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기에 자주 들었던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 있다. '아버지 안 계신데 생활은 어떻께 하니?' 주로 학기 초 새 담임 선생님과의 면담에서 들었던 것 같다. 정말 곤란한 질문이었다. '아버지가 안 계신데다 엄마는 늙었어요.'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말하면 질문하신 선생님 '궁금해서 돌아가셔 봐~야 정신 차리'는 사태가 벌어질까봐 꾹 참았다. 설명하기 난감하지만 그럭저럭 우리는 잘 살고 있었으니까. 그 질문을 안 받아도 되는 지금의 삶이 급 감사해진다. 


그때만큼 당혹스럽진 않지만 최근에도 그 비슷한 느낌을 유발하는 질문을 받는다. '어쩌
가 이런 강의를 하시게 됐어요?' 여기서 '이런'이라 함은 연애를 말한다. 어쩌다 연애 강의를 하게 되었을까? 매우 난감한 질문이다. 대학이나 대학원에 '연애학과'가 있는 것도 아니고. 연애를 잘 하게 생긴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막 연애를 마치고 결혼에 골인한 파릇한 나이도 아닌데 어쩌다가 연애 강사를 하게되었단 말인가.


가장 쉬운
대답은 '가만히 있는데 사람들이 불러요. 하다보니 늘더라구요.' 일까? 발단은 남편과 함께 <복음과 상황>에 쓴 결혼 이야기이다. 그 글을 계기로 연애나 결혼에 대한 강의 요청이 들어오기 시작했고, 그로 인해서 '브리짓 자매의 미혼일기' '유브 갓 메일_목적이 이끄는 연애'를 연재하게 되었다. 연재는 다시 강의를 불러왔다. 그러다 어쩌다 이렇게 되었다. 물론 남편이 신학을 하고 목회를 할 때는 물론이고 그 전부터도 청년인 제자들, 후배들과 늘 허물없이 대화하고 있었던 것이 큰 자산이 되었다.


사람에 관한 모든 일에서 진정한 의미의 전문가는 없다고 생각한다. 몸을 다루는 의사도 자신의 전공분야 안에서 전문가이지만 몸이란 게 유기적인 것 아닌가. 모든 걸 진단할 수 없고 처방내릴 수 없다는 의미에서는 분명 한계를 지닌 전문가이다. 정신분석을 하는 정신과 의사 역시 사람의 마음에 관해서 충분히 알지는 못한다. 정신분석에서 말하지 않는가. 무의식이 95%라고. 하물며 연애나 부부문제, 자녀양육 등
에 관해서랴. 조금 더 생각하고 공부하여 어떤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지언정 모든 사람에게 정답을 줄 수 있는 전문가는 없다.


이런 지점에 다다를 때 '연애 강사'라는 타이틀이 불편해진다. 심지어 어떤 경로를 통해서 이런 일을 하게 되었냐는 질문을 받으면 질문하는 사람의 호의와 상관없이 난감하고 숨고 싶은 심정이다. 이번 여름 유난히 이 질문을 많이 받았다. 질문을 한 입으로 의외의 답을 듣게도 되는 신기한 경험도 했다. 말이 나온 김에 주절주절 정리 한 번 해보자. 그닥 재미는  없겠지만 연애강사로서의 나의 '자산'을 까발려보는 것은 영업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이번에 코스타에서 얻은 동생님의 말이다. '언니, 나는 대학 졸업하고 거의 바로 결혼을 했는데도 그 짧은 싱글 기간에 고민이 많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언닌 그 시절에 꽤 늦은 결혼을 하셨고 긴 싱글 기간을 지내시면서 별 생각을 다 해보셨겠어요. 그러니 이렇게 지금 청년들에게 해 줄 이야기가 있으시겠죠.'  이 사람으로 말할 것 같으면 내 젊은 시절에 가장 부럽고, 부럽다 못해 얄미운 족이었다. 일찍, 것두 (내가 보기에) 거의 모든 걸 갖춘 남자와 결혼해서, 게다가 무려 행복하게 살고 있다. 신앙, 의식, 인품, 능력까지 갖춘 남자에게 일찌거니 찍혀서 결혼한, 이쁜데 착하기까지 한 자매 말이다.


이 말로부터
20대의 나와 연애강의를 하는 40대의 나를 통합시키는 눈이 하나 떠졌다. 20대 초반에 연애를 했고 남편을 만난 30 직전까지 도통 연애를 하지 못했다. 처음 연애에 대한 트라우마 때문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 기나긴 싱글의 나날 동안 서점에 나와 있는 연애서적이란 서적은 죄 읽은 것 같다. 문제를 만나면 그 주제에 관련한 세상의 모든 책을 읽어버리겠노라 달려드는 건 예나 지금이나 지병이다. 결혼 뿐 아니라 육아에 관한 책들을 닥치는대로 읽었다. 그리고 결혼에 관한, 연애에 관한 생각과 그때 그때 올라오는 외로움, 흔한 낮은 자존감 같은 것들을 글로 썼다. 미래의 배우자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썼는데 두꺼운 대학노트 한 권이 다 채워지고 남편을 만났다.


싱글의 외로움을 피하지 않고 실전의 연애가 오기까지 치열하게 공부하고 글을 썼으니 이제 와 연애 강의 외에 무엇을 강의할 수 있을까 싶다. 무엇보다 그 기간이 징글맞게 길기도 길었으니. 연애 강의를 하면서 '외로움과 맞장떠라'를 첫 주제로 다루는데 이 말만큼은 한 점 부끄럼 없이 할 수 있는 것 같다. 결혼을 하고보니 남편은 나보다 더 심한 공부 중독이라 좋은 부부관계 만들어 가기 위해서 다시 공부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정도면 '어쩌다 연애 강의를 하시게 됐어요?' 가 아니라 '당신은 연애강의를 위해 태어난 사람' 축복송을 들어야 하나? 이런 사연을 배경으로 연애강의를 하고 있으나 전문가는 아니다. 몇 년이 지나지 않아 대학생이 될 딸내미가 본격 연애고민에 돌입하기 전 연애계를 은퇴하게 되길 바란다. 딸 같은 아이들과 연애상담 하는 건 좀 그렇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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