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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페북에 걸린 어떤 글이 몹시 궁금해진 상황이 있었어요. 남편 계정으로 들어가 봤습니다. (이런 거 싫어하는 분이라 허락받기 힘들었... 약간 치사했....) 용건을 마치고 오랜만에 퍼런색 지붕의 페북 타임라인을 주욱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다 내가 해 아래 헛되고 헛된 것을 발견하였으니! 페친들은 여전하더이다. 해 아래 새것이 없어서 뉴스피드는 1년 전과 같고, 3년 전과 같고, 5년 전과 같더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지금 보고 있는 타임라인이 2013년 오늘로 날짜만 바꿔놓는다 해도 이상할 것 없더라는 것입니다. 모두들 각자 늘 하던 그 얘기를 여전히 반복 재생산 중인 것 같았어요. 사회 문제에 빡치는 사람은 여전히 분노하고 있고, 큐티하는 사람은 여전히 말씀 묵상을 나누며 축복하고 있고, 페북엔 넌크리스천도 있는데 왜 큐티를 올리느냐며 나무라는 사람 역시 건재하고, 논문발표를 하던 사람은 또 다른 주제를 논증하느라 여념이 없고요. 가르치는 분들은 여전히 가르치고 계십디다. 해외여행과 먹방 PD를 자처하시는 분들의 사진은 여전히 화려하구요. 아직 제가 페북에 있었다면 저 역시 마찬가지였겠죠. 커피 사진 아니면 현승이 일기나 올리고 세미나 광고를 하며 동어반복을 하고 있겠구나 싶었어요. 바라보고 있자니 전도서 한 편 써내는 것 일도 아니겠더군요.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 내가 해 아래서 포스팅하는 모든 일을 보았노라. 보라 모두 다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로다. 해 아래서 포스팅하는 모든 수고가 사람에게 무엇이 유익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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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북에 큐티만 나누던 사람들이 그만 묵상을 끝내고 광화문으로 나가 우는 자들의 손을 잡으면 좋으련만, 왜 공적 공간에 하나님 하나님을 찾느냐며 나무라는 분들이 페친의 일은 페친의 하나님께 맡겨 버리면 좋으련만 변하지 않습니다. 생각해보면 모두들 자신의 틀과 언어로 동어반복 하며 살고 있습니다. 사람 참 안 변해. 결론을 내리고 페북을 닫았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블친 중 한 분께서 2000 포스팅을 달성하시어 축하 댓글을 썼더랬습니다. 2000 포스팅 오는 동안 글맛이 조금씩 달라졌다고 썼는데요. 정말 그러하다 생각했습니다. 참 재밌는 편애입니다. 사실 제 블로그 포함 블로거들 역시 늘 비슷한 모티브를 가지고 비슷한 이야기를 써내기는 페북커들과 마찬가진데요. 불과 며칠 사이로 SNS 화면을 들여다보며 '사람 참 안 변한다' 했다가 '달라지셨어요'라 했으니 말이죠. 구조적으로 페북이나 트위터는 흘려보내며 읽게 되고 블로그 글은 들여다보며 읽기 때문이겠지요. 오프에서 아무리 친한 사람이라도 페북 뉴스피드에서 보면 그저 one of them일 뿐이고 블친은 연속성을 가진 한 존재로 만나게 되는 것 같단 생각이 드네요. 그러네요. 페친들이 3년 전, 5년 전과 달라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변화를 읽어낼 찬찬한 눈을 장착하지 않는 탓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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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를 읽어내는 눈이 사랑일까요? 그러고 보면 이즈음 에니어그램 세미나를 진행하며 전에 없는 기쁨을 발견하고 있습니다. 참가하신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한 마디도 놓치지 않기 위해서 에너지를 집중하는 저 자신을 봅니다. 보이지 않는, 당사자도 인식하지 못하는 변화를 찾아내기 위해서인 것 같기도 하고요. 한 존재를 이해하기 위해 제스춰 하나도 소중하게 간직하고 싶다는 마음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내가 살아있다 느끼고, 여기에 사랑이 있다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아픔이나 성장을 향한 목마름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을 발견하고 좌절과 회의에 빠졌던 적이 있었는데요. 거기서 빠져나오며 얻은 통찰인 것 같습니다. 상담이든 영성지도든 사람이 사람을 변화시킬 수는 없다. 할 수 있는 일이란 영혼을 활짝 열어 들어주고, 같이 울어주는 것 뿐이다. 그리고 남은 시간은 침묵이다. 상대방의 변화는 내 능력 밖의 일이지만 의외의 숨은 보물이 있습니다. 그의 마음에 공명하여 내 안의 견고한 어떤 것들이 무너지는 경험입니다. 그 기쁨을 발견해가고 있습니다. 지난달 에니어그램 세미 2단계를 마친 다음 날이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났는데 오른쪽 눈의 실핏줄이 터져 공룡 눈이 되어 있었습니다. 피곤하지도 않은데 왜 이럴까? 하다가 히히, 웃었습니다. 8주간 수강자들의 마음을 자세히 듣고 보려고 애쓴 결과, 훈장이라 치자. 한 존재를 자세히 들여다보며 공명할 때 내 마음이 한 차원 다른 곳으로 옮겨갑니다. 멀쩡할 때는 도통 도달할 수 없을 거라 생각하는 자리, 그런 자리로 순식간에 옮겨 간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너와 내가 있는 그대로 소중하고 사랑스럽다는 것을 경구가 아닌 존재로 느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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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사랑이시라! 하나님을 믿는 제게 '사랑'이라는 덕목이 얼마나 버거운 숙제인지요. 게다가 한술 더 뜨시네. 완전 사랑하는 나의 예수님은 원수를 사랑하라십니다. (원수라고요? 설마 국가 원수는 아니겠지요? 예수님 ㅜㅜ) 되지 않는 사랑을 붙들고 진흙탕을 뒹구는 것이 신앙의 여정인가 싶군요. 모든 사람 사랑하겠다고, 원수까지 사랑하겠다고 너무 높은 곳에서 시작한 탓일까요? 사랑하겠다고 결심할수록 힘이 빡 들어간 마음에 관용은 없어지고, 사랑이라고 애써 뻗은 손이 폭력일 때가 많았으니 말입니다. 멀리 말고, 높은 곳 말고 지금 여기 내가 서 있는 낮은 곳에서 자세히 보고 오래 바라보는 여유라도 가져보자 싶습니다. 마음이 고요해지지 않으면 어려운 일이라 쉴 새 없이 돌아가는 마음의 눈동자를 한 곳에 고정하는 일부터 시작해야 하고, 지금 옆에 있는 사람에게 시작하면 될 일이네요. 눈앞에 사람은 없고 쪼고미 화분들이 줄을 서 있습니다. 쟤네들이 선생입니다. 작은 성장을 감지할 수 있는 생명의 감각, 작은 변화를 발견할 수 있는 여유롭고 따스한 눈. 그런 거요. 너무 힘주면 핏줄 터지니 힘 빼는 것은 기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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