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해 생일에 부모님께 받은 금일봉 봉투.
사랑을 확인하고 싶을 때 한 번 씩 꺼내보기 좋은.

지난 한 주 변신 며느리로 퉁퉁거리고 꽥꽥거리고 벅벅거리면서 나를, 남편을, 애들을 힘들게 했던 감정에 이름을 붙여주렵니다. 감정에 이름을 붙여주기는 매우 매우 중요한 일인 것 같습니다. 감정에 이름을 붙여주기 위해서는 내 마음을 잘 들여다봐야 하는데 가장 빠른 방법 중 하나는 '동기'를 짚어보는 것입니다. 동기를 살피는 일은 자기를 찾는 여정에도, 하나님을 찾아가는 영성에서도 중요한 일인 것 같습니다. 내가 내 자신의 못된 동기에 얼마나 자주 속아 넘어가는지를 깨달을수록 그렇습니다.

지난 주 간만에 시부모님께 불려다니면서 힘들었던 건 몸보다는 마음이었습니다. 요즘은 몸도 건강해졌고 게다가 시간도 많아서 그렇게 몇 번 기사노릇 한다고 크게 힘들지 않습니다. 시간도 있고 몸도 되고 차도 있는데 마음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 기사노릇은 끝은 어디인가?' 하는 질문이 불끈 올라오면서 '나는 어찌 혼자만 며느리 노릇을 다 해야 하는가? 아니, 어찌 혼자 며느리, 아들, 딸 역할을 다 해야한단 말인가? ' 하는 식의 답이 없는 꼬리를 무는 질문이 따라 나옵니다. 이것은 제 마음의 표피 부근에서 울리는 소리입니다. 더 깊은 곳에서 나는 제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내 감정은 무엇인가?를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면 이 질문으로 귀결됩니다.
'두려움인가? 사랑인가?'
관계를 맺고, 행동을 하는 제 마음의 동기는 아주 단순화한다면 이렇습니다.
아니 더 가지치기를 하고 폭을 좁혀보자면 선한행동을 할 때의 동기는 '두려움 아니면 사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관계를 시어머니만으로 국하시키자면 저는 시어머니의 부탁에 대놓고 거절해 본 기억이 없습니다. 거절이 다 뭡니까? 대부분의 경우 뭐든 어머니가 원하시는 것보다 20%는 더 해드렸죠.
제가 제 마음을 잘 모르고 지금보다 훨씬 더 형편 없었던 때, 하나님의 사랑에 그저 거하는 것이 선물이라는 것을 몰랐던 때는 많은 경우 '두려움' 때문에 순종하고 섬겼습니다. 아주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그렇습니다. 그 두려움이란, 어머니께 사랑받지 못할까봐, 착한 며느리란 소리 못 들을까봐, 하나님 사랑을 모르는 사람처럼 보일까봐..... 이런 것들이었습니다. 제가 그러고 있다는 것을 조금씩 알아가면서 두려움 아닌 사랑으로 섬기는 것을 아주 조금씩 배워갈 수 있었습니다. 여러 일들을 통해서 어떤 때는 진심으로 어머니를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게 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저는 어머니를 아버님을 진심으로 사랑합니다.

헌데, 갑자기 부모님의 요구가 지난 주 처럼 밀려들기 시작하면서 '싫다'는 감정이 올라오면  슬슬 제 동기에 의심이 가기 시작합니다. 하기 싫은데 어쩔 수 없이 하는  이것은 더 이상 사랑이 아니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면 '두려움인가?' 라는 생각이 스치는 순간 제 마음에 굉음처럼 울리는 한 마디가 있습니다.
'맞아. 그러니까 너는 위선자야!'
오래 전에 부모님을 대하는 제 태도를 보고 누군가 제게 한 말입니다. 그 목소리가 제 마음에 들리는 순간 '맞아, 나는 두려움 때문에 순종하는거야. 이거봐. 이렇게 하기 싫은데 속에서 부글부글 하면서 한의원에 전화 심부름 하잖아. 그 말이 딱 맞어. 나는 위선자야. 속에서는 이러면서 겉으로는 착한 척하는 거 봐'
여기에 생각이 미치는 순간 저는 위선자가 되기로 하고, 저를 난도질하고 제게 위선자라고 일러줬던 그 목소리에 질질 끌려다닙니다. 스스로 그 감옥에 저를 집어 쳐 넣습니다. 사실 지난 주에 힘들었던 건 바로 이 때문입니다.

그러고 있는 제 자신에게 제가 영적지도자가 되어 상담을 해줍니다. (어느 후배가 이 문제로 제게 왔다고 가정을 하면 내가 뭐라 말해줄 수 있을까? 가정을 해보는 겁니다)

'사람 마음의 동기가 100% 순수할 수 있을까? 우리가 인식하는 것보다 마음의 동기는 훨씬 더 복잡하지 않을까? 프로이드나 융이 말하는 빙산과 같은 무의식은 마음의 동기가 그렇게나 광활한 곳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설명하고 싶은 것 아니겠니? 니 마음에는 항상 두려움과 사랑, 또 그 밖의 여러 동기들이 공존하고 있을거야. 사랑으로 온전하게 되는 것은 너의 영역이 아니라 네 마음에 계시는 성령님의 일이야. 니가 할 수 있는 일은 사랑으로 행동하겠다를 선택하는 정도? 사실 선택만 하는 건 아주 작은 일 같지만 아주 중요한 일이야. 그건 마치 너의 사랑을 돕기위해 24시간 대기하고 계신 사랑이신 그 분에게 빗장을 열어 드리는 것이니까. 그러고 난 후에 니가 할 수 있는 일은 순간순간 두려움 때문이 아니라 사랑 때문에 움직일 수 있도록 너 자신을 내어 맡기는 일일거야. 힘 내. 니가 그래도 10 년을 이렇게 부모님과 좋은 관계 맺으면서 올 수 있었던 건 더 많은 시간동안 두려움 보다는 사랑의 동기가 1% 라도 우세했기 때문일거야. 위선으로 10년을 속이는 게 어디 그리 쉬운 일이겠니? 잘 하고 있어. 오고 오는 감정을 잘 흘려보내고 끊임없이 사랑이신 그 분의 사랑에 잇대어 살기로 하자'

부모님 뿐 아니라 가까이는 남편, 그리고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선대하면서 '두려움'과 '사랑'의 경계선에서 오늘도 나는 흔들리고, 흔들리다 내가 할 수 없음을 알고, 큰 사랑에 나를 내어 맡기기로 하며 힘을 뺀다. 

'마음의 여정'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옷을 벗다  (12) 2009.01.20
창문을 빼꼼~  (20) 2009.01.12
가을, 소국, 수료, 사랑  (15) 2008.10.22
생각없는 생각  (14) 2008.07.24
기도  (4) 2008.07.24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