석으로 계속 몇 개월을 보냈나봐.
은혜가 고민 끝에 어학연수를 포기하겠다는 결정을 할 것 같은 기미가 보이면서 J는 이별을 결심한 것 같아. 그래, 선생님 역시 잘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었어. 이 부분에 대해서 너희들이 허심탄회하게 대화한 줄 안다만. 자신과의 만남으로 은혜에게 더 좋은 일들이 생기길 바라는데, 오히려 자기 때문에 그 반대의 상황이 되는 것이 견딜 수 없이 힘들다고 하더구나. 물론 J에게 2년이 긴 시간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꼭 그 안에 누구하고라도 결혼을 해야겠기에 헤어지기로 결심한 건 아니라고 했어. 솔직히 헤어짐의 이유가 단지 그것뿐인지, 실은 마음이 변한 건 아닌지 선생님이 직접 물어봤다. 그건 분명히 아니라고 했고, 네게 말한 것처럼 '지금은 때가 아닌 것 같다'는 말을 반복해서 하더라. 그 '때'인 것도, 그 '때'가 아닌 것도 두 사람이 공감하는 '때'여야 하는 것 아니겠냐고 좀 강하게 말했지만 J의 생각은 확고한 것 같았어.
 
과도한 추측은 금물
선생님이 이 얘기를 하는 건 은혜가 느끼는 '일방적으로 거절당한 느낌'에 대해서 얘기하고 싶어서야. 아무튼 J가 먼저 헤어지자는 말을 꺼낸 것에 대해 은혜가 일차적으로 '거절당함'이라고 생각하는 건 당연해. 은혜 말마따나 교회 선배에게 고백했다가 거절을 당했던 경험으로 힘들어했던 일이 채 1년밖에 되지 않은 일이구나. '거절당한 느낌'이 몇 배로 더 증폭되어 힘들고 어려울 수 있을 것 같아. 그런데 은혜야! 너 1년 전에 K군에게 거절당했을 때도 '제게는 도통 여자로서 오래가는 매력이 없나 봐요. 제가 좋아하는 사람은 확실히 절 좋아하지 않아요.'라고 말했던 것 아니? 거절감이 말할 수 없이 견디기 힘든 감정인 것은 분명하다만, 또 네 말대로 이렇게 얘기하든 저렇게 얘기하든 J가 먼저 헤어지자고 한 것 역시 분명하다만, 지나친 감정몰입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그래. 지금 은혜에게 이성적으로 생각하라고 요구하는 자체가 가혹한 일이겠다만 선생님이 보기에 최소한 J가 은혜 존재 자체를 거절한 것은 아니야. 은혜가 말하는 '가까이 사귀어 보니 별로였다'는 얘기도 틀렸고. 그래. 이번 일을 보면서 생각보다 J가 소심하고 용기가 없다는 생각은 든다. 처음부터 조금씩 내비쳤던 것처럼 자신의 가정환경과 은혜의 환경이 차이가 난다는 것에 대한 부담감, 급기야 이번 어학연수 건으로 불거진 은혜의 진로에 자신이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는 자괴감을 넘어서지 못한 것이 말이다. 좀 더 용기 있게 은혜를 붙잡아줬으면 하는 바람이 내게도 있지만, 그렇게 권유도 해봤지만 지금의 J에게는 어려운 일인 것 같아. 최소한 J가 은혜에게 말한 헤어짐의 이유는 진실이라고 믿어.
설령 그렇지 않다 해도 J 스스로 말한 그 이상을 추측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 슬프고 힘든 마음은 백 번 공감이 간다만 '나는 거절당할 수밖에 없는 여자다'라는 식의 부정적 각본을 스스로 만들고 확인하는 건 옳지 않다. 그런 가정은 가당치도 않아. 선생님은 기억한다. 고자세, 저자세도 아닌 정자세로 일 년 전 거절의 아픔을 잘 이겨냈던 은혜를 말이야. 때로 우리가 거절당할 수도 있고, 부득이하게 거절할 수도 있지만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라'(롬 12:3)는 성경 말씀을 새겼으면 좋겠어.
