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이 되어 연애하기(...) 23

 

 

 

20136, 대한민국 최초로 콘돔 광고가 TV에 등장했습니다. 콘돔광고가 TV? 파격이라면 파격이었을 텐데요. 풋풋함에 경쾌함까지 더해진 영상으로 ,,,, ?.....!’ 하는 느낌으로 봤던 기억이 있습니다. 가톨릭대학 간호학과 이광호 교수는 이 광고에 등장한 여성이 끼고 있는 묵주반지에 주목합니다. 성당누나란 얘기죠. 이광호 교수는 콘돔 광고에 콘돔보다 더 많이 등장하는 묵주반지를 통해 광고가 노리는 효과를 분석합니다. 그 중 하나가 혼전순결에 대한 천주교의 단호한 가르침을 가볍게 뛰어넘게 하려는 것이라고 합니다. 묵주반지 낀 성당누나도 연인과의 성관계를 당연하게 즐기고 있고 임신은 콘돔만 있으면 막을 수 있는 것이니 죄책감 느끼지 말고 즐기라는 뜻이겠지요. 지금은 2015년 가을. 콘돔 광고에 그치지 않고 연인들을 위한 호텔광고, 기념일 여행을 노리는 펜션 홍보 등 <마녀사냥>에서 튀어나온 듯 한 마인드가 연애 일상에 켜켜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가랑비에 옷 젖는데 걸리는 시간이 얼마 되지 않는 것 같아요. 빠른 시간에 우리 사회의 성의식이 급격히 달라졌습니다. 교회 청년들 중에도 시대를 읽고 적응하는데 빠른 사람들은 스타일 구기지 않고 살아가는 듯해요. 다들 그렇게 연애하고, 어쩌다보니 멈출 수도 없는데 교회나 부모님께 굳이 티를 낼 필요 없고, 임신이나 조심하자는 쿨한 크리스천으로요. 그러나 유유자적 백조의 자태가 물밑에선 엄청난 발차기로 유지되는 것처럼 마음 깊은 곳의 내적 갈등이 없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반면 대놓고 갈등인 친구들도 있습니다. ‘설마 너 혼전순결 같은 걸 지키려는 거냐?’며 헤어지자는 남친 얘길 친구에게 하고는 대애~, 핵노답! 너 어느 시대 사람?’ 욕 비슷한 조언을 듣고야 마는, 쿨하고 싶지만 쿨하기 어려운 교회언니들 말이죠. 이즈음 제가 연애상담 하며 유난히 자주 접하고 유난히 마음이 많이 쓰이는 경우입니다. ‘마녀사냥식 연애 일상에서 두 번 상처받는 골드 미스들입니다. 겨우 생긴 남친과 헤어져야 하는 이유가 성에 대한 의식의 차이 때문이라 거죠. 비슷한 이유로 갈등과 헤어짐이 반복되며 이러다 정말 결혼을 못할 수도 있겠구나싶답니다. ‘나를 이렇게 범생이로 교육시킨 부모님이 원망스럽다는 말도 들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이런 두 부류 친구들을 지질한 위선자 취급하며 보수적인 교회의 가르침과 한데 묶어 비난하며 화를 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쿨해 보이지만 자신의 연애와 섹스 문제에서도 냉철하고 깔끔한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분명한 건 교회는 앞으로도 쭉 결혼 안에서만 허락된 성을 가르칠 것이고, 연애강사는 각각의 소신대로 스킨십의 수위를 정해줄 것이고, TV 드라마와 광고는 남녀가 만나 어떻게 섹스하지 않을 수 있냐며 더욱 노골적으로 모든 섹스를 권할 것입니다. 접점을 찾을 수 있을까요? 그 접점에 여러분이 서 있고 이제 남은 것은 선택뿐입니다. 죄냐 죄가 아니냐, 하는 선언적 논의는 일단 잠시 넣어 둡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자유의지를 주셨습니다. 선택할 수 있는 의지 말입니다. 심지어 당신의 사랑을 거절할 자유까지 허락하셨습니다. 모든 선택의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것은 다시 말할 필요가 없겠지요. 우리는 선택할 수 있습니다. 목사님의 설교든, 연애강사가 제시하는 스킨십의 수위든, 어느덧 우릴 덮친 시대의 성의식이든 그것을 삶으로 선택하는 것은 내 몫입니다. 부모나 교회의 가르침을 탓하는 것도, 핫한 연애 강사의 지침에 의존하는 것도, 광고와 뉴스에서 내보내는 통계와 친구들의 연애방식을 끌어다 합리화하는 것도 나 자신이 되기를 거부하는 어른스럽지 못한 태도입니다.

 

결혼 안에서 한 사람을 향한 오롯한 헌신으로서의 성을 누리겠노라 선택한 사람은 고리타분한 신앙인이라 조롱받을 용기 또한 내야 할 것입니다. 믿음으로 소신을 지키는 것이 늘 멋지고 스타일 나는 일이 아닌 것을 알지요? 같은 진심을 담아 말합니다. 연애 안의 성관계가 괜찮다 여기며 누리는 분들은 한 번쯤 스스로에게 물어보면 좋겠습니다. 과연 내 의지인지? 남친(또는 여친)의 기대에 부응하기에 급급한 선택은 아니었는지, ‘다들 이러는데 뭐흘러가는 대로 따라 흘러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나는 진정 어떤 사랑, 어떤 섹스를 원하는지 물어야 합니다. 여성의 경우라면 임신이 여자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이기에 더욱 냉철하게 생각할 일입니다. 내 몸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을 철저하게 고려하고 스스로 결정하는 일에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안 돼요 돼요 돼요~ 하면서 마음에서 원치 않는 데이트 방식을 반복하며 죄책감과 남모르는 불안에 머물러 있지 맙시다. 그런 의미에서 남성의 선택 역시 어른의 태도, 즉 어떤 책임도 감수하겠다는 의지적 선택이 되어야겠지요. 사랑하는 사이에 자연스럽게 더 깊은 스킨십을 원하는 불타는 욕구를 몰라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욕구에 압도되는 것과 욕구를 인정하고 한 발 물러서서 바라볼 수 있는 것은 큰 차이입니다. 후자의 태도가 전제되어야 자기 몸에 대한 결정권을 행사가 가능해집니다. 여러분 자신이 되어 그 황홀한 선물 성을 거침없이, 두려움 없이 누릴 날이 왔으면 좋겠네요. (‘진짜 좋은데 어떻게 설명할 방쁩이 없네. 방쁩을 좀 고민해보고 다음 달에 다시 올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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