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브♥갓♥메일 목적이 이끄는 연애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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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팅을 했구나. 이거 너무 극과 극을 왔다 갔다 해서 답장 모드 바꾸는 데 선생님이 막 헷갈리는데. 지난 번 메일에서는 비신자와의 데이트를 질문하더니 그 새 전도사님과 소개팅을 했다고? 우리 은혜가 사람을 만날 때가 되긴 됐나보구나. 사람에 대한 고민이 끊일 날이 없으니 말이야. 소개팅을 하고 나면 맘이 참 복잡하지? 상대가 마음에 들면 상대의 반응을 기다리는 시간이, 맘에 안 들면 적절하게 사후처리하기 둘 다 어려운 일이야. 그지? '하나님이 은혜의 이성교제를 쿨하게 인도하질 않으신다'는 얘기를 읽으니 은혜의 볼멘소리가 귀에 들리는 듯하다. 그러게 말이다. '우리 은혜의 반쪽은 이 녀석이다' 하고 팍 갖다 안겨주실 일이지, 달라는 남친은 안 주시고 고민꺼리만 주신다냐? 이번 소개팅으로 '사모가 되는 것'에 대한 숙제를 새로 떠안았다고? 어찌 은혜한테 온 숙제는 고스란히 선생님이 대신하고 있는 느낌이냐? 아∼ 오해는 하지 마라. 선생님은 사랑하는 제자 은혜의 연애 고민에 동참하는 것을 영광으로 알고 있으니까 말이야.


예비 목회자와의 소개팅
교회에서 보면 좀 성실하고, 믿음이 있어 보이고, 참하다 싶은 자매들에게는 한 번 쯤 칭찬이라고 해주는 평가가 '사모감'인 것 같아. '너는 딱 사모감이다.' 이런 얘기를 들으면 듣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반응하겠지만 일단 교회문화 안에서는 칭찬 아니겠니. 소개팅을 주선해 주신 권사님도 은혜를 아주 예쁘게 보셨다는 얘기지. 어른들이 '너는 사모감이다.' 하실 때 어떤 덕목을 꼽으시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흔히 교회에서 봉사 잘 하고, 착하고, 잘 섬기는 등의 이런 좋은 것들은 다 포함하고 있다고 봐야지. 그러니 교회 안에서 자란 과년한 처녀들에게 '내가 사모감?' 하는 고민은 가볍고도 무거운 통과의례 같기도 해. 선생님도 예외는 아니었지. 소시 적에 목회하실 분과 소개팅도 해봤고 같은 교회 내 전도사님들과 이런 저런 썸씽도 있어봤고 말이다. 상대방이 은혜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고 계속 교제를 원한다고? 그런데 은혜는 그 사람이 어느 정도 맘에 들지만 예비 목회자라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는 것이지? 그러게. 니 말대로 소개팅을 나가기 전에 신중하게 생각하고 나갔으면 좋았겠지만 우리가 원래 닥쳐야 진지하게 고민하고 기도하게 되는 연약한 사람들 아니니. 계기도 없는데 어떤 일에 심각하게 고민하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겠니.


외적인 조건보단 사.람.을 보기
신학교에 가면 그런 경우가 있다더라. 사모가 되겠다고 서원(?)을 한 여학생이 남학생 하나를 찍어놓고 '제발 저 남자와 되게 해 주세요.'하며 기도를 하고, 상대 남학생은 '하나님, 저 자매만은 싫어요. 제발 떨어져 나가게 해 주세요.' 기도한대. 이렇게 사모가 되는 것이 하나님의 소명을 이루는 일처럼 적극적으로 자원하는 자매가 있는가 하면, 다른 건 다 오케이지만 '사모만은 싫습니다. 자신 없습니다.'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애. 사모가 뭐길래 젊은 처자들이 이렇듯 극단의 반응을 보이는 걸까? 목회자들이 소명을 받아서 신학도가 되는 것처럼 사모도 하나의 특별한 소명일까?

