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추도예배를 드렸습니다. 내가 중1, 동생이 초등4학년일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어디서든 이런 얘길 하면 '그렇게 일찍 아버지를 여의었냐' 놀라시며 아버지 없는 불쌍한 아이로 보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아버지를 잃은 것이지 원래부터 아버지가 없지 않았답니다. 그 얘기가 그 얘기 같지만 그게 같은 얘기가 아니라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답니다. (제게는 아버지가 있습니다.^^ )


동생과 내가 초등학교 4학년, 중학교 1학년 때였으니 꼭 우리 채윤이 현승이 나이입니다. 게다가 우리 엄마는 마흔 다섯에 나를 낳았는데 올해 제 나이 마흔 다섯이구요. 그래서인지 아버지 올해 추도식은 감회가 유난합니다. 그리고 실은 아버지 추도식이니 엄마 생신이니 하는 가족 행사가 있을 때마다 늘 '마지막'을 연습합니다. 연로하신 엄마는 천국행 표를 사놓고 대기중인 것만 같아서요. 아니, 아버지 갑자기 돌아가신 이후로는 늘 마음 한 켠 두렵고 불안했지요. 엄마도 언제 우리 곁을 떠날지 몰라.  


풀타임 직장생활 시절, 친정엄마가 아이를 키워주셨습니다. 퇴근해서 들어가면 "껍데기 왔네. 울 애기 인자 니 껍데기한티루 가라." 하시며 아이를 넘겨주셨습니다.

그렇게 따지면 내 껍데기는 엄마이고, 이렇게 많은 알맹이들이 울 엄마로부터 왔습니다. 엄만 정말 속을 다 빼준 껍데기 같습니다. 오래 전 어느 추운 날에 어린 남매와 덩그러니 남겨진 엄마, 그 황망함 말로 다할 수 없었겠지요. 알맹이 빼주며 키워 이 만큼 사람 만들어놓았으니 천국 가 아버지 만나면 어깨 힘줘도 되겠어요.


예배를 인도했던 남편이 고린도 전서 13장의 말씀으로 설교했습니다.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 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중년이 되어 비로소 어린 아이의 일을 조금씩 버리고 어른이 되어가는 것 같습니다. 갈수록 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리고 제 발로 든든히 서는 어른이 되려고 합니다. 남편의 설교처럼 죽음이라는 문을 열고 나가서 만날 새로운 곳, 거기서는 이 희미한 것들이 벗겨지고 얼굴과 얼굴을 맞대어 보듯 주님을 알게 되겠지요. 우리 인생의 수많은 의문과 신비들이 벗겨지겠지요. 그리운 아버지도, 시아버님도 만나고 용서하기 싫은 고모도 만나 손잡고 웃을테지요. 올해 음악치료에서 만난 H, 노래를 정말 좋아하는 아이인데 가정불화로 엄마가 집을 떠나신 이후로 목소리를 잃어버렸습니다. 다시 노래하게 하기 위해 노력을 많이 했으나 쉽지 않습니다. 치료 종결이 얼마 남지 않아서 더 안타깝습니다. 지난 주에는 결코 소리내지 않는 아이를 마주하고 혼자 노래하다 속으로 기도했습니다. '주님, 천국에서 이 아이를 만나 가장 아름다운 소리로 함께 노래할 날이 있겠지요. 우리의 모든 일그러진 것들이 펴지고 회복되는 그곳에서 이 아이와 만나 가장 아름다운 노래를 부를 수 있게 해주세요.' 모두 천국에서 만날 거예요. 


아버지를 잃고 살아온 세월이 참 길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새 그때 내 나이의 딸을 둔 엄마가 되었으니 현승이 말대로 세월이 빨리 갑니다. 김창옥 교수의 강의에서 들은 말을 한 마디 해야겠습니다. '여기까지 잘 왔다!' 내 껍데기 우리 엄마, 나, 동생. 여기까지 참 잘 왔어요. 앞으로도 그럴 거예요. 그리고 언젠가 그 나라에서 얼굴과 얼굴을 맞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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