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의 입냄새, 이 사이에 낀 고추가루를 말해줘야 하는 일, 민망한 일이다. 괜히 혀를 더듬어 내 입속만 단속해보다 '나중에 거울 보면 알겠지' 포기하게 된다. 너 입냄새 구려, 너 음치인 것 알아, 우리 사무실 사람들 모두 너 때문에 힘들어.... 우린 다 아는데 너만 모르는 것 같아. 말하기 어려운 말들이다. 


마가렛트 여사는 음악을 사랑하고 노래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지만 음치이다. 이 사실을 본인만 모른다. 말해주는 사람이 없다. 마가렛트 여사는 돈이 무지 많다. 음악 클럽의 후원자이기도 하니 음악을 사랑하는 고고한 클럽 회원들은 박수치며 그녀의 노래에 열광해준다. 그녀의 노래가 시작되면 입냄새 나는 친구 앞에서 숨을 참듯 견디다 노래가 끝남과 동시에 참던 숨을 몰아쉬듯 '브라보!'를 외친다. 물론 조롱 섞인 브라보이다. 그러니까 '마가렛트 여사의 감출 수 없는 비밀'이란 마가렛트 여사만 아는 비밀이 아니라 그녀만 모르고 세상은 다 아는 비밀인 셈이다. 이 비밀을 이용해 대놓고 속이고 이용하는 사람도 있다. 젊은 기자와 삽화가는 신문에 찬사를 보내는 기사를 쓰고 마가렛트 여사를 이용해먹으며 뒤에서 낄낄거린다. '알면서 속아준다'라는 말이 있는데 사람들은 알면서 속아준다기 보다 모두 한통속 되어 마가렛트 여사를 속이고 있는 것이다. 그중 가장 적극적이고 창조적으로 속이는 사람은 마가렛트 여사의 비서이며 음악 보좌관 격인 마델보스이다.


채윤이와 함께 조조로, 극장을 전세내어 본 영화이다. 시놉시스와 몇 장면의 사진을 보고 '키키키, 재밌겠다. 볼래' 했던 채윤이는 중간에 몸을 베베 꼬았다. 코미디인 줄 알았는데, 코미디는 코미딘데 블랙코미디였던 것. 웃픈 영화여서 힘들었던 것. 그런데 실화 바탕의 영화란다. 그렇다. 실화. 실화 바탕이란 사실을 알고 나서 채윤이의 호기심에 다시 발동이 걸렸다. 블랙 코미디는 실화이고 우리들의 실제 이야기는 코미디이다.

사실 내 입냄새를 나만 모르지 내 친구들은 다 맡고 고통스러워 한다. 내 인격의 악취는 나만 모를 뿐 너는 안다. 이것이야말로 실화이다. 내가 누군가를 떠올리며 '걔는 참 이것만 고치면 참 좋을텐데....' 라고 말할 수 있는 것처럼 누군가도 나를 떠올리며 명쾌하게 분석할 것이다. 다만 서로들 암묵적으로 참아주는 것이다. '너 입냄새 나' 말을 굳이 말을 해서 내 이미지 구길 필요하 없기 때문이다. 다른 영화 <윈터 슬립>이 생각났다. 주인공 캐릭터가 극단적으로 다른 것은 단지 영화의 쟝르가 다르기 때문일 터. 내게 오는 메시지는 동일하다. 스스로 일궈낸 자아 이미지에 어떻게 무지막지하게 전폭적으로 속고 있는지를 마가렛트 여사가 보여주고, 그 속임수의 속임술이 얼마나 정교한지를 <윈터 슬립>의 아이딘이 보여준다. 우습도록 화려한 마가렛트의 의상과 온화하며 지적이고 선하기까지 한 아이딘의 메마른 웃음과 긴장된 말투가 같은 메타포로 느껴진다. 마가렛트는 어린 아이처럼 있는 그대로 내보이니 블랙코미디가 되고, 아이딘은 온갖 착하고 세련되고 있어보이는 포장지를 많이 달고 있으니 내 실상과 똑같은 리얼리티가 되는 것이다.

