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풍노도와 같은 2010년이 지고 있다.
적어도 내게는 질풍노도였다.
질풍노도의 손바닥만한 일렁임의 시작은 2009년의 크고 작은 개인적, 국가적 일들로 거슬로 올라가지만 본격적인 본격적으로 바람이 거세지고 파도가 소용돌이치게 된 건 1월 첫 주였다.
기도하고 싶었다. 하지만 정작 기도의 자리는 앞뒤좌우가 꽉꽉 막혀 있었다. 기도하러 갔다온 1월 첫 주의 어느 새벽 거실에 누워 통곡을 했다. 세상과 교회와 무엇보다 나의 하나님을 향해 모질게 등을 돌리며 통곡을 했다.


기도하고 싶고, 나의 하나님, 사랑의 하나님 그 분의 존재를 확인하고 사랑을 회복하고 싶어서 1월 세째 주던가... 용기를 내서 일상을 떠나 큰 걸음을 내딛었다. 3박4일 모든 소음에서 떠나 침묵 속 기도의 자리로 떠났다. 말 한 마디 입 밖으로 내지 않고 밥 먹고 하는 일이라곤 기도 밖에 없었는데 마음의 소음은 커져만 갔다.
난 태어나보니 목사의 딸이었고, 자라면서는 그냥 목사의 딸이 아니라 착하고 영특한 목사의 딸이었다. 게다가 까불고 귀여운 목사의 딸이었다. 하나님께도 그런 딸이었다.
내면에서 올라오는 소리가 커지고 또 커져서 하나님을 향한 40년 억눌렀던 섭섭함을 다 토로했다. 감히. 감히. 막 대들었다. 하나님께 대들지 말라는 설교를 들은 지 몇 주 안돼서였다.ㅜ


기진맥진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기도하던 시간 끝에, 여전히 침묵으로 일관하셨던 그 분 앞에서 이제 하나님께 대든 대역죄까지 범한 내가 자포자기로 앉아 있을 때 였다. 바로 그 때 였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째 부인하던 그 순간, 그 순간으로 내 마음이 옮겨져갔다. 얼마나 절망스럽고 얼마나 두렵고 얼마나 막막했을까?
그 때 닭이 울었고, '주께서 돌아서서 베드로를 보셨다!' 그 때 베드로를 바라보던 그 예수님의 눈빛이 베드로 같이 두려움과 외로움과 막막함에 떨고 있는 나를 바라보셨다. 그 눈빛에 제대로 마음이 무너지고 녹았다. 너무도 안쓰러워 하는, 너무도 가엾어 하는, 당장 뭐라도 해주고 싶어서 손이 저절로 올라오는, 너무 사랑하는.... 그런 눈빛이었다.


베드로는 나가서 몹시 울었다.





그리고나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다시 만난 갈리리 바닷가.
밤새 고기잡은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을 위해서 예수님은 손수 물고기를 굽고 계셨고, 먹으라고 하셨다.(아, 따뜻하신 분ㅜㅜ)
거기서 세 번이나 물으셨다. '베드로야,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세 번째 물으셨을 때는 베드로가 거의 울상이 되어서 대답했다. '주님,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도 주님께서는 알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왜 그리 민망하게 물으셨을까? 베드로가 그렇게 의기충천해서 예수님 따라다니던 베드로가 이제 사도로 헌신의 삶을 살아야하는데 '네 안에 사랑없다'는 걸 확인시키시고자?
내가 아는 예수님은 그런 분이 아니시다. 3년 간 예수님을 따라다니던 베드로의 마음을 다 아시는 예수님. 그 분은 베드로 안에 있는 '두려움'과 '사랑'을 모두 꿰뚫으셨다.
 





예수님을 잡으러 로마군인들이 왔을 때 칼로 대제사장의 종이 귀를 내리친 베드로의 동기는 무엇일까? 예수님의 수제자로서 이 정도의 용기는 내야한다는 자의식,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라는 생각에 의한 두려움의 발로, 또 예수님에 대한 사랑.... 여러 가지 동기의 혼재라고 나는 생각한다. 왜냐면 내 맘을 들여다 볼 때 내가 유일한 하나의 동기로만 움직이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럴 때 예수님은 내 마음의 동기 중에서 무엇을 봐 주실까? 다 아시는 예수님께서...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고 예수님과 아이컨텍을 했던 베드로. 그리고 나가서 통곡을 했던 베드로는 이미 자기 안에 무엇을 보셨는지 알거라 믿는다.
베드로야 네가 나를 사랑하니? 사랑하지?
라고 반복해서 물으시는 것은 베드로 안에 있는 사랑을 확인시키시는 과정이고, 스스로도 믿지 못하는 그 사랑을 확인해주시는 것으로서 베드로는 열등감과 죄의식에서 치유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예수님은 우리를 향해 '너 왜 대들어! 나를 사랑하란말야. 사랑할래 뒤지게 맞으래?' 이런 식의 사랑을 강요하시는 분 아니라 자신의 사랑을 흘려보내서 그 사랑에 나를 젖게 하는 분임을 나는 안다. 베드로에게도 내게도.....






내 안에는 예수님을 향한 사랑도 있고, 예수님을 이용해서 이 땅에서 잘 먹고 잘 살고 편하게 살아보자는 이기심도 있고, 두려움도 있지만 예수님은 내 맘에 코딱지 만한 사랑을 봐주시는 분. 그걸 인정해주시는 분이시다. 두려움에 떨던 베드로가 감히 예수님이 맡기시는 양을 먹이는 일은 이제 의무감도 아니다. 그저 예수님으로부터 받았고, 인정받은 그 사랑을 흘려보내는 일일 뿐일 것이다.
베드로는 이제 자신이 들었던 자의식의 칼을 내려놓고 자시 힘으로 옷입고 원하는 곳으로 다니던 삶에서 '팔을 벌려 다른 사람들이 입히는 옷을 입고 원치 않는 곳으도 데려가는 삶'에 기꺼이 자신을 던질 수 있게 되었다. 그건 사랑의 바다에 아무 걱정없이 힘을 다 빼고 누워 자신을 맡기는 사람만이 갈 수 있는 길일터.


질풍노도와 같은 2010년을 지내면서 내가 받은 선물은 사랑의 하나님의 재발견이다.
정직하게, 아주 정직하게 그 분 앞에 나가기만 하면 결국에는 내 마음의 풍랑을 잠재우시고 그 분의 하염없는 사랑에 눈 맞추게 하시는 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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