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브♥갓♥메일_목적이 이끄는 연애 15   

                                                                    <QTzine> 2009년 3월호


벌써 졸업이구나. 축하한다, 은혜야. 이렇게 어려운 때 사회에 첫 발을 내딛게 되었구나. 은혜랑 계속 메일을 주고받긴 했지만 연애에 관한 얘기만 하느라 진로에 관한 얘기를 많이 나눠보지 못했네. 언젠가 네가 졸업 후에도 일단 계속 공부하고 싶다고 했던 걸로 기억한다. 해서 선생님은 바로 대학원에 진학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만 다른 선택의 여지가 생긴 거구나. 큰 회사는 아니지만 취업의 기회도 있고, 그로 인해서 대학원 진학은 한 학기 미뤄놓은 상태라고? 헌데 이번에 2년 정도 어학연수를 다녀올 기회도 생겼다니 중요한 선택의 기로에 서 있는 게 맞는 것 같구나. 그런 상황에서 J와의 교제나 더 나아가 결혼에 관한 부분까지 고려하지 않을 수 없으니 '이중 삼중 꼬인 선택의 상황'이라는 네 메일 제목이 딱이네. 아무튼 선생님도 선뜻 뭐라 말하기가 어렵구만. 게다가 하나님의 뜻을 선생님한테 물으니 선생님이 갑자기 하나님이 될 수도 없고 상당히 난감해지는데.^^ 잘 선택하게 될 거야. 선택의 결과보다 선택해가는 과정에서 은혜가 자신의 삶의 주체자로서, 그러나 주관자이신 그 분을 인정하면서 한 걸음 성숙해지는 기회가 될 거라 믿는다. 어젯밤 네 메일을 확인하고는 오늘 새벽기도에 가서 내내 기도하면서 은혜를 생각했단다. 은혜를 생각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구했어.^^

자신의 선택이 중요해
은혜가 물어온 얘기를 하나씩 짚어 보자꾸나. '사실 제가 남자라면 지금 상황에서 '선택'하기가 훨씬 쉬울 것 같아요. 저는 여자로서, 결혼을 앞둔 여자로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제일 고민스러워요. 제 자신의 소명을 발견하는 것과 당장 오빠와의 교제, 나아가 결혼 사이에서 양자택일을 해야 한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 걸까요?'라고 했지. 네 말처럼 네가 당장 정식 프러포즈를 받은 상태는 아니지만 그런 고민을 한다는 것이 충분히 이해가 간다. 당당하게 네가 하고 싶은 대로 선택하지 못하고 교제와 결혼에 더 많은 비중을 두고 갈팡질팡하는 네 자신을 J에게조차 들키고 싶지 않다는 솔직한 고백이 공감이 돼. 게다가 J는 어떻게든 은혜가 원하는 선택을 하라고 한다니 그게 고맙기보다는 서운한 거지? 은혜의 메일에서 서운함이 많이 묻어난다. 서운함 뒤에 숨은 은혜의 기대도 추측이 되는데 맞니? J가 '어학연수는 포기하고 일단 취업하고 그 이후에 대학원에 진학하라'고 붙잡아줬으면 좋겠지? 모든 선택권이 은혜에게 있는 것처럼 구경만 하는 J의 태도가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것' 같아 보여서 섭섭한 것 같네.

그런 갈등에 부딪히는 건 선생님에게도 낯선 일이 아니다. 헌데 일단 J와의 교제와 결혼에 관한 건 접어두고 은혜 자신의 소명에 대해서 먼저 생각해 봤으면 싶구나. 지금 은혜는 정서적으로 교제와 결혼 쪽에 많은 에너지를 쏟고 있는 것 같애. 지금 시기에 아주 중요한 한 축이기는 하지. 헌데 사실 소명의 문제 역시 결혼만큼이나 평생을 좌우하는 중요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거든. 은혜의 바램대로 J의 강권에 의해서 어학연수를 자연스레 포기하면 선택이 쉬워지기는 하다만 단지 고민 없는 선택이 은혜가 진정으로 바라는 바는 아닐 거야. 단적으로 말한다면 취업을 하든, 대학원 진학을 하든, 어학연수를 떠나든 J를 비롯한 다른 사람의 결정이 아니라 은혜 자신의 선택이 되어야 할 것 같다. 그것은 여자든 남자든 마찬가지란다. 그런 의미에서 J군이 원하는 바가 없지 않겠지만 적극적으로 의사표명을 하지 않는 것이 은혜에게는 더 좋은 일인지도 모르겠어. 여자들에게는 약간 그런 로망이 있는 것 같아. 이런 상황에서 영화에 나오는 어느 남자 주인공처럼 '너는 내가 책임진다. 어학연수 나가지 마라. 취업 안 해도 된다. 내가 결혼하면 너 하나쯤 충분히 먹여 살리고 행복하게 해줄 수 있다. 나만 믿어!!' 해주길 바라는 것 말야. 그러나 누가 누구를 그렇게 책임질 수 있겠니? 그뿐만 아니라 각자 자신만의 소명의식을 붙들고 있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란다. 허니 일단 이중 삼중으로 꼬인 상황에서 결혼과 교제의 끈과 진로 내지는 소명을 일단 좀 풀어서 떼어 놓아 보자.