일단 나는 '사모 됨'에 대해 필요 이상의 무게가 실린 것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나는 사모가 되겠다는 쪽도, 사모만은 싫다는 쪽도 너무 막연한 두려움과 기대에 붙들려 있는 건 아닌가 생각해. 목회자 사모님들의 삶이 남편의 사역으로 인해서 남달라 보이는 부분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선택의 순서에 있어서 '사모'라는 자리가 먼저가 아니라 '내가 결혼하려고 선택한 사람이 목회자 내지는 목회자 지망생'이라는 것이 앞선 순서 아니겠니? 사모가 될까, 말까에 대한 고민도 만만치 않은 무게임을 알지만, 좀 더 본질적인 물음은 '이 사람이면 내가 평생을 함께하며 행복한 가정을 만들어 갈 수 있겠느냐'가 되어야한다는 거야. 주변의 여러 사모님을 보렴. 교회 내에서 외딴섬처럼 외롭게 생활해야 하는 것, 경제적인 어려움이 있다한들 남편과 더불어 마음과 영혼으로 하나 되어 신뢰하는 관계를 맺지 못해 오는 외로움과 고통보다 크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야. 가정의 모든 일은 아내에게만 일임하고 사역에만 매달리는 사역자가 일중독의 회사원 남편과 크게 다를까? 그러니 '사모됨'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의 하중에 가려서 즉, '그는 사역자이다'에 가려서 '그는 어떤 사람인가?'를 제대로 보지 못한 채 선택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이번 메일에서 은혜가 소개팅 했다는 전도사님에 대한 은혜의 느낌이 그저 '괜찮다' 외에 별다른 정보가 없다는 것 때문에 선생님이 노파심이 발동한 것 같아. 그 전도사님이 사역에 대해서는 어떤 비전을 가지고 있는지, 가정에 대해서는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 또 아내와의 관계를 어떻게 세워가기 원하는지 등에 대해서 잘 알 수 있었으면 좋겠다. 선생님이 일단 가장 궁금한 부분은 그거야. 은혜가 염려하는 건 십분 이해가 되지만, 그 염려 때문에 마차가 말을 끌고 가는 식의 선택을 하게 되지는 않을까 하는 노파심이지. 선생님 생각에 일단 제일 중요한 것은 사.람.이란다.


사모가 된다는 것
네가 아다시피 선생님 남편이 늦깎이 신학생이 되고 전도사님이 된 탓에 어쩌다보니 선생님도 사모가 된 지 어언 3년이란다. 남편이 신대원 입학을 결정한 후에 나를 스치고 지나간 여러 생각이 은혜의 메일에 담겨져 있는 것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단다.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내게 있어 어려운 점은 교회 안에서 '공인'이 된다는 거였어. 또 공인인 목회자나 사모에 대한 기대가 뚜렷한 기준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마다 다르더구나. '사모는 이래야 한다. 사모는 저래야 한다.'는 다양한, 그러나 서로 부합하지 않는 기대들이 당혹스러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너무 다양한 기대는 오히려 내게 아무것도 요구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 '사모 됨'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나다움'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참된 사모 됨'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어. 오히려 '사모의 틀'을 가지고 가장 강력하게 요구하는 사람이 목회자인 남편인 경우가 많은 것 같더라. '당신은 사모니까 일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라.''당신은 사모니까 일해라.'는 식의 틀 중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틀은 목회자인 남편이 제시하는 틀인 것 같아. 그러니 단지 목회자의 아내가 아니라 어떤 목회자의 아내인가가 정말 중요하지 않겠니?


예비 목회자가 배우자를 선택할 때
그런 의미에서 아내를 선택하는 전도사님들도 생각해 볼 문제가 있는 것 같아. 어떤 목회자 지망생들이 우스갯소리로 하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 자신은 목회자이기 때문에 일단 결혼을 하면 한 눈 팔 수 없으니 얼굴도 되고 몸매도 되는 자매를 만나야 한다는 거야. 신앙과 인격은 기본옵션이라고 하겠지. 자신의 소명과 자기 자신을 구별하지 못한 상태에서 결혼을 생각하는 방식인 것 같아. 한 남자로서 한 여인을 선택하고 사랑하겠다는 기본적인 전제에서 비켜간 위험한 생각 아니니? (이런 분들은 필시 한 눈 팔 가능성이 높다는 생각!)

또는 반대로 '내가 선택한 길은 힘든 길인데 어느 자매가 나와 함께하겠나' 하는 전도사님들도 있는 것 같아. 자매들이 다가올 때마다 '사역자의 길 = 고난의 길' 카드를 내밀고는 '받을래? 말래?'부터 먼저 묻는 방식으로 배우자 선택에 접근하는 것 말이야. 단지 사역의 동역자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이 세상에서 마음 다해 사랑할 단 한 여인을 선택하는 것이 먼저일 듯해.


선생님 메일 받고 소개팅 이후의 상황들을 전해주면 좋겠다. 이번 소개팅 역시 더 좋은 관계로 발전하든 그렇지 않든 은혜의 연애사에 고운 한 페이지가 될 거야. 결국 하나님 앞에서 최적의 짝을 만나는 데 더 가까이 가는 유익을 줄 것이라 믿어. 앞으로도 은혜의 이성교제와 결혼하는 일을 네 바람대로 쿨하고 신속하게 인도하실지 어떨지는 모르겠구나. 분명한 건 하나님은 은혜가 하는 아주 작은 소개팅 하나에도 지대한 관심이 있으시며, 궁극적으로 가장 아름다운 가정을 선물로 주시기 위해 준비중이시라는 것, 무엇보다 영원하고 가장 진실한 사랑으로 은혜를 바라보고 계시다는 것은 선생님이 분명히 알고 있다.^^ 소식 기다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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