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게 자도 일찍 일어나는 모녀와 달리
일찍 자도 늦게 일어나는 몸을 가진 부자의 아침식탁이다.
맛있고 간지가 흐르면 귀찮음을 무릅쓰고 달려드는 모녀와 달리
아무리 맛이 있어도 귀찮은 건 딱 질색인, 먹을 것을 비롯한 속세에 초연한 선비 부자에게
아침부터 쌈을 싸라고 시킬 수는 없었다.
고상하신 선비들을 아침부터 눈을 부릅뜨고 입을 이따만큼 벌려 우그적거리게 하면 되겠는가.
상치를 썰어서 젓가락질 한 번에 쌈 싸는 효과까지 내는 것으로
친절한 주부가 꼼수를 발휘했다.

세상에서 제일 좋은 '잠'을 떨쳐보내는 것이 너무 힘든 아들 선비는 예민하시다.
평소 빛을 발하는 티슈남의 면모는 어디 가고 아침 식탁에 앉으시면 까칠하기 이를 데 없다.
'잠'을 떨치는 문제라면 아버지 선비도 쉬운 문제가 아니기에
두 선비가 마주한 식탁은 다소 몽롱하다.

비록 근본은 선비의 본체시오나 아이들과 아내를 위해서 돌쇠됨을 자처하는 아버지 선비가
분위기를 띄워볼 요량으로 엄마 코스프레를 했다.
'현승아, 너 야채랑 같이 먹어'
이 말 한 마디에 '먹고 있어. 뷁!!!'했고,
아버지 선비 심기가 불편해졌다.
'너, 진짜 아침마다 그렇게 아빠한테 짜증스럽게 말할래?'
'여보, 나 진짜 상처받았어'

두 선비 사이에서 때론 무술이 때론 마님이기도 한 엄마가
전지적 작가 시점으로 끼어들어 중재를 했다.  
아버지 선비의 장난끼도 아들의 까칠한 반응도 대략 이해할 수 있는 것이기에 금방 풀렸다.

다만,
중재가 진행되는 동안에 아들은 고개를 완전 처박고 밥 한 번, 국 한 번 짜증스럽게 먹어댔다.
안 봐도 비디오.
눈이 벌개져 있을 것이다.
그리고 곧 눈물이 뚝뚝 떨어질 것이다.
그 놈의 깨지 않는 잠이 웬수다.

여차저차 식사는 끝났고 아빠는 씻기 위해서 자리를 떴다.
시간이 늦어져서 '현승아, 너 빨리 준비하고 아빠한테 태워다 달라고 해'
평소 같으면 반색을 했을텐데, 아니 지가 먼저 태워달라고 졸랐을텐데 단호하다.
'싫어'
'늦었잖아'
'빨리 달려가면 돼'
'엄마가 말해줄까?'
'말하지마'
'에이, 아빠도 마음 다 풀렸고 너도 이제 괜찮잖아'
'그래도 싫어. 빨리 달려갈거야'


에헤, 이 알량한 자존심.
지 아부지하고 똑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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