일단 그 둘이 이중 삼중으로 꼬인 상태에서 어느 정도 분리가 되었다면 그 다음에는 J의 의견에 귀 기울여 볼 수 있을 것 같아. 어쩌면 J 역시 머리가 원하는 것과 마음이 원하는 것이 따로따로라 적극적으로 말하지 못하는 것일 수 있어. 어느 누가 사랑하는 사람과 오랜 시간 헤어져 있는 것을 달가워하겠니. 게다가 J는 나이도 있고 하니 하루라도 빨리 결혼하고픈 심정일 텐데 말야. 하지만 은혜를 존중하고 은혜의 앞날을 생각한다면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겠지. 그럼에도 긴 시간은 아니지만 아주 가까이서 은혜를 지켜봤고 은혜를 사랑하고 있는 사람이니 다시 의견을 들어 보고 솔직한 대화를 나눠 보렴. 그리고 선택은 은혜가 하는 거야.


한 조각 한 조각 이어나가기
얘기가 어쩌다보니 연애는 일단 제쳐두고 어학연수를 가라는 쪽으로 기우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 같은데 그건 아니란다. 연애와 진로(어학연수 강행) 사이에서 연애에 연연하지 말고 지금 이 순간 소명을 확인하고 전진하라, 그런 뜻은 아닌 거 알지? 일차적으로 좀 분리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어. 설령 J와의 관계 때문에 연수를 접고 취업하기로 선택한다 하더라도 그것이 은혜 자신의 주도적인 선택이라면 좋다고 봐. 멀리 결혼을 생각해도 그렇게 지금 상황에서 둘이 떨어져 있는 것이 힘든 일이고, 둘의 관계를 위해서 좋지 않다고 판단이 되면 한 번쯤 이런 기회를 흘려보내면 또 어떻겠니? 선생님이 계속 소명에 관한 얘기를 했다만 소명은 대학을 졸업하고 진로를 결정하는 지금 이 순간에 결정되고 끝을 보는 게 아니야. 지금은 지금대로 또 30대에는 30대대로 중년과 노년에는 그 때에 맞는 소명을 발견하고 확인하는 일이 계속되는 것이 진짜 소명 아니겠니. 그런 의미에서 은혜가 대학을 졸업하는 이 시점에 모든 것을 한꺼번에 이루거나 결정하려고 할 필요는 없을 거야. 지금 여기서 가장 적절한 선택을 하는 것이 진정한 소명을 향해서 한 발자국 앞으로 나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선생님이 한동안 양육과 일을 병행하는 것을 놓고 고민하던 중에 읽었던 책에서 마음에 남아 있는 비유가 하나 있어. 소명에 따라 사는 삶, 특히 이 세대에 여성으로서 소명을 따라 사는 삶을 '퀼트 이불'에 비유한 것이었어. 여성들의 소명에 따라 사는 삶이라는 것은 그때 그때 나의 원함과 세상의 필요, 그리고 나의 기쁨이 만나는 그 지점에서 만들어지는 한 조각의 천 조각이라는 거야. 그 천 조각들이 이어지고 덧대어져서 하나의 멋진 이불이 된다는 것이지. 대체로 우리사회에서 남자들은 한 번 직업을 선택하면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그것을 소명으로 알고 가야 하는 책임감을 요구받지 않니. 상대적으로 여자들은 많은 불평등 속에 있지만 그로 인해 오히려 더 다양한 선택의 여지 속에서 소명을 발견해갈 수 있다는 것이지. 그 부분을 읽고 나서 마음이 많이 자유로워졌던 기억이 있어. 또 프레드릭 부크너는 소명에 대해서 '당신의 큰 기쁨과 세상의 깊은 갈망이 만나는 곳'이라고 말해. 궁극적으로 그런 곳으로 인도 받기 위해서 오늘 어떤 선택을 해야 할지 차분히 생각해 보렴. 오늘의 선택은 한 조각의 퀼트 천이 되어서 네 인생의 이불에 덧대어질 거야.


오늘 은혜가 하는 고민은 여성으로서 살면서 앞으로도 수없이 맞닥뜨리게 될 것 같아. 지금으로서는 남의 얘기 같지만 결혼이냐 일이냐, 양육이냐 직장이냐 등의 선택상황 같은 것들이지. 지금도 마찬가지고 앞으로도 그런 상황이 되었을 때 기억했으면 좋겠다. 단지 환경이나 주변의 관계가 요구하는 선택이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은혜 자.신.이 책임 있는 선택을 했으면 해. 또 지금 여기에 충실하면서 기도하며 내리는 작은 선택이 모여 궁극적인 소명을 확인하게 하고, 그것이 결국에 하나님의 뜻이 될 거라는 것이지. 하나님의 뜻을 구하겠다는 의지로, 기도와 궁극적으로 너 자신의 주도권을 다른 사람이나 환경에 이양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잘 결정하길 바란다. 기도할 때 네게 선택의 지혜를 주시기를 구할게. 잘 지내고 또 소식 전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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