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이틀 전  미친 존재감으로 여러 사람 각각의 처소에서 침흘리게 만들었던 떡.볶.이.
홍합과 어우러져 완전 어이없이 존재감 상실하다.


'푸하하하..이거 홍합탕이예요? 떡볶이예요? 이거 뭐예요?'
이건 목자모임에 일등으로 도착한 미친 존재감의 '직딩'의 첫 마디.
'이거, 너 들어오기 직전까지는 해물떡찜이었는데 지금 막 이름 바꿨다. 홍합 떡볶이다. 왜!'


그렇다. 이건 사실 홍합탕도 아니다.

맨 처음 이것은 오랫만에 하는 목자모임을 위한 메인메뉴, 그 이름도 럭셔리한 '해물떡찜'이었다. 허나, 다소 길어진 조리시간으로 인해서 물의가 빚어지면서 기타 등등의 해물이 그 형체를 상실하며 쪼그들었던 것이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끝까지 껍데기의 가증스런 존재감으로 버티던 홍합에 의해서 육안으로 관찰되는 건 오로지 떡과 홍합만 남게 된 것이다.


결국, 미친 존재감의 홍합 껍데기로 인해서 이것은 해물떡찜의 정체성은 잊은 지 오래, 떡볶이로서의 존재감 조차 희미해진 것이었다.







그러나.


떡볶이면 어떠하리, 홍합탕인들 어떠하리.
그저 오랫만에 만나는 우리 목자들 잠시나마 입을 즐겁게 해줄 수 있다면.
가래떡의 탄수화물에 그들에게로 들어가 약간의 두뇌활동을 위한 에너지원이 되어준다면.
해물 나부랭이 안에 들어있는 키토산이 그들 몸에 항암효과를 조금 내고, 혈당상승과 콜레스테롤을 조금이라도 억제해준다면...
암튼, 다소라도 피가되고 살이 된다면 말이다.
그 이름이 뭐 대단한 것이겠느냐 말이지.


사모인들 어떠하리, 목녀인들 어떠하리, 음악치료사인들 어떠하리, 동네 아줌마인들 어떠하리.
나의 존재가 누군가에게 눈꼽만큼이라도 '사는 맛'을 일깨울 수 있다면.


아니.
때로 영양가 없고 맛이 없는 떡볶이인들 어떠하리.

내가 사는 세상에,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뭐 어떤 기여를 하지 못하면 어떠하리.
어제 하늘은 저렇게 맑았고 구름은 저렇게 예뻤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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