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 이른 소국이 거실에 한가득이다.

가을이란 계절이 존재하기나 할까,

이제 지구에서 가을이란 계절은 사라졌다는 듯,

여름보다 뜨거운 날인데 말이다.

가을이란 때가 있을 것 같지도 않건만

'때 이른'이란 웬 말인가.


그래도 때 이른 소국이다.

내가 소국 좋아하는 걸 알고 가끔씩 내게 이걸 안기는,

내게는 영원히 초등학교 4학년 같은데 두 딸의 엄마가 된 J와 H가 왔다.

기도의 용사 H, 찬양의 천사 J라 부르면 딱 좋을 새벽이슬같은 청년들이었다.

여름보다 뜨거운 날에 여름 휴가를 받고는 하루를 내어 찾아와줬다.

두 딸과 함께 넷이 있는 그림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데

낯설고 신기한 일이었다.


돌쟁이, 그리고 삼십몇 개월 아가들 뫼시고 하는 대화란.

몇 마디 나누다 뚝뚝 끊어지는 건 기본. (쉬쉬, 쉬 마려워!)

언제던가, 이들과 공동체, 소명..... 이런 주제로 끝도 없는 얘길 나눴던 건.

이 와중에 젊은 부부들 목장모임에서 목자로 이끄는 J&H이다.

그네들 또래의 근황도 한 가지인데.

"청년 때는 결혼, 진로 같은 절실한 것들로 얘기 나누고 기도하고 그랬는데,

지금은 결혼하고 직장도 어느 정도 안정되고, 직장에선 힘들고요.

아이들 태어나 정신없고..... 모여도 제대로 고민을 나누거나 하지 못해요"


우리도 그런 시절이 있었다.

결혼하고, 직장을 정하면 인생의 고민이 다 해결될 것으로 꿈꾸던 시절도.

외식 한 번 우아하게 해봤으면, 하면서 두 아이 쫓아다니던 시절도.

그래도 그 시절 내내 부부 모임에서 책읽기 모임을 멈추지 않았고,

부부 됨, 부모 됨을 고민하고 배우는 것을 쉬지 않았던 것 같다.

갓난쟁인 현승이 맡겨놓고 어린 채윤이 손잡고 광화문에 집회에도 다니고.


이 시절은 그냥 버티는 거야.

버텨내는 거야.

하면서 말이다.

돌이켜보면 기특한 우리의 젊은 날이다.


경황이 없어서 말은 못해줬지만 이들도 잘 버텨내길 바랄 뿐이다.

생전 안 해본 엄마 아빠 노릇에 코가 석자라도 '나 됨'에 대해 포기하지 않고.

몰아치는 일상 가운데에도 생각하는 그리스도인됨의 끈을 아예 놓지는 말고.

내 가족이 소중한 만큼 약한 이웃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 고이 가꿔가면서.

육아의 터널을 빠져 나왔을 때 텅 비어있지 않기를.

기도한다.


때 이른 소국에 눈을 맞추며

그들의 40대를 위해 한 발 앞선 기도를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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