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에니어그램 2단계 세미나 마지막 시간이었습니다. 자신의 유형과 날개 화살을 형성한 시점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집니다. 개인의 인생사를 출생부터 되짚어 보는 짧지만 무거운 시간입니다. 한 사람 씩 돌아가며 나누는데 강의 마칠 시간을 훌쩍 넘기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의 표정에서 불안이 읽힙니다. 순서가 지나간 사람들은 '내가 너무 길게 했나?' 싶어 민망하고, 뒤에 남겨진 사람들 역시 초조한 것 같습니다. 강사인 저는 저대로 시간 안배를 잘 하지 못했다는 자책에 식은땀이 납니다.

 

그러나 시간에 대한 죄책감, 민망함, 초조함은 표면적인 감정일 것입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나눈 수강자분들은 '내가 너무 길게했나?'가 아니라 '내 시덥잖은 얘기를 괜히 늘어놓았나?'가 두려운 것입니다. 나의 인생 이야기 나만의 특별한 서사(특별히 불행하고, 특별히 찌질하고, 특별히 무난하고, 특별히 창피하고, 특별히 별 볼일 없난......)를 어설피 내놓다가 시덥지 않은 이야기가 될까 두려운 것입니다. 사람들이 시덥지 않게 여기기 전에 내가 먼저 쿨한 태도를 취하고 싶기도 합니다. 내 인생에 대해서.

 

한 시간을 초과하며 강의를 마치게 되었지만 누구의 이야기도 끊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분의 이야기를 마쳤을 때, '여러분의 이 이야기가 얼마나 소중한지 아느냐'고 가슴으로 말했습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사랑하는 방법은 나만의 경험을 온전히 수용하는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온전히 받아들여지는 것이 우리의 지고지순한 갈망이지만 실은 그 누군가는 바로 '나 자신'이어야 합니다. 내가 어제의 나를 온전히 수용하지 못하면서 수많은 '너'들을 찾아다니며 나를 받아줘, 나를 받아줘 해야 소용 없습니다.

 

에니어그램을 하면 할수록 세미나에 찾아 오신 분들 개인의 서사가 그리스 신화 한 편 못지 않은 무게감으로 다가옵니다. 몰래 간직했던 눈물이 하늘의 빛에 비추어져 반짝이는 보석임을 발견하실 수 있기를..... 기도하게 됩니다.

 

성지순례를 다녀온 남편 역시 함께 했던 분들 한 분 한 분의 서사를 마음에 담아 가지고 왔더군요. 아마도 그가 다녀온 '성지'는 밧모섬이 아니라 순례 동반자들의 아픈 기억의 지하실이었나 봅니다. 성지순례를 떠나기 전부터 하루 한 편씩 남편이 글을 써서 나눈 모양인데 다녀와서 '일상순례'라는 제목으로 쓰고 있는 글 중 에니어그램 세미나 마친 제 마음에 공명하는 글이 있어 나란히 걸어 둡니다.

 

 

[아픈 과거] _ 김종필

 

 

오늘 성령님께서 바람을 타고 지나시다가 제 귓가에 살짝 속삭이셨습니다.

 "누구나 아픈 과거가 있단다. 긍휼의 마음을 잊지 말거라." 


낯설고 어색한 그냥 타인에 불과한 사람이 어느 날 제 영혼의 영지 속으로 성큼 들어오게 될 때가 있습니다. 그의 아픈 과거를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내 아픈 과거와 공명을 일으켰기 때문입니다. 그의 아픔과 나의 아픔이 얽히고 섥혀 네 아픔이 내 기도가 되고, 내 아픔이 너의 기도가 됩니다. 


마주 보고 앉아서, 나란히 앞을 보고 앉아서, 타인의 아픈 과거를 들었습니다. 누구나 아픈 과거가 있었습니다. 그도 많이 울었겠구나 생각하니 제 마음이 아픕니다. 


일상을 살다보면 "일"에 매몰되어 "사람의 아픔"이 안보이곤 합니다. 쓸데없는 일 걱정에 휩쓸려가려 하니 성령님께서 바람을 보내 제 뒤통수를 한 대 치고 가십니다. 거기 가만히 서서 기도합니다. "주님, 누구나 아픕니다. 비밀이 있습니다. 우리 순례자들의 아픈 기억들이 성지순례를 통해 치유되게 해주십시오. 제 어색한 미소가, 제 부실한 설교가, 제 투박한 손이 조금이나마 치유의 도구가 된다면, 주님 나를 가지셔서 사용해 주옵소서. 아멘" 


이렇게 기도 한자락 주님께 올려드리고 쉬임없이 기도를 이어갑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시여, 나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쉬지 말고 기도하라"(데살로니가전서 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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