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제일 예쁜 손은 누구의 손일까요.
지난 번에 나는 거울에게 살짝 물어보았죠.
텔레비젼에 나오는 예쁜 탈랜트의 손일까.
피아노를 연주하는 뽀뽀하는 언니 손일까.
아니야 아니야 거칠어지신 우리 엄마 손.
그렇지 그렇지 가장 예쁜 손은 우리 엄마 손.




채윤이가 네 살 때 어린이집에서 배워 부르는 노래입니다. 노래든 학습이든 거의 청각을 통해서 습득하는 채윤이는 무조건 들리는대로 불렀습니다. '피아노를 연주하는 곱고 하얀 언니 손일까'를 '피아노를 연주하는 뽀뽀하는 언니 손일까'로. 이렇게 부르던 노래가 여러 곡 됐는데 일부러 바로 잡아주질 않았습니다. 채윤이만의 노래, 채윤이만의 독특한 발음을 지켜주고 싶은 마음이었죠. 그 독특함이 사랑스러웠고요.




음악치료 대학원을 다니며 음악 전공한 친구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음악을 전공하고 그 전공에서 의미를 찾지 못해 방황하다 '음악 치료'를 만나고 '구원자'를 만난 것처럼 기뻐하던 사람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연주공포가 있는 친구도 있었고, 여러 이유들이 있었겠지요. 어렸을 적부터 피아노만 붙들고 살았었을 겁니다. 그랬으니 명문대학들을 들어갔겠지요. 그 경험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아기 적부터 음악적 감각이 남다르던 채윤이를 굳이 음악을 시키고 싶지 않았습니다. 음악을 하더라도 정말 원할 때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서 해야 한다고 믿었지요.




때문에 예술중이니 예술고는 생각도 하지 않았습니다. 생각도 하지 않았다기 보다는 대놓고 '보내지 않겠다. 가끔씩 절대 보내지 않겠다.'라고 지껄이기도 했지요. 곡절 끝에 명일동으로 이사하고 찾은 동네 음악학원에서 선생님을 한 분 만났습니다.(언젠가 이 만남에 대해서 글로 나눌 날이 있을 것입니다.) 처음엔 어려워만 하더니 차차 너무 좋아하고 선망하는 것입니다. 이 선생님을 만나고부터 피아노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고 듣고 치는 수준이 달라졌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선생님을 롤모델로 삼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예중을 가겠다는 것입니다. 나름대로 자신의 진로를 선택한 것인데 그러지 마라 할 수도 없고, 그간 소신이 있기에 그래라 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기도하고, 미루고, 현실적인 고민을 하는 과정에서 작년 이 맘 때 즈음 결정을 했습니다. 채윤이의 의지가 확고했고, 마음의 고민들이 자연스럽게 해소되면서 된 일이지요. 그리고 채윤이가 참 열심히 해왔습니다.




끝없이 놀아야 하는 놀이의 신인 채윤이가 놀 시간이 없어서 놀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하루에 다섯 시간 씩, 아니 조금 과장해서 어쨌든 밥 먹으면 피아노 앞으로 가는 1년을 보냈습니다. 지난 여름 에어콘도 없이 무더위와 싸우면서도 내내 열심히 쳤습니다. 예중에 합격을 해도 안해도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위해서, 아직 어린 나이에 저렇게 매진해보는 경험이 소중할 거라는 생각조차 들었습니다. 그리고 늘 입버릇처럼 말했습니다. '열심히 하되, 합격해도 좋고 못해도 된다. 이래도 좋은 일이고 저래도 좋은 일이다.'




입시를 얼마 앞두고 중요한 콩쿨이 있었습니다. 내심 좋은 성적을 거두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는데 그러질 못했습니다. 생각보다 마음의 좌절이 컸습니다. 해피 해피 채윤이는 금방 털어버리고 연습을 하는데 말이죠. 그러면서 '되고 좋고 안되도 좋다'는 말을 거두어 들이기로 했습니다. 궁극적으로 그렇게 믿는다 할찌라도 감정을 보니 정직한 말이 아니더군요. '되도 좋고 안되도 좋다'라고 말하면서 성숙한 믿음을 가졌다 뻐기고 싶었던 것 같아요. 입시 결과가 나오면 어떤 결과이든지 지금과 같은 마음으로 글을 쓸 수 없음을 알기에 '바로 지금'의 마음을 흔적으로 남겨 놓습니다.


피아노를 연주하는 뽀뽀하는 언니 손.
이 우리 채윤이 손이 되었어요. 저 손가락에 쌓인 땀과 시간이 우리 채윤이를 더 아름다운 사람으로 자라게 할 것을 믿어요.
오늘은 채윤이 손에 뽀뽀를 한 번 해줘야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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