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학기부터 일이 줄어서 공치는 날이 생겼는데...

이걸 부모님께 고백해? 말어? 하다가 고백한 첫 날.


예전에는 주로 김치 담그기가 며느리 쉬는 날 치뤄야 하는 일이었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담그는 속도보다 먹는 속도가 한참 뒤쳐져 버리는 김치가 허다한 날이 허다하다보니...

어느 새 김치는 손을 좀 놓으신 듯하다.


그래도 토요일 같은 날 며느리가 차랑 같이 놀고 있으면,

광주 창고 가자.

밭에 가자.

하다못해 목욕탕이라고 가자.

하시면서 며느리 쉬는 거, 차 쉬는 거 아까워라 하시는 것 같은데...


올 해 들어서 남편도 없이 일하랴, 두 애들 놀아주고 가르치고 살림하랴, 교회일 하랴.

어머니 보시기에도 힘들어 보이시는지 안쓰러워하시는 마음이 느껴지곤 하였다.


그래서 용기를 내었다.

나도 하루쯤은 집에서 푹 쉬어보고 싶어서.

'이제부터 수요일에는 일이 없어요. 집에서 쉬어요' 하고 고백한 첫 날.

아침에 수영 갔다가 사람들과 수다도 떨고 느긋하게 참으로 여유롭게 집으로 왔다.

와 보니 아버님 어머님 고추 20근 바닥에 널어 놓고 마른행주로 닦기를 시작하고 계셨다.

며느리 얼굴 보자마자 어머니 '일루와서 이거 좀 닦어라. 나는 머리하러 가게' 하시고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시고.

아버님과 며느리 둘이 뻘쭘하니 마주앉아 고추 20근 닦았다.

오전을 그렇게 갔다.


머리를 하고 오신 어머님 휘리릭 우리집으로 오셔서 '바쁘냐?' 하시면서.

'안 바쁘면 밭에 좀 가자. 상치 좀 뜯어 오게. 바쁘면 말구'

집에서 쉰다는 여자가 뭘 바쁘겠어요? 어머니~ㅜㅜ

그래도 마지막 몸무림이라도 쳐볼라고 '글 쓸게 있어요. 다 쓰고 시간이 남으면 갈께요' 하였다.


결국, 한 두 시간 보내다 밭에 가서 상추 뜯고 채윤이 데리러 유치원 갔다 오고,

허옇게 쉰 머리 염색하러 미용실 가서 한 시간 있다가,

병원 문 닫을 시간에 겨우 애들 데리고 가서 감기 치료하고...


그러고 나니,

몸이 땅 속으로 마구 기어들어 가면서 졸음이 쏟아져서 수요기도회를 포기하였다.


내가 우리 어머니 나를 사랑 하시고, 자랑스러워 하시고, 대견해 하시고, 안쓰러워 하시는 걸 아는데...

나쁜 뜻도 없으신 것 같은데...

어찌하여 며느리와 며느리 차 쉬는 것을 그냥 두고 보기를 못하시나이까? 어머니! 흑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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