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마지막 주말에 경북 청도에 있는 작은 공동체에서 1박 2일 강의가 있었다. 청년 시절 한 번쯤은 꿈꿔봤던, 좋은 친구들과 함께 집 짓고 살면 좋겠다, 했었던 바로 그런 공동체였다. 감이 유명한 곳이라 한창때는 주렁주렁 감나무가 예쁘다는 소식도 들었다. 강의를 빙자하여 공동체 탐방 겸 가을 기차 여행이 되겠다, 은근 설레고 기대가 되었다. 그런데 당일, #내려와라 박근혜 첫 번째 촛불집회가 있는 날이었다. 강의 섭외를 받았을 때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연일 받은 충격으로 얼얼한 정신이었는데 그나마 광장에 나가 여러 사람과 마음을 포개면 좋을 텐데.  ktx를 타기 위해 서울역 가는 길은 내내 청계천 광장 가는 길이라 더욱 마음이 무거웠다. 내 한 몸 없다고 집회가 어떻게 되는 것 아니지만, 이 엄중한 날에 서울을 떠나다니..... 발길이 떨어지질 않았다는 말이 딱이다. 모처럼 몸과 마음이 자유로운 남편이 두 아이 데리고 다녀오겠노라 했다. 내 정신인지 네 정신인지 약간은 정신 실종 상태로 기차에 올랐다.


달리는 KTX 안에서는 강의안도 책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하릴없이 기사 서핑을 하다 유기성 목사님의 영성 일기 논란을 보게 되다. 박근혜-최순실 사태에 대해서 하셨다는 말씀. 이럴 때일수록 주님을 바라보고 '영성 일기'를 쓰라고 했단다. 덜컹하고 가슴이 무너져 와르르 돌덩이가 쏟아지더니 터널 안에 갇혀버린 갑갑함이었다. 올봄에 강의하러 가서 잠깐 뵌 적이 있는데 좋은 느낌을 받았었다. 최근에 출간된 <영성 일기>도 읽어보진 않았지만 반가운 책이었다. '이럴 때일수록 주님을 바라보고 영성 일기를 쓰라' 어떤 뜻으로 말씀하신 것인지 알 것도 같다. 그렇더라도 이건 아니지 싶었고, 꾸적꾸적 분노가 일어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 글을 향해 쏟아지는 비난의 화살들이 모두 정당한 것 같진 않다. 하지만 애써 선의의 해석을 해보려도 '기도만 해라'로 들리는 건 어쩔 수 없다. 이 통탄할 대한민국의 현실에서 주님만 바라보고 24시간 주님만 생각하는 일은 어떤 행동으로 드러나야 할까, 생각할수록 마음이 갑갑하다.


창밖으로 빠르게 지나가는 논밭의 풍경, 도시 풍경이 슬프기만 했다. 감나무들이 휙휙 여러 번 지나치기에 목적지에 다다른 줄 알았다. 이런 마음으로 처음 뵙는 목사님과 공동체 식구들을 어떻게 대하지, 싶을 정도였다. 막상 마중 나오신 목사님과 곧 출산을 앞둔 사모님을 만나 얼굴을 마주하니 힘이 솟아난다. 첫 시간 강의 시작이다. 작은 공간에 공동체 식구들이 하나둘 모여든다. 인도자가 앞에 서지 않고 앉은 자리에서 찬양을 인도하였다. 마음의 무릎을 꿇고 찬양 앞에 섰다. '이곳을 지나소서, 이곳을 비추소서, 이곳을 덮으소서, 이곳을 만지소서' 이 가사를 반복하는데 목이 멘다. 눈을 감고 찬양하는데 마음의 화면에서 영상이 펼쳐진다. '이곳'이라는 공간에서 벽이 해체되더니 감나무가 자라는 언덕으로, 낮에 지나쳐온 대구로, 그러다 서울의 청계광장까지 달려 넓어진다. '이곳을 지나소서'의 '이곳'은 이 작은 방이 아니라 희망이 사라져가는 모든 공간이며 시간이다. 아이 잃은 엄마들을 끝도 없이 사지로 내모는, 쓰러진 자를 다시 짓밟고, 국가폭력에 아버지를 빼앗긴 딸들을 능멸하는 이곳이다. 돈 무당과 함께 거짓과 기만에 춤추고 놀아나는 자를 섬기는 우상숭배의 땅이다. '이곳을 지나소서, 이곳을 비추소서, 이곳을 만지소서, 이곳을 덮으소서, 내 안에 무너졌던 모든 소망 다 회복하리니' 찬양 후에는 이땅의 회복을 위해 기도하였다. 찬양으로 공간을 뛰어넘고 기도로 시간을 초월하여 경북 청도 더함 공동체의 기도는 청계천 광장의 촛불과 하나 되고 말았다.  


