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30일, 산타 할아버지 루돌프 할머니가 되어 교회 아기들을 찾았다. 깜짝 방문이었다. 성탄절 이브 계획이었는데 이사로 정신이 없는 데다 '5인 이하 모임 금지' 지침에 주춤했다. 교회 성탄예배를 영상으로 드리는데 아가들이 등장했다. 영상으로 짧게 만나니 보고 싶어 견딜 수 없었고, 뒤늦은 성탄 선물을 전하기로 했다. 실은 무엇보다 질투심의 발로! 영상 예배 드리면서 갑자기 남편이 아기들에게 스타가 되었다. 이제 말을 하기 시작한 녀석이 "목사님 보고싶다"라고 하질 않나, 자기 아빠가 양복을 입고 나서면 "아빠 멋있다, 목사님 같아."라고 한다니 질투가 나서 견딜 수가 없다. 이러다 사모님은 잊히고 말겠네, 위기감이 드는 것. 아가들 꼭 닮은 케이크를 찾아 주문하고, 한 명 한 명에게 카드를 썼다. 한 카드에 남편과 번갈아 한 줄씩 써서 완성했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면 이렇게 신이 날까. 

 

예고 없이 들이닥쳐 깜짝 놀라게 하는 맛은 또 얼마나 짜릿한가. 주소만 들고 찾아간 집이라, 제대로 찾은 건가, 현관 앞에서 초인종 누르기가 망설여졌다. 긴장하며 눌렀는데 안에서 들리는 소리 "누구세요?.... 어머, 목사님이야!" 우당탕탕탕. 엄마 아빠 어른들은 놀라고 당황하고 "아니, 웬일이세요. 들어오셔서 차라도 한 잔..." 하는데 아가들은 어안이 벙벙. 목욕하러 들어갔다 얼른 내복 한 벌 다시 빼입고 현관으로 달려나온 친구도 있다. ㅎㅎ 사모님 손에 든 케이크에 눈이 간다. 자꾸 눈이 간다. 백일이 안 된 아기와 엄마 뱃속에서 태명으로 존재하는 아기까지 만나고 11시가 다 되어 돌아왔다. 성탄절은 며칠 지났지만 새벽송을 돈 것 같다. 집집을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 찍고 돌아다닌 터라 꿈을 꾼 것 같기도 하다.

 

남편 말마따나 나는 아기들만 만나면 목소리가 한 옥타브 올라간다. 현관에서 짧게 만나고 나오는데 심장이 콩콩 뛴다. 엔돌핀 주사를 한 대 맞고 나오는 느낌이랄까. 아이들은 그렇다. 그냥 생명의 에너지를 흘린다. 20여 년 아이들 음악치료를 했지만, 돌아보면 내가 치유되고 성장하는 시간이었다. 아이들과 오래 함께 한 시간 덕에 사람들이 치유되고 성장하여 온전해질 때 어떤 모습을 띠게 되는지 선명하게 그릴 수 있다. 한 번도 상처 받지 않은 아이의 모습니다. 영성치유에서는 wonderful child, 신성한 내면 아이라고 한다. 장애 비장애 할 것 없이 아이들은 그냥 생명과 신성의 존재이다. 한 살 두 살 나이 먹고 자라 가며, 지구별에서 사는 날이 길어질수록 흐릿해져 갈 뿐이다. 나도, 연구소를 찾는 사람들도 언젠가는 그런 생명 덩어리였다. 그것이 치유 가능성이다. 생명이고 신비인 아기들이 태어나자마자 따스한 돌봄을 박탈당하는 세상, 얼마나 아픈가. 아기들은 정말 내게 기쁨이고, 가능성이고 아픔이다. 곁에 이렇게 귀여운 아기들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생명의 신비를, 세상에 대한 책무감을 일깨우니 말이다. 하룻 저녁 이벤트로 많이 행복했다. 행복한 만큼 기도한다. 우리 아가들을 위해서.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역사 안으로 오시되 서른 살의 성인이 아니라 아기로 오신 것. 얼마나 심장 뛰는 경이로움인가. 성탄절 찬송 중 '그 어린 주 예수'가 어릴 적부터 참 좋았다. 특히 3절은.

 

주 예수 내 곁에 가까이 계셔 그 한없는 사랑 늘 베푸시고
온 세상 아기들 다 품어주사 주 품 안에 안겨 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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