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이 되어 연애하기(..) 30


자동차에 네비게이션을 장착한 이후 자가운전 강사로서 기동력의 질이 달라졌습니다. 깊은 산속에 숨어 있는 수련회 장소에도 두려움 없이, 헤매지 않고 찾아갑니다. 소위 길치라 불리는 제가 메모 쪽지 들고 강의 장소를 찾아가던 시절, 다시 떠올리기도 싫은 에피소드의 향연이었습니다. 어디든 주소만 찍으면 찾아갈 수 있는 이 기술의 진보가 믿어지지 않을 만큼 고맙다니까요. ‘주소 좀 보내줘!’ 길 떠나기 앞서 우리의 관심은 온통 목적지 정보에 있습니다. 하지만 충성스런 네비게이션이 알아서 설정해 놓은 현 위치가 있기에 길 찾기가 가능한 것입니다. 현 위치 설정이 먼저입니다. 구글지도를 열면 내가 있는 곳에 빨간 압정이 따악 꽂히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인생여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행복한 연애와 결혼이 목적지라면 현재라는 정확한 위치에 빨간 압정 꽂는 일이 중요합니다. 헌데 인생 네비게이션에선 목적지 설정은 물론 현위치 입력도 내가 해야 한다는 것! 연애와 결혼 길찾기 미션에서 빨간 압정 하나를 꽂아보자면 외롭지 않을 방법이 없다입니다. 싱글이든 커플이든 기혼자든 외로움은 기본설정입니다.

 

그런데 외로움도 외로움 나름이라 구분할 필요가 있어요. 외로움에는 두 개의 얼굴이 있습니다. 그 하나는 싱글인 여러분이 뼈저리게 느끼는 그 외로움 즉, 누군가와 연결되고 싶지만 그렇지 못한 현실에서 오는 외로움입니다. 이 외로움은 육체적으로도 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키스하고 싶고, 살을 부대끼고 싶은 욕구 말입니다. 단지 육체적 욕망이 아니라 더 깊은 정서적 갈망에서 오는 것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두 번째 외로움은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없는, 실존적인 외로움이라 합시다. 첫 번째 외로움은 남친 여친이 생기면 일단은 사라져요. 모든 일정 마친 주일 저녁, 혼자 터덜터덜 집으로 향하는 것이 아니라 둘만의 데이트가 시작되는 시간이라면. ‘외로움이 뭐야?’ 언제 외로웠냐는 듯, 헬륨가스 빵빵하게 채워진 풍선처럼 마냥 하늘로 날아오를 것입니다. 첫 번째 외로움은 이렇듯 대체로 사람으로 채워집니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 잠시 그렇습니다. 그런데 필연 풍선의 바람은 새어나가고 찌글찌글해진 마음에서 사랑에의 목마름은 다시 찾아옵니다.

 

오랜만에 연애를 하게 되어 하트하트하는 나날이던 제자가 보내온 메시지입니다. ‘선생님, 요즘 제가 정상이 아닌 것 같아요. 오빠의 사소한 말투나 연락 오는 빈도수에 너무 집착하게 돼요. 그게 성에 안차면 혼자 서운해 울고..... 또 이런 제 모습에 스스로 실망하고요. 두렵기도 해요. 이런 얘길 오빠한테 하고 싶지만 집착하는 것처럼 보일까봐 할 수가 없잖아요. 실망하게 될까봐 두렵고요. 행복하려고 연애하는데 막상 연애를 하니 더 힘드네요. 하루에도 몇 번씩 마음에 폭풍우가 몰아쳐요. ㅠㅠ이렇듯 다시 찾아온 외로움은 더 깊고도 막막합니다. 매력이라고 느꼈던 점이 아픔의 원인이 되거나, 아무리 애를 써도 이해되지 않는 상대의 말과 행동을 확인하며 좌절하게 되지요. ‘나는 연애에 적합하지 않은 사람인가자기회의에 빠지기도, 때로 사랑 자체를 냉소하기도 합니다.

 

두 번째 외로움입니다. 우리 안에는 아주 친밀한 사람이라도 결코 도달할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 존재합니다. 타자로 채울 수 없는 이 두 번째 외로움을 받아들을 때에야 진정한 관계를 맺을 수 있습니다. 연애나 결혼이 텅 빈 마음을 다 채워줄 수 있을 거라는 무의식적인 기대가 출구 없는 갈등을 만듭니다. ‘당신의 친구나 남편이 하나님이 아닌 것을 용서해야한다헨리 나우웬(Henry Nouwen) 신부님 말씀에 귀 기울여 보십시오. 말하자면 두 번째 외로움의 텅 빈 자리는 하나님과의 연결을 통해서만 채워질 수 있습니다. 이것을 사람으로 온전히 채울 수 있고, 채워야만 한다는 망상이 만드는 증상이 있습니다. 우는 사자와 같이 여친(남친)을 찾아다니고, 잠시도 싱글일 수 없어 대상을 가리지 않고 사귀고 또 사귀며, 더 사랑해주지 않는다고 상대를 비난하는 이른 바 사랑이라는 이름의 중독에 빠지게 됩니다. 자신 안에 있는 두 번째 외로움과 화해한 사람이야말로 누구라도 건강하게 사랑할 준비가 된 사람입니다.

 

두 번째 외로움과 화해하는 사람은 다른 말로 하면 나 자신으로 충분한 사람입니다. 혼자 걷고, 혼자 쇼핑하고, 혼자 카페에서 책을 읽고, 혼자 운동하고, 혼자 조용히 기도하러 가고..... 혼자만으로 충만한 사람 말입니다. 자기애적 충만함에 갇혀 살라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 나 자신이 되고, 자신으로 충분한 사람은 언제 어디서든 자기를 선물로 내어줄 수 있는 사람이기도 하여 역설적입니다. 애인이 없으니 사랑의 대상이 없다며 마음에 잠금장치 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을 향해 자기를 여는 것입니다. 힘든 후배 밥 한 끼 사주기. 육아에 지친 친구를 위해 휴가 내어 함께 놀아주기. 의미 있게 나를 내어줄 수 있는 일은 많습니다. 그러고 보면 첫 번째 외로움이 하찮은 것이 아닙니다. 내 안의 더 깊은 외로움, 더 큰 사랑으로 가는 이정표로서의 두 번째 외로움을 일깨우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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