영성 일기 논란을 보면서 마음이 더 어려웠던 것은 1박 2일 해야할 강의를 '의식성찰'이라는 내면일기, 다른 말로 영성 일기 쓰기 제안으로  마쳐야했기 때문이다. 이럴 때일수록, 아니 어느 때든지 '자기 중심성이라는 죄'를 알아차리고 회개하는 일은 가장 중요한 일이다. 24시간 주님을 바라본다는 말은 24시간 그분의 눈으로 나를 바라본다는 뜻이기에 '신 앞에서 선 나'로 사는 일, 자기 성찰적 삶을 의미할 것이다. 에니어그램 세미나를 통해서 하고 싶은 얘기는 결국 이러한 삶이다.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삶, 영적인 삶에 눈을 떠야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촛불을 켜서 그릇으로 덮어둘 때가 아니다. 골방으로 들어갈 때가 아니라 높이 촛불을 들어야할 때이다. 헌데 나는 집회대신 강의에 가고 있고, 가서 고작 자기성찰 얘기나 하려는 것이다. 내가 이러려고 강사가 되었나. 자괴감이 드는 찰나에 본 '영성 일기' 논란은 다름 아닌 지금 나의 딜레마였다


강의를 시작하며 청계천 집회 얘기를 안할 수 없었다. 준비하지 않은 말들이 튀어 나왔다. '저는 지금 강의에 몰입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청계천 광장을 서성이는 마음입니다. 내려오는 기차 안에서 이런 기사와 논란을 보았습니다. 영성 일기 쓰기나 기도하는 것이 마치 사회참여의 대척점에 있는 행동처럼 느껴집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분법적 사고의 감옥이 갇혀있습니다. 하나가 옳으면 나머지는 틀린 것으로 말이지요. 골방에서의 은밀한 기도와 광장에서 촛불을 드는 기도가 다르지 않습니다. 돌이켜보면 광화문의 집회 인파에 밀려다닐 때, 아스팔트 바닥에 앉아 구호를 외칠 때, 홀로 서서 피케팅 하는 순간, 제게는 가장 절절한 기도시간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시간도 여전한 기도의 시간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힘이 납니다.' 그리고는 정말 힘을 내서 강의에 집중할 수 있었다.


에니어그램 세미나를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에니어그램이 중해서가 아니다. 신학과 설교는 넘쳐나지만 정작 그것이 영혼에 담기지 못하는 이유를 찾아가고 싶기 때문이다. '자기'라는 그릇에 대한 통찰과 그에 대한 가르침의 부재가 내가 느끼는 개신교 영성의 치명적 약점이다. 잃어버린 영성을 찾기 위해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할까. 내게는 에니어그램이 첫 번째 이정표 역할을 해주었기 때문에 힘에 닿는 대로 연구하고 나누고 싶은 마음이다. 정말 내면의 여정을 떠나야한다. 마음에서 울리는 사랑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리하여 에니어그램을 안내하기 위해서 경북 청도 아니라 중국의 청도라도 기쁘게 달려가는 것이다. 영성 일기와 24시간 주님을 사모하는 일이 그래서 중요하다. 테이야르 드 샤르뎅 신부는 말했다. "우리는 영적 경험을 가진 인간적 존재가 아니라 인간적 경험을 가진 영적 존재이다" 영성 일기가 영성 일기 되는 것은 인간적 경험을 하나님 앞에 가져갈 때이다. 인간적 경험 안에는 오늘의 현실이 고스란히 담겨져야 한다. 오늘이라는 현실은 오늘 일출과 함께 툭 튀어나온 것이 아니라 역사 속 마지막 날로서의 오늘이다. 이런 의미의 인간적 경험이 담기지 않은 영성 일기, 나는 반댈세!


주님의 사랑은 물과 같아서 가장 낮은 곳으로 흐른다. 24시간 그분을 생각하는 사람이 주목할 곳은 자명하다. 자기 안의 가장 어둡고 은밀한 곳일 터. 자기 안의 가장 낮은 곳에서 주님을 만나는 사람의 시선은 거기 머무르지 않으리라. 영혼에 가득 찬 것이 어찌 흘러넘치지 않겠는가. 그 배에서 생수가 흘러나올 것이다. 그 생수는 역시나 가장 낮은 곳으로 흘러가리. '또 다른 나'인 이웃,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슬프고 아픈 또 다른 나에게로 흐르지 않을 방법이 없다. 영성 일기와 은밀한 기도로 내면이 깊어진 만큼 사랑의 외연은 확장된다. 오직 '내면을 바라봐, 내면을 바라봐'에 머물러 있는 내적 작업은 심리적, 영적 마스터베이션일 뿐. 이토록 나쁜 시절에, 황망한 시절에 기도는 집회의 촛불이 되고 영성일기는 시국선언문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내가 믿는 예수님이라면 2016년 대한민국에 사는 당신의 꼬붕들에게 이리 말씀하실 것 같다. '시국선언문으로 영성 일기를 쓰고, 광장에서 드는 촛불에 기도의 마음을 담으렴'


강의를 잘 마치고 숙소에 돌아왔는데 가족 카톡방에 청계천 발 사진이 도착해 있었다. 세 식구가 이재명 성남시장님과 찍은 사진이었다. 인격의 아우라는 숨길 수 없는 모양이다. 스치듯 짧은 만남이었을 텐데 채윤이 현승이가 마음에 담아온 이재명 시장님 이야기가 풍성하다. 고마웠다. 아이들도, 남편도, 시장님도, 그곳의 사람들도, 오늘 함께 한 공동체의 식구들도. 긴 하루의 끝, 비로소 평화가 찾아왔다. 내내 얼얼했던 정신이 그제야 맑아지는 것 같았고 콱 막혔던 터널이 뚫린 것 같았다. 평화를 머금고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강의와 집회 참석이, 영성 일기와 외면일기가, 기도와 사회참여가 사랑의 강물 안에서 처음부터 하나였으니까.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