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라는 애기를 키우느라 꼼짝 못 하는 동생네가 오랜만에 가족여행을 갔다.

엄마 애기를 돌보러 동생 집에 와서 하룻밤을 지낸다.

이런 일로 동생이 부탁해오면,

'싫어. 얼마 줄겨?' '뭐 해줄겨?' 이런 식으로 대답하지만 피차에 오케이로 통한다.

할 일이 태산이고, 현승이 중학교 가서 보는 첫 시험의 첫날 전야지만.

No라 할 수 없는 일이다.


한 놈만 골라 패는 엄마는 과일은 포도에 집착하는데 망원시장에 갔더니

씨도 없는 거봉이 겁나 달고 맛있는 게 있다.

한 박스 사서 엄마 집으로 가 1층 엄마 집 바로 앞에 주차했다.

밖에서 보이는 주방 쪽이 캄캄하다.

어렸을 적부터 1000번은 들었을 엄마 나이 다섯 살(세상에나!) 적 무용담이 떠오른다.

거의 90여 년 전, 다섯 살 엄마가 결혼식에 간 식구들을 기다리며 캄캄한 집에서 들창문에 머리를 내밀고 울지도 않고 기다렸다는 얘기이다.


나를 보고 반가워서 어쩔 줄 모르는 엄마가 걸음마 차를 밀고 졸졸졸 따라다닌다.

내 방이는(에는) 냄새나지? 밖이 쇼파 가서 앉을래? 앉어서 나랑 얘기 좀 혀.

거실 소파에 나란히 앉아,

'엄마, 내가 밖에서 보니까 집이 캄캄하대. 엄마 다섯 살 때 혼자 집 본 얘기 생각나네'

라고 안전핀을 뽑았더니.

이옥금 권사님 구십 일대기 읊기 시작되었다.

'그려서 내가 안 되겄다. 서울로 가야겄다. 딱 마음을 먹은 거여..... 시상이(세상에), 그때 니 나이가 열시 살(열세 살), 운형이가 열한 살이었어. 애기지, 애기 (울먹)'


엄마, 나중에 천국 가서 아부지 만나면 제일 먼저 뭐라고 할 거야?

나 헐 말 다 생각이 있지. 당신 씨가 착헌 씨여유. 신실이 운형이가 당신 씨라 얼매나 착허게 나한티 잘 허는지 몰라유.'

착한 씨!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다시 시작하는 네버 앤딩 엄마의 일대기)

$#ㅏㅏㅏㅐㅐㅓㅠㅏㅣㅠㅠㅒㅒㅖㅓ#*&%^$@@ㅓㅓㅜㅗ........

다~아 하나님 은혜여.

(끝날 분위기)

참말로 지금 생각허믄 오뜨케 그르케 혔나 싶어.

(분위기 전환하여 2절 시작)

그릉게 성전 건축허고 반대허던 자들 다 입이 딱 붙어 버린 거여. 이옥금 집사, 이옥금 집사.... 칭찬이 떴지. (자뻑, 먼산)

3절, 4절, 5절......10절........ 

(현승이가 적절한 타이밍에 전화를 걸어줌. 그리하여 쉬는 시간)

(엄마는 아직 눈빛이 아련. 여전히 이옥금 집사 칭찬 비행기 탑승 중)


엄마, 현승이 내일 시험이야. 중학교 첫 시험이야. 기도해.

얼라, 그려? 그르믄 너 빨리 지금 집이 가라~ 가서 봐줘야 할 거 아녀

.(마음에 없는 소리)

현승이 시험이 문제가 아니라 내 발등에 불이 떨어졌어.

미국 가서 할 강의 준비해야 한다니까. 이따 엄마 자면 나는 강의 준비 해야 돼.

그려? 야, 나 잠온다. 나는 들어가서 잘팅게 빨리 강의 준비혀.

(빛의 속도로 사라지심)





강의 준비는 무슨! 사진도 많이 건졌는데 블로그질이나 해야지.

몇 줄 쓰고 있는데 스윽스윽, 엄마의 네발 걸음마 차 등장하는 소리.

'미국 가는디 그려도.... 좀 줘야지.....'

만 원짜리 다섯 장 들고 나오셔서 노트북 위에 놓는다.

'얼라, 자꾸 미끄러진댜. 왜 안 받고 핸다폰만 들고 있댜. 얼른 지갑이다(에다) 느(넣어)'





이렇게 글을 마치려는데 다시 스윽스윽 자가 걸음마 차 오는 소리.

왜, 또오?

(네발 걸음마 차 앞에 이불 하나 척 걸치고 등장)

이불 갖다 줄라고. 이 이불이 빨고 한 번도 안 덮은 거여. 냄새 안 날 거여.

이불 꺼내 왔어. 얇은 거 덮을 거야.

그려? 춥잖여. 알었어.





쉽게 포기하고 유유히 엄마는 사라졌지만.

금세 또 뭘 들고 나올지 몰라서 글을 마무리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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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기다렸다.

이제 잠이 드셨나보다.

나도 맘 편히 완료 버튼 누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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