 
잠잠히 기다리기
그래. 은혜가 말한 것처럼 J를 받아들이고 선택하기까지 세상적인 조건들에 마음 뺏기지 않고 J의 중심을 봤다는 걸 알아. J가 자기 소명에 부합한 일을 행복하게 하고 있지만 세속의 관점으로는 높은 점수를 받을 남자가 아니지. 그럼에도 은혜는 J가 중심에 하나님 사랑하는 것, 믿는 그대로 삶을 일치시키려는 것을 귀하게 여겨 선택했지. 그런 은혜에게 왜 이런 시련을 주시는지, 두 사람이 기도하며 아름다운 만남 가꿔가려고 했는데 왜 이런 결과를 주시는지 정말 알 수가 없구나. 하나님을 향한 원망의 마음, 선생님도 실은 같은 마음이다. 둘 다 참 예쁜 마음으로 만나왔는데,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모습이 귀하게 느껴졌는데 왜 이런 아픔을 허락하실까?
이렇게 우리는 다시 '이해할 수 없는 일'에 맞닥뜨렸다. 이럴 땐 솔직하게 '이해할 수 없어요. 하나님!' 하면서 기다려야 하는 게 아닌가 싶어. 선생님의 경험으로 봐서 당장은 그분의 음성을 들을 수 없지만 반드시 들려주실 거야. 다시 전화해서 만나고 싶고 매달리고 싶지만 소용없는 일임을 알겠다니, 이제 잠잠히 상황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 아닐까 싶다. 두 사람을 소개한 입장에서 이럴 때 뭔가 힘이 되고 싶지만 선생님 역시 할 수 있는 게 없구나.
작년 이맘 때 그랬던 것처럼 쉽게 상대방을 비난하는 것으로, 또는 은혜 자신을 비하하는 것으로 문제의 핵심을 피하지 않는 것이 은혜다운 지혜로움이라 생각한다. 아프지만 역시 주님께로부터 온 일이라 여기면서 그대로 아플 만큼 아파해야 하는 게 분명해.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는 없지만 분명한 건 궁극적으로 두 사람 모두에게 더 큰 선물로 다가올 고통이라는 것은 선생님이 확언할 수 있다.
하나님의 뜻을 운운하면서 서둘러 고통의 늪에서 빠져나와야 한다는 건 아니야. 있는 그대로 슬픔을 직면하지만, 치올라오는 많은 감정이 지나치게 부풀려진 자기연민이나 비하는 아닌지 분별할 수 있으면 좋겠다. J에 대해서는 배신감, 분노, 그리움 같은 복잡한 감정들이 교차하겠지만, 지금은 J가 네게 말한 헤어짐의 이유에 대해서 그대로 믿어주고 그 이상의 추측은 하지 말기를 바란다. 그건 J를 위해서가 아니라 은혜 자신을 위해서야.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젠가 은혜에게 최고의 배우자와 가장 아름다운 가정을 선물로 주실 그 분의 사랑을 믿어 의심치 않아야 한다. 선생님이 작년에 은혜가 힘들어 할 때 전해줬던 <물 가로 나오라>는 찬양의 영어가사 생각나니? 'Come to the water. Stand by my side. I knew you are thirsty. You won't be denied. I felt every tear drop when in darkness you cried'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결코 우리를 거절하지 않으시는 분, 우리가 어둠 속에서 헤매며 흘린 모.든. 눈물을 느.끼.시.는. 분. 우리 은혜가 그저 이런 하나님 앞에서 울며 이 어려운 순간을 통과하기를 바란다. 물론 선생님 역시 은혜의 아픔을 가지고 그분 앞에 나가 함께 울 거야. 사랑한다. 은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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