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타는 이미 왔다 가버린 성탄절, 그러니까 25일 저녁에 채윤이가 때늦은 짓을 했다.

산타 양말을 문고리에 걸으면서 '오늘이 크리스마스잖아'했다.

그러고 보니....채윤이에게 산타 얘기를 해준 적이 거의 없는 것 같다. 한 번쯤 곰돌이 인형을 사서 산타할아버지가 준 것 처럼 한 적이 있었고...

작년 재작년 부모님께는 거하게 크리스마스 선물 드렸지만 애들 선물을 아예 생각도 하지 않았었다.


산타!


나도 어릴 적 산타를 믿고, 산타의 선물을 기대했었지만 엄마된 입장으로 채윤이에게 산타를 소개하고 싶은 마음도, 산타를 핑계 삼아 착한 일을 시키고 싶은 마음도 없다. 너무 낭만적이지 못한 엄마인가? 동심을 너무 몰라주는 각박한 엄마인가?


채윤이에게 산타 얘기를 신나게 해줄 수 없는 이유가 몇 가지 있다.



1.

먼저는 산타 자체가 그리 나쁘지 않다해도 채윤이에게 성탄절의 주인공이 산타가 아니라 예수님 이라는 것을 먼저 가르쳐 주고 싶기 때문이다. 교회에서 조차 성탄절은 예수님이 주인공이 되지 못하는 것 같다. 성탄절의 메인은 예수님이 아니라 성탄절 칸타타, 내지는 성탄절 행사인 경우가 많다.

채윤이가 성탄절을 통해서 예수님의 낮아지심을 먼저 배웠으면 좋겠다. 성탄 본연의 의미를 먼저 알았으면 좋겠다.


2.

그것보다 산타를 가르치지 않는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

'산타 할아버니는 알고 계신대. 누가 착한 앤지, 나쁜앤지...'이런 캐롤이 있다.

정말 누가 착한 아이일까? 진실로 착한 아이가 있을까? 착한 아이는 어떤 아이일까?

엄마가 보는 채윤이는 착한 아이가 아니다. 훨씬 더 많은 시간 동안 채윤이는 더 이기적이고, 고집스럽다. 그건 채윤이뿐 아니다. 착한 아이의 기준도 없을 뿐더러 객관적으로 '착하다'는 말을 들을 수 있는 아이는 많지 않다.

아이들도 너무 잘 알 것이다. 자기가 착한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그럼에도 산타의 선물을 기대한다. 산타는 착한 아이에게만 선물을 준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완전히 착한 아이는 아니지만 자기는 그래도 누구보다는 착하다고 생각할는지도 모르고, 아니면 그것 자체도 생각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진심으로 착한 아이도 아닌데, 그 사실은 아이 자신도 너무 잘 아는데 결국에는 선물을 받아 버리면 아이에게 어렸을 적부터 자신을 속이는 방법을 가르치는 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조금 심한 생각을 나는 한다. 이것이 반복되는 것은 진정한 자기성찰의 기회를 박탈하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때문에 산타의 선물은 매우 매우 비교육적이라고 생각한다.


3.

채윤이가 산타로부터 받고 싶어하는 선물은 '신데렐라 집'이다. 산타할아버지가 신델렐라 집을 줬으면 좋겠다는데....산타는 그 선물을 주기 어렵다. 왜냐면 신데렐라집은 너무 비싸다.ㅜㅜ

성탄절 다 지나고 산타 양말을 거는 채윤이를 보면서 마음이 짠하고 가슴이 아파서 눈시울이 뜨거워졌던 것도 사실이다. 엄마의 고.상.한 교육철학으로 어린 가슴에 못 박는 것은 아닌가? 하고 말이다...

그렇지만 그 부분에서도 조금은 자신이 있다. 주변에서 보는 정말 멋지게 성장한 사람들 중에는 어렸을 적에 그런 장난감을 풍족히 누린 사람이 별로 없다는 것이다. 아니, 오히려 그런 것들을 풍족하게 누린 듯 보이는 사람들은 정작 그것을 제공할 부모로부터 떨어져 있을 때 독립적으로 느껴지지도 않고 그리 매력적으로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4.

채윤이가 걸어놓은 산타 양말에 산타할아버지가 보낸 것 처럼 편지를 한 장 써서 넣어 놓았다. 채윤이가 신데렐라 집을 선물로 갖고 싶어한다는 것을 몰라서 미안하다는 것과, 사람들이 항상 착한 사람일 수는 없지만 늘 착하려고 노력해야 한다는 내용들을 적었다. 그리고 선물의 부분에 관해서는 애매하게 얼버무렸다.

다음 날 퇴근을 하고  마트에 데리고 가서 예전부터 갖고 싶어했던 쿠션을 하나 사줬다. 그리고 신데렐라집은 채윤이가 여기 저기서 받는 용돈을 모아서 사기로 했다. 돈 개념이 아직 없으니 '파란 돈 다섯 개'를 모으면 살 수 있다고 설명해 주고 벌써 파란 돈 한 개를 모았다.


5.

신데렐라집 오만원 짜리. 다른 데 안 쓰고 사 줄 수 있다. 산타할아버지가 보냈다고 슬쩍 사다 놓을 수도 있다. 동심을 인정하고 순간 기쁘게 해준다는 명목으로 치뤄야할 교육적인 리스크가 너무 큰 것 같아 우리 부부는 그럴 수 없었다. 1년에 한 번 산타가 주는 선물로 기쁜 것보다 1년 내내 엄마빠가 주는 따뜻한 사랑으로 기쁘게 해주는 것이 더 좋다는 생각이다. 아니 그것보다 말로 다 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아서 행복한 것이 진짜로 행복한 동심이 되는 것임을 확신하기에 엄마빠로서도 하기 힘든 선택을 하며 성탄절을 보낸다. 가슴 저리도록 사랑하는 채윤이를 올바르게 사랑하는 방법이라 믿으며....

2005/12/30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