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개혁운동을 하고 있는 동생이 수년 전 부탁을 하나 해왔었다. 목회자의 재정 문제 등으로 교회분쟁을 겪 교인들이 모여 작은 교회를 하고 있단다. 그분들을 위한 치유 프로그램을 진행해달라는 것이었다. 한 번만 겪어도 치명적인 경험일 텐데, 두 번 연거푸 비슷한 일을 겪었다고 했다. 당시 나의 여러 여건이 허락질 않았고 무엇보다 이런 분들을 위한 치유라면 단순한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보통 사람에게 사기나 모욕을 당하고, 부당한 모함으로 법정에 섰다 해도 견딜 수 없는 상처가 된다. 억울함과 분노를 평생 안고 살아야 할지 모른다. 하물며 그 목회자에게 당한 모욕과 모함, 거짓과 기만이라면. 신앙인들에게 목회자는 영적인 아버지상이 투사되는 대상이다. 때문에 목회자로 인해 상처받은 사람들은 단순한 용서나 화해의 치유를 넘어 영성적인 치유과정이 필요하다. 그 목회자를 신뢰하고 따랐던 자신의 과거와 화해해야 하며, 동시에 일그러진 하나님 상을 회복해야 한다. 이것은 오랜 시간이 필요한, 쉽지 않은 과정이다. 단순한 치유가 아니라 홀로 서는 신앙의 단계로 가야 하는, 성장의 여정을 걸어야만 하는 분들이다. 단지 프로그램이 아니라 목회자에 대한 신뢰회복과 함께 해야 하는 과정이다. 그런 이유로 동생의 부탁을 거절했었다. 덜컥 떠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올해 3월 어느 날, 정신 차려보니 그때 그분들과 ‘영성치유 세미나’를 하고 있었다. 곡절 끝에 목사인 남편이 바로 그 교회의 담임 목회자가 된 것이다. 남편이 부임하던 첫날에 노 장로님께서 쓰신 기도문의 끝에는 "오늘 지금은 장에 가신 엄마를, 혼자서 집을 지키며 기다리던 아이에게 그 엄마가 돌아온 시간입니다"라는 표현이 있다. 남편은 ‘돌아온 엄마’로서 살기로 했다. 목사라는 엄마의 사랑을 1도 믿을 수 없는 교우들에게 '믿을만 한 엄마 목사' 되는 일을 소명으로 사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전후반기 16주의 ‘치유와 성장 세미나’를 진행했고 오늘은 종강모임이었다. 에니어그램을 이정표 삼아 있는 그대로의 나를 사랑하고, 타자와 나를 분리하지 않고, 사랑이신 하나님을 찾아가는 여정을 함께 했다. 몇 년 전 동생에게 ‘집도 멀고, 그런 프로그램 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야’ 하면서 거절했던 것을 생각하면 참 신비로운 일이다.


교회 분쟁을 겪은 분들은 한때 신천지로 몰리고, 고소고발을 당하고 분노와 슬픔으로 잠 못 이루는 밤을 지냈다. 그 모든 일이 지나고 멀쩡한 일상을 살지만, 죄 짓고도 여전히 목회하고 추앙받는 목회자들 또한 멀쩡하니 늘 잠재적인 억울함 속에 산다. ‘목사를 대적하면......’ 이 미신 같은 말에 휘둘리기도 하는데, 본인들은 인식조차 못하시는 무의식적 두려움을 볼 때면 안타깝기 그지없다. 어찌된 일인지 하나님께서는 악을 그대로 두신다. 예배의 자리를 빼앗긴 교인들은 여전히 눈물을 흘리고, 그 자리를 빼앗아 꿰찬 목회자는 기고만장하여 승리의 개가를 부른다. 거짓으로 지은 예배당은 압도적인 존재감을 뿜어내고, 거짓으로 일군 영적 지도자의 자리는 더욱 견고하며, 세습은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그 모든 악행을 ‘하나님이 하셨다’고 한다. 무엇보다 우리의 하나님은 그 모든 악을 그대로 두신다. 


오늘 종강 뒤풀이를 하며 옆에 앉으신 권사님께서 가끔 순간적으로 치밀어 오르는 분노가 있다고 하셨다. 그러나 우리가 이제 더 큰 신앙에 눈을 뜨고, 이렇게 행복한 오늘이 있으니 그거면 되지 않은가, 싶다고도 하셨다. 그렇다, 눈 먼 자들의 땅에서 눈을 뜬 분들은 그 길을 계속 걸어가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이 없다. 그 길은 치유의 길이고, 성장의 길이고, 그리스도의 온전한 분량에 이르는 곳까지 자라야 하는, ‘아직도 가야 할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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