'나는 옳고, 나는 착하고, 나는 겸손하고, 나는 답을 알고 있고, 나는 의식있는 합리적인 사람이고....' 이 향연에 숨이 막힌다. '사실 너 입냄새 쩔거든. 입 좀 다물고 있을래' 라고 말할 수 있으면 어떨까? 할 수 없다. 자기 잇사이에 낀 고추가루를 보거나 빼내려면 거울 앞에 서야한다. 자기 인격의 구린내는 '정직한 성찰'이라는 뼈아픈 작업을 통과해야 알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거울이라고 말해야 하는 것 아닐까? 싶지만 아니다. 말씀을 거울 삼아 자기를 정직하게 비추어 인격의 악취를 인정하고 애통하며 회개하는 사람을 나는 근자에 보지 못했다. 안타깝게도!) '너 입냄새 쩔어'라고 말할 수 없는 이유는 '성찰'이라는 칼날의 방향은 항상 '나'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너 성찰 좀 해'는 성립하지 않는 명령어이다. 거기에 해 줄 말은 오직 하나, '너나 잘 하세요' 두 영화가 내게 불편한 이유는 이것이다.

영화의 마델보스는 '현자'같다. 마가렛트 곁에서 적극적으로 치밀하게 속이는 자이다. 다른 어떤 속이는 자와 다르다. 마델보스는 마가렛트가 노래에 집착하는 이유를 안다. 남편의 애정과 관심이다. 자신의 노랠 들어줄 남편. 마델보스는 또 안다. 남편의 마음이 어디에 있다는 것을. 연주회 시간에 늘 늦는 이유가 자동차 고장 때문이 아니라 애인과 함께 있었기 때문이고, 무엇보다 마가렛트의 노래를 견딜 수 없어 한다는 것을. 그리하여 마가렛트가 가장 원하는 남편의 사랑을 얻는 일은 요원하니 대체물이 필요한 것이다. 엄마 찾아 우는 아이에게 막대사탕을 물려주는 격이다. 엄마에 대한 그리움으로 마음은 텅 비었지만 단맛에 취해 그럭저럭 시간을 보내는 아이처럼 마가렛트는 살아가는 것이다. 무엇보다 마델보스는 그것을 잘 알고 있는 것 같다. 때문에 영화 후반 여차저차 하여 남편의 마음이 마가렛트를 향해 돌아서고 있을 때 속이기 놀이를 포기한다. 결국 우리가 붙들고 있는 자아 이미지란 상처받을 수 밖에 없는 우리를 당분간 지켜내는 보호막이기도 하다. 자아 이미지에 오래, 강하게 붙들려 있을수록 악취가 나고 듣기 싫은 괴성을 낼 수 밖에 없겠지만. 악취와 괴성 넘어 상처입기 쉬운 약함을 봐주는 눈, 그것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인지 모른다.

아, 물론 언제까지 속고 속일 수는 없다. 마델보스는 때가 됐다 여겼고, 남편도 마가렛트를 받아들이고 사랑할 준비가 되었다. 그런데 처음으로 자신의 노래를 들은 마가렛트는 쇼크로 쓰러지고 만다. (어쩌면 죽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니 결국은 자기 몫이다. 마델보스의 혜안과 극진한 충성으로도 어쩔 수 없는 것. 에니어그램 공부를 사랑하는 이유는 '너나 할 것 없이 우리 모두 악취를 가진 존재야.'라는 전제 하에 성격이 가진 미덕과 더불어 악취를 가감없이 알려주기 때문이다. 자신의 인격적 입냄새를 맡겠노라고 자발적으로 찾아오시는 분들이 대부분이라 한 번을 만나도 진실한 만남이 주는 정서적 포만감이 있다. 적어도 강사인 내겐 그렇다. 그러나 그 과정이 얼마나 힘든지 알기에 세미나 전후로 무게감에 많이 눌린다. 마델보스의 정도의 혜안과 애정을 가지고 세미나를 이끌 수 있으면, 싶다. 영화 얘기하더니 어쩌다 기승전에니어그램? 이해해 주시라. 내일이 올해 첫 세미나라 내 맘이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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