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사님,

집사님과 함께 찬양했던 사진을 찾느라 한참 시간을 보냈어요. 집사님 찬양하시는 모습이 크게 잡힌 사진을 기억하는데 아무리 찾아도 없어요. 찾다 찾다 예전 싸이클럽까지 가서 저 사진 한 장을 찾았어요. 사진이 흐릿하지만 집사님 옆 모습 딱 보여요. 제 마음의 사진첩 샬롬찬양대 폴더에는 수백 장의 사진과 MP3가 저장되어 있어요. 그 중에 집사님이 솔로로 부르셨던 노래도 있지요. 6/8 박자로 편곡된 곡이었어요. 싱코페이션이 많고 익숙하지 않은 리듬이라 많이 어려워 하셨었죠.

 

이와 같은 때 난 노래하네 사랑을 노래하네 주께

이와 같은 때 손 높이 드네 손 높이 드네 주님께

 

저 오래 전 어린이 성가대 지휘를 할 때부터 솔리스트를 선정할 때의 음악보다는 가사를 봤어요. 찬양의 가사를 경험으로부터 길어올려 고백할 수 있겠다 싶은 분께 솔로 부탁하곤 했어요. 그 때문인지 제가 지휘했던 그 많은 곡들의 솔리스트를 거의 다 기억하고 있어요. 20년 전 어린이 성가대 때부터요. 그 많은 곡들 중  찬양을 부르셨던  집사님의 비음 많이 섞에 목소리는 더욱 소중하게 간직되어 있어요. 제가 윤복희 목소리 닮았다고 말씀드렸었잖아요.

 

성가대 지휘는 제가 가장 사랑하던 일 중의 하나였고, 지휘자 가운은 그 어느 때보다 저 다워지게 만드는 옷인 것 같아요. 그 어떤 성가대보다 더욱 기쁘게 찬양할 수 있었던 시절이었어요. 샬롬찬양대는요. 파트연습을 반복하고 또 반복해도 틀리고 또 틀리시고, 어떻게 틀리는지 흉내내 드리면 깔깔깔 웃으시다 시작되는 농담 따먹기는 끝이 없고, 그래도 안 되면 노래 중간에 넋을 놓고 쉬시던 어르신들 생각이 나요.  제가 가진 얕은 음악성과 근성있는 유머본능이 대원들의 착함과 너그러움 그리고 (솔까말) 엉망진창 음악성과 조화를 이루며 많이 웃고 울었던 것 같아요.

 

집사님은 늘 말씀이 없으시고 조용히 다니셨죠. 지휘하다 집사님과 눈이 딱 마주치면 마음이 막 쓰리곤 했었어요. 제가 청년이었을 적에 지휘하던 어린이 성가대에 집사님의 둘째 G가 있었잖아요. 장난꾸러기라 저한테 혼이 많이 났죠. G에게 야단을 많이 친 죄로 집사님을 뵈면 괜히 죄송했어요. 얼마 후에 남편 집사님께서 암투병을 시작하셨고 끝내 천국으로 가셨어요. 저는 그때 먼발치에서 주보 광고로만 소식을 접했어요. 그러나 어린 남매를 혼자 키우신 제 엄마에 대한 마음 때문인지 그 이후 교회에서 집사님 뵐 때마다 마음이 아팠어요.

 

시간이 많이 지나서 두 아이가 성인이 되고, 집사님과 샬롬찬양대에서 만나게 되었어요. 늘 모이면 왁자지껄 즐거운 찬양대에서 집사님은 말이 없으셨어요. 그림자처럼 조용히 다니셨죠.  저 찬양의 '이와 같은 때'에는 부르는 사람마다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거예요. 제게 '이와 같은 때'는 모든 최악의 순간인데요. 제 마음의 '이와 같은 때'를 집사님의 상황에 투사한 것 같아요. 솔로를 부탁드렸을 때 한사코 마다하셨고, 앞에 앉으신 분을 방패삼아 몸을 자꾸 숨기시던 기억이 나요. 박자가 너무 어렵다고 하셨고, 결국 주일 찬양에서 긴장하셔서 박자를 놓치기도 하셨죠. ^^ 그래도 집사님이 부르셨던 그 찬양 제 마음 깊은 곳에 남아 있어요.

 

지난 목요일 밤 삼성병원 장례식장에서 사진으로만 집사님을 뵈며 작별 인사를 나눴어요. 남겨진 남매를 만나고 많이 울었어요. 이제 둘 다 듬직한 성인이 되어 안심이라고 애써 생각해 보기도 해요. 더욱 어른스러워진 D의 말에 감정의 둑이 무너져 버렸어요. "엄마가 선생님 많이 좋아한 거 아시죠?" 그러고 보면 그 세월 같이 찬양을 하면서도 집사님과 길게 얘기 나눠본 적이 없어요. 저희 아이들이 집사님 얘길 하니까 '아, 그 던킨도넛 집사님!'이라고 해요. 맞아요. 제가 언젠가 연습시간에 저희 아이들 얘길 하면서 던킨도넛 얘길 했어요. 그 후 크리스마스에 집사님께서 던킨도넛 한 아름을 현승이에게 안겨 주셨죠. 저희가 집사님과 같은 아파트로 이사를 했고 언젠가 한 번은 저희 현관에 던킨도넛을 걸어두고 가셨었어요. 이제 와 생각하니 도넛상자에 담긴 집사님의 마음이 더욱 가까이 느껴져요. 집사님, 저도 사실 집사님 많이 좋아했는데요.....

 

장례식에서 집사님께 작별인사 드리고 온 밤에 강의 준비를 핑계 삼아 새벽까지 앉아 있었어요. 아버지와 어머니를 모두 암에게 뺏겨버린 D와 G를 위해 기도를 드린 것도 같고, 잠깐씩 눈물을 훔치다가  집사님께 마음으로 무슨 말씀인가를 드린 것도 같아요. 강의 준비는 영 못했죠. 잠깐 눈 붙이고 일어나 나갈 준비하는데 마음에서 찬양 하나가 올라왔어요.

 

이 세상을 일찍 떠난 사랑하는 성도들 내가 올 줄 고대하고 있겠네

저희들과 한 소리로 찬송 부르기 전에 먼저 사랑하는 주를 뵈오리

 

집사님, 그렇게 고통스럽던 아픈 몸을 벗으시고 그렇게 그립던 남편을 만나셔서 사랑하는 주님 품에 잘 계실 것을 믿어요. 음... 집사님 저 장래희망 하나 더 생겼어요. 장래 천국에 가서 집사님과 함께 '이와 같은 때엔' 찬양을 부르겠어요. 샬롬찬양대 좋은 분들 함께 모여서 '여호와는 위대하다' '찬양할 수 있는 은혜'를 부르겠어요. 그때는 모두들 악보를 잘 보시겠죠? 무엇보다 집사님은 남편과 나란히 앉아 찬양하셔야 해요. 그런 날을 소망해요. 

집사님, 저............ 집사님 참 좋아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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