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는 네 발,
점심에는 두 발,
저녁에는 세 발.
엄마는 세 발로 걷는 저녁을 산다.
이사한 지 3년이 되어가는데 처음으로 딸 집에 오셨다 가셨다.
마지막으로 오셨던 전에 살던 명일동에 오셨었던 때를 생각하니 그냥 아득해진다.
그때 오셨을 때는 혼자 새벽기도도 다녀오셨고,
산책도 하셨었다.
심지어 일주일 지내고 모셔다 드렸는데 뭔가 중요한 걸 놓고 가셨다고
연락도 하지 않고 혼자 지하철로 집까지 찾아오셔서 깜놀했었다.
불과 3년 전인데 그랬었다. 



이쪽 합정동으로 이사 온 후 얼마 안 되어 고관절 수술을 하셨었다.
엘리베이터 없는 빌라 4층 우리 집은 엄마에게 결코 다다를 수 없는 곳이 되었다.
올해 반대쪽 고관절이 골절되어 다시 수술. 곡절 끝에 지팡이 의지하여 걸을 수 있게 되었다.
감사하지만 세 발로 걷는 저녁을 사는 엄마는 훨씬 더 의존적이 되었다.
지난주에 동생네 휴가였다.
혼자 식사를 해결할 수 없는 엄마 때문에 어디 나가는 계획을 잡지 못하는 것 같았다.
요즘 교회에도 가시곤 하니 우리집으로 오시라고 했다. 
계단은 쉬엄쉬엄 천천히 올라오시면 될 듯하여.
"나는 집이 제일 좋아. 어디 안 가"
천진난폭, 순진무궁하게 배째라 하는 엄마를 설득하다가 뷁! 하고 말았다.
사춘기 딸 모드로 고래고래, 뷁! 다다다다, 대못이 될 말임을 뻔히 알지만 돌직구로 던지며 고집 피우지 말라고 했다.
그래도 말귀 잘 알아듣는 엄마가 자포자기 하는 마음으로 알겠다고 했다.
며칠 죄책감의 파도에 이리 떠밀리고 저리 떠밀리면서 정박하지 못하는 마음이었다.
그렇게 집에 오셔서 "엄마, 지랄거려서 미안해. 섭섭하지?" 했더니,
'딸이 있응게 그려도 그런 말을 혀주지' 했다.
엄마를 위해서가 아니라 다시는 죄책감 느끼고 싶지 않아서,
기회 있을 때 최선을 다해서 나중에 후회하지 않으려고 
땀으로 목욕을 하면서 망원시장과 주방을 오가며 식사를 해드렸다.
정말 나를 위해서 엄마 밥을 열심히 했다.
 


한 해 한 해 엄마의 몸과 정신이 쇠약해져 가는 것이 분명하게 느껴진다.
작년 다르고 올 다르다.
그래도 변함없는 것은 매일 정한 시간에 예배드리는 엄마의 모습이다.
매일 저렇게 '엄마의 사랑하는 책'을 읽으신다. 전처럼 오래 붙들고 계시진 못한다.
어느 날 남편이 출근해서 '장모님 성경 읽으시는 사진 많이 찍어놔. 평생 말씀 읽으며 사시는 분의 대명사!' 메시지를 보내왔다.
옆에 가서 찰칵찰칵 사진을 찍어대도 고개 한 번 들지 않으신다.
'귀하고~ 귀하다~ 우리 어머님이 들려주시던, 이 성경 심히 사랑합니다'
우리 엄마의 찬송이다.



거실에서 노트북 붙들고 있는 나에게 말 좀 걸어보려고
'차박, 탁, 차박, 탁' 천천히 걸어 나와 소파에 누우신다.
몇 마디 말 걸다 대꾸가 없으면 이내 졸고 계신다.
아이들이 왔다 갔다 하면
'이쁜내미, 어이구 이쁜내미. 착허기두 허지. 오쩌만 저러케 애들이 착헐까. 이쁜내미'
주문을 외우는 것 같다.
저항할 수 없는 세월의 흐름, 아침 점심 저녁을 마치고 깊은 밤을 향해 가는 삶의 여정.
가슴으로 느껴져 숨 쉴 때마다 아픈 통증이 된다.

아들 집, 당신 방으로 가신 엄마는 넓고 편하고 시원해서 좋